오피니언

[기고] 성령 하나님의 구원사역: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3)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편집자 주] 구원 개념은 이미 과거에 받았던 구원(중생)과 현재 받고 있는 구원(성화)과 장차 미래에 받게 될 구원(영화) 모두를 포함한다. 이 세 가지 구원에서 궁극적으로 중심된 역할을 하는 것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비록 죄인인 인간이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감동과 감화, 즉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과거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셔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V. 성령은 신자에게 인치심(Sealing)의 사역을 하신다

성령의 인치심
(Photo : ⓒ 베리타스DB)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사도 바울이 활동했던 당시에 로마제국의 황제나 총독이 공식적인 문서를 만들어 하부기관에 발송할 때에는, 문서작성자의 이름 옆에 밀랍(wax)을 발라 붙이고 그 위에 인장반지로 인(seal)을 쳤다. 인장반지의 인은 그 서류가 공적인 문서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공문서에 직인을 찍거나 압착직인을 누르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한 죄인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그에게 인을 치신다. 하나님께서 "인을 치신다"는 표현이 신약성서에 세 번 등장하고 있다:

(고후 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엡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치심"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로, 소유권(ownership)의 표시이다(Roger S. Oldham, "God the Holy Spirit: His Role in Salvation," SBC Life, 인터넷자료 http://sbclife.net/Articles/2009/06/sla6, 2018년 3월 15일 접속). 부동산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은 쌍방이 계약에 만족했으며 돈을 지불한 매입자가 그 부동산의 새로운 소유권자임을 확정짓는 행위이다. 소유권의 증표가 바로 계약서에 찍힌 매도인과 매수인 쌍방의 도장들인 것이다. 성령께서 신자에게 인을 치신다는 것은 이제 그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구원의 모든 계약의 과정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날(여기서 구원은 미래적 구원 즉 육신의 장막을 벗고 죽음을 맞이하는 영화의 순간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필자 주)까지 인치심을 받은 자"(엡 4:30)이다. 이제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인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은 신자들에 관하여 이렇게 묘사하였다.

(벧전 2: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둘째로, 인치심은 안전성(security)을 담보하는 것이다(Ibid.). 오늘날 소포나 소화물을 발송할 때 그 물품이 수신자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접수되고 확인될 때까지 이송의 과정에서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의미로 우체국이나 택배회사에서는 소인을 찍는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시면서 우리가 영원토록 안전할 것을 보증해 주셨다. 인치심이라는 말이 사용될 때에는 "보증"(guarantee)이라는 말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고후 1:21-22, 엡 1:13-14).

특히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5장 5절에서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하였다. "보증"이라는 말의 희랍어 단어는 arrabon인데,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 단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계약이 체결되었을 때 구매자가 지불해야 하는 보증금(caution money)을 가리킨다.... 나머지 금액이 적절한 때에 지불될 것을 약속하고 보장하는 첫 번째 상환금(the first installment)이다"(William Barclay, New Testament Words [Philadelphia: Westerminster Press, 1976], 40). 성령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은 신자가 현세에서뿐 아니라 영원토록 하늘나라에서 안전할 것을 보증해 주신다. 그리스도인이 육신의 "장막 집"(tent house)을 벗게 되면 하늘나라에 "영원한 집"(eternal house)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성령은 말씀으로 확증해 주신다.

(고후 5:1-2, 5)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셋째로, 인치심은 권위(authority, 권세, 권능)를 대변해 준다("The Work of the Spirit in Relation to Salvation," Valley Bible Church Theology Studies, 인터넷자료 www.valleybible.net, 2018년 5월 1일 접속). 대통령의 싸인이 들어 있는 친서를 소지한 특사 또는 대사는 외국에서 자신을 파송한 대통령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로부터 파송받은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권위를 가진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20:21-23)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승천하시기 직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 28:18)고 하셨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예언하신 후, 예수님은 성령받은 제자들이 권능을 받아 자신의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와 권능을 부여받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다. 그는 "보냄을 받은 자"(One who was sent)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이나 야심이나 기교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와 권세와 권능으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변호할 특권을 부여받았고 동시에 그렇게 할 책임을 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주실 때에는 우리에게 성령의 권위와 권세와 권능까지도 부여해 주셨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말씀하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충성스럽게 따르며 순종하여야 하겠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뱁티즘(침례, 세례-필자 주)을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마지막 유언의 지상명령에서 "너희는 ....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뱁티즘을 베풀어라"고 명령하셨다. 제자가 된 자, 즉 예수님을 믿은 신자, 다른 말로 하면,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에게 뱁티즘을 베풀라고 하셨지, 제자가 된 자의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에게 뱁티즘을 베풀라고 유언하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신자에게만 뱁티즘을 베풀 것을 유언하셨다("신자의 뱁티즘," Believer's Baptism).

VI. 성령은 신자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시키신다

"입양"(adoption)이란 친권이나 양육권을 포기한 자녀를 다른 어떤 부모의 아들이나 딸로 입적시키는 법적인 절차이다. 혈연관계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 법률적으로 친자관계(親子關係)를 맺는 행위이다("입양," 『두산백과』, 인터넷자료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7114&cid=40942 &categoryId=31640, 2018년 5월 15일 접속). 성령께서는 고아처럼 버려져 있던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사함 받게 하시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시키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사도 바울이 다음의 성경구절에서 "아들(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딸(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엡 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갈 3:26, 2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4:4-5, 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자녀)이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children, but of God)이란 "성령으로부터 난 자들," 즉 "위에서 난 자들," "거듭난 자들," "영적인 출생을 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입양이 된다. 성경은 성령을 "양자의 영"(Spirit of Adoption, 혹은 "입양의 영")이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롬 8:14-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갈 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한번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되었던 자가 파양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신학적 주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번 구원받은 사람이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는가,"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 그 은혜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인간사회에서는 합법적으로 입양이 되었던 자가 또 다른 합법적인 사유가 발생했을 때에는 법원에서 법적인 절차를 거쳐 파양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양자·양녀가 되었던 자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딸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매우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자유도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칠 수도 있는 자유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도"(betrayal)를 행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공인된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 이단(heresy)으로 빠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던 자도 구원을 상실하거나 은혜로부터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번 구원받았으면 거의 구원받은 것이다"(Once Saved, Almost Saved)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배도로 말미암은 구원 상실의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갈 1:8-9)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딤후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히 6:4-8)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 12:15-17)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체계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부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구원의 손길을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신다고 믿는다. 칼빈주의 5대 원리들(Five Points of Calvinism, 도르트신조, TULIP) 가운데 마지막 원리(P)가 "성도들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교리다(이성호, 『네덜란드 개혁교회 이야기』 [서울: 그 책의 사람들, 2015], 98-106). 견인이란 "참는다"(persevere)는 뜻인데, 한번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으신다는 의미다. 이 교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그리고 제한속죄설(Limited Atonement)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놓치실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택자들"(The Elect, 택함받은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그 사람들 중 일부가 구원을 상실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피는 헛되이 흘리신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O. Glenn McKinley, Where Two Creeds Meet: A Biblical Evaluation of Calvinism and Arminianism [Kansas City, MO: Beacon Hill Press, 1959], 45-6).

침례교회에서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침례교인들은 이 개념을 "신자들의 영원한 안전"(Eternal Security of the Believers)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자가 하나님께서 선택(election)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으시며 돌보신다는 의미라면, 후자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은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영원히 입양(adoption)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분의 아들과 딸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침례교인들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받고 구원받는다고 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 구원론을 믿기도 하지만, 한번 구원받았으면 결코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고 하는 칼빈주의 구원론도 믿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파양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자신의 피값으로 산 자녀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요 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없는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이 사랑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면 갈라디아 1장 8-9절, 디모데후서 4장 10절, 히브리서 6장 4-8절, 히브리서 12장 15-17절 등과 같은 배도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좀 억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성경구절들을 적지 않은 이들이 믿음에서 탈선했거나 탈선하고 있는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해석을 한다. "다시 한 번 더 이런 짓을 하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야!"라고 호통치는 성난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도 불순종하는 목이 곧은 자녀들을 향하여 그렇게 경고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마음은 예수 믿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궁극적으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 아버지의 진심어린 마음은 한 자녀라도 버림받거나 잃어버려지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한번 입양시킨 자신의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아버지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며 기다리시고,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회개와 믿음으로 얻게 된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eternal life)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은 "1년 생명"도 아니고 "5년 생명"도 아니고 "10년 생명"도 아니고 "유한한 생명"도 아니다. 무한한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다. 영생을 얻게 된 그리스도인은 결코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것이 "신자의 영원한 안전" 교리다(김승진, 466-7).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요 13:1). "한번 구원받았으면 언제나 구원받은 것이다"(Once Saved, Always Saved).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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