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생명의 하나님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입력 Sep 10, 2018 07:20 AM KST

- 창세기 2:4-7, 요한1서 3:11-14, 누가복음 12:15-21 -

jangyoonjae_0512
(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어느 술주정뱅이가 부인의 간곡한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마침 설교 경험이 별로 없는 젊은 새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남편을 억지로 끌고 왔다는 부인의 말에 더 긴장했습니다. 설교 본문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잔뜩 긴장한 목사님이 실수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보리떡 5천 개로 5명을 먹이셨습니다.' 맨 앞에 앉아 있던 주정뱅이가 말합니다. '쳇, 그런 거 누가 못해. 나도 하겠다.' 다음 주일,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않으리라 벼른 목사님은 이번에는 그 주정뱅이를 똑바로 노려보고 손가락을 펴가며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5개로 5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자 주정뱅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쳇, 그게 뭐가 어려워? 지난주에 남은 떡이 있잖아!' 설교하는 사람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한 설교학 교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듣는 분들도 잘 가려서 들으면 좋겠습니다.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저는 20년 전 그 교통사고가 떠오릅니다. 아직 유학중일 때였습니다. 유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화가 어떤 전화인지 아십니까? 새벽에 걸려와 '아무개야, 놀라지마'라고 시작되는 전화입니다. 전화를 받아보니 동생의 목소리였습니다. "형, 놀라지마!" 추석 성묘를 마치고 귀가하던 밤길, 빗길 속에 좌회전하다 어머니가 타신 차가 직진하던 차에 받혔습니다. 가족 5명이 타고 있었는데 3군데 병원으로 분산됐습니다. 뇌출혈로 중상인 어머니는 병원을 두 군데나 옮겨 다녔습니다. 추석 연휴였기 때문입니다. 운전자인 작은 아버지가 가장 심하게 다쳤는데, 그 와중에 현장정리하고 구급차가 오니 쓰러졌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에 있다 소생한 어머니는 완전 퇴원하셨는데, 작은 아버지는 병원에서 복통을 호소하다 돌아가셨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를 이틀이나 방치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부검해보니 장과 간과 신장이 모두 파열되어 있었습니다. 먼 외국 땅에 떨어져 있던 제가 얼마나 가슴이 타고 힘들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저는 다른 교통사고 소식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제 가족의 교통사고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식물인간이 된 김수연 씨의 이야기입니다. 남편과 딸과 함께 셋이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차가 완전히 부서지는 큰 사고였습니다. 운전하던 남편과 생후 7개월이던 딸 채연이는 다행히 경상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엄마 수연 씨만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수연 씨의 친정아버지는 그 날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119 구급대에 의해 구조된 사위와 손녀는 곧바로 가까운 종합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차에서 꺼내진 딸은 사고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 개인병원에 실려 갔다가 거기서 시간을 많이 지체한 후 다시 더 멀리 떨어진 종합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런데 식물인간이 된지 5개월이 지났을 무렵, 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하던 친정엄마가 이상한 징조를 발견했습니다. 딸의 배가 자꾸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차례 실시한 수술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직감으로, 또 엄마의 경험으로 '임신'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배가 자꾸 불러오자 결국 임신 검사를 요청했습니다. 두 차례의 검사 끝에 나온 결과는 놀랍게도 임신이었습니다. 이미 임신 6개월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할 때 아기가 이미 들어서 있었습니다. 몇 차례의 대수술에 항생제 치료까지 받았는데도 그 생명이 지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대체 식물인간이 된 그 엄마의 몸에서 새 생명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놀라움을 수습한 가족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처음에 가족들은 아이보다 엄마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식도 없는 딸에게 목숨을 건 출산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미 태아가 많이 자라있는 상태라 무리하게 수술하다 환자까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의료진과 가족은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믿기지 않던 일은, 그 많은 수술과 독한 약물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수검사와 초음파검사에서 아이는 정상이었던 것입니다.

뱃속에서 아기가 태동할 때마다 수연 씨는 순간적으로 발버둥 쳤습니다. 발버둥이나 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팔과 왼다리가 전부였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움직이며 엄마는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임산부는 맛있는 것만 골라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김수연 씨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특수하게 만든 유동식 죽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입으로 넘기지도 못하고 목에 구멍을 뚫어 연결한 호스로 주입했습니다. 산모들이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 많은데 말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친정어머니는 호스에 죽을 넣을 때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런데 출산예정일을 20일이나 앞둔 새벽에 비상벨이 울렸습니다. 산모의 혈압이 갑자기 올라가고 맥박수가 빨라지는 등 진통 초기 증세가 온 것입니다. 산부인과 팀이 달려와 보니 출산 준비가 마친 상태입니다. 그 깊은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신음소리 하나 못 냈습니다. 즉시 제왕절개 수술이 이루어졌습니다. 15분 만에 김수연 씨는 둘째 아이의 엄마가 됐습니다. 아기는 일찍 출산한 미숙아라 인큐베이터에 보내졌지만 건강했습니다. 분만을 마친 수연씨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의 품에 처음 아기를 안겨줬을 때 수연 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생명은 기적입니다. 생명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생명은 성스런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기자들은 한 결 같이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1).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편 36:9).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시편 54:4).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편 56:13).

생명은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생명의 하나님으로부터 온 성스런 선물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생명을 너무도 하찮게 여깁니다. 우리 사회에는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합니다.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합니다. 타인에 대한 생명의 경시는, 사실 자신의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경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기적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중대한 결점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은 생명을 살리고 생명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인들은 생명을 물건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생명을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 즉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도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경시한다는 것은 곧 '모든 생명의 생명'(Life of all life)이신 하나님을 경시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생명을 '길게' 살려고만 하지 '깊게' 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원광대학교 복지보건학부 김종인 교수팀이 재미있는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1963년부터 2000년까지 국내 일간지에 실린 모든 부음(訃音) 기사, 즉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에 게재된 2천 1백 여 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직업별로 조사한 것입니다.

결과를 보니 종교인의 평균수명이 가장 길었습니다. 스님, 신부님, 목사님 등 종교인들이 오래 사는 것은 돈벌이에 대한 압박이나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적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 2위로 오래 사는 사람들은 - 뜻밖에도 - 정치인입니다. 이 이유는 보건학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마도 남을 지배하는 권력과 높은 경제수준이 건강에 도움을 주는 듯합니다. 3위는 연예인입니다. 활발하고 호방한 연예인 특유의 '끼'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합니다. 단점은 불규칙한 생활입니다. 4위는 교수입니다. 무리수를 두지 않는 침착한 학자적 자세와 치밀한 건강관리가 장수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5위는 사업가입니다.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보면서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오래 살게 하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복이 심한 경기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하는 스트레스가 평균수명을 5위로 끌어내렸습니다. 6위는 정부관료, 7위는 법조인입니다. 8위는 예술가입니다. '창조의 기쁨'이 오래 살게 하는 에너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통제 없는 불규칙한 생활도 8위로 평균수명을 끌어내렸습니다. 9위가 체육인입니다. 직업적 필요한 의해 과도한 운동이 체내 유해산소를 대량으로 방출시켜 건강에 해롭다고 합니다. 작가가 10위를 차지했습니다. 보통 낮과 밤을 거꾸로 사는데, 남자 작가들은 담배나 술의 힘에 의지해 글문이 트이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 해롭다고 합니다. 마지막 11위는 언론인입니다. 매일 기사 마감시간에 쫓기고 핸드폰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다보니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삶을 삽니다. 그 심한 긴장이 언론인들을 장수(長壽)에서 가장 불리한 직업으로 만들었습니다. 1위 종교인의 평균수명보다 무려 15년이나 낮았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이 가장 오래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비결 아닌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 즉 평정심(平靜心, serenity)입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한 이유는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감사하고 풍성하게 여기는 소박한 마음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악착같이 벌고 가져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인간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면 그 이상의 돈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한계체감의 법칙' 때문이지요.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데, 첫 번째 컵은 커다란 만족을 줍니다. 두 번째 컵은 첫 번째 컵보다 덜 만족을 줍니다. 그리고 세 번째 컵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컵에 비해 만족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한 대학의 연구팀에 의하면, 생존투쟁의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을 얻는 것은 비싼 돈이 드는 해외여행이나 상품구입이 아니라 오히려 돈이 별로 들지 않는 여가 활동, 특히 종교적 봉사활동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과 생명의 에너지를 나눌 때 인간은 가장 큰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짜로 주어진 삶의 기본적인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 인간은 가장 큰 만족과 평안을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공짜'들은 주변에 많습니다. 따스한 햇살에 해바라기하기, 노을 바라보기, 산책하기, 마음에 맞는 친구와 수다 떨기, 공원에서 운동하기, 맑은 하늘 바라보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듣기, 옆 사람과 상냥한 미소 교환하기 등, 이런 것들은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고 몸의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무엇을 가져서, 무엇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내려주신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감사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 소박하고 풍성한 마음,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삶을 깊이 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실로 파스칼의 말처럼 "생명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이기 때문입니다. 그 '깊이'가 '길이'까지 덤으로 주는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 12:15). 이어서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었는데 그의 밭에서 곳간에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수확이 풍성히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누가 12:19). 하지만 그 때 하나님이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누가 12:20). 이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 12:21). '자신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지난 9월 5일 수요일은 테레사 수녀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지 만 1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던 테레사 수녀는 황금만능주의와 물신주의가 판치는 오늘의 세상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많은 생명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그는 "굶주리고 병든 가난한 사람들의 몸을 만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몸을 만집니다"라고 고백하며 세상에서 가장 가장하고 힘든 땅에서 봉사했습니다. 봉사를 핑계로 개종시키러 온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Christian must be good Christian; Muslim must be good Muslim; Hindu must be good Hindu." 그러면서 그는 종교를 뛰어넘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것에 감동한 사람들은 "우리가 저 수녀가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그를] 쫓아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자신을 위해 소유하지 않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한 하나님을 가졌습니다. 그가 남긴 말입니다. "돈에 의존하거나 돈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사람은 진정 가난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돈을 쓰는 사람은 부자입니다. 싫증을 내지 말고 주십시오. 남는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쌓아두면 쌓아둘수록 줄 수 있는 것이 적어집니다. 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줍니다. 터무니없는 말 같지만 이것이 사랑의 논리입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근처에는 '우거처'(寓居處)라는 곳이 있습니다. 우거처란 '남의 집에 임시로 몸 붙여 사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고(故) 한경직 목사님이 목회에서 은퇴하신 후 돌아가실 때까지 27년을 기거한 곳입니다. 그는 그 집의 이름을 '내 집'이라는 뜻의 주거처(住居處)가 아니라 '남의 집'이라는 뜻의 우거처로 지으셨습니다. 끝까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살려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평생을 가난하게 사신 목사님은 은퇴 후에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평소에 "나는 내게 속한 집 한 칸,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라며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낡았다고 물건을 버리는 법 없이 언제나 고쳐서 다시 쓰곤 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신 후에 남긴 재산은 휠체어 하나, 앨범 몇 권, 그리고 성경책이 전부입니다. 목사님의 침실에는 낮고 좁은 침대 하나와 이불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그 이불장에는 '쓰레기를 줄입시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만들지도 않았을 분이 말입니다. 그렇게 그는 한국교회에 '청빈(淸貧)한 목회자'의 삶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그 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가난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1902년에 태어난 그는 2000년까지 만 98세를 사셨습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평온했고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로 넘쳤습니다. 생명에 대한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 마음이 그에게 이 땅에서 장수의 축복까지 누리게 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상처받고, 찢기고, 낙심하셨습니까? 극도의 전문사회에서 칸막이처럼 고립된 세계 안에 고독하게 사십니까? 급변하는 시대 앞에서 미래의 불확실성과 불안에 사로잡혀 계십니까?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기적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사랑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바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곧 사랑이고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새로 태어난 아가를 위한 노래>를 읊어봅니다. 이 시에서 '아가'를 내가 낳은 아기나 손자 손녀로 생각하지 마시고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들어보십시오. 내가 생명으로 이 땅에 태어났을 때 내 부모가 나를 향해 부른 노래라고 생각하고 들어보십시오. "아가야, 눈부신 아가야 / 어디에서 왔기에 / 이리도 환한 햇살로 안기느냐 // 저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람 중에 / 가난한 우리 집에 태어났느냐 // 나 이적지 신을 뵈온 적 없지만 / 네 예쁜 눈썹 / 쪼그만 입술 / 투명한 손톱에서 / 비로소 신의 향내를 맡아 본다 // 아가야, 너를 보내신 것은 / 분명 사랑의 신이신가 보다 / 신비하고 감사해서 눈물겹구나 // 아직도 젊기만 한 / 이 천둥벌거숭이를." 여러분이 바로 '신의 향내'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신비한 생명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보내신, 눈물겹기만 한 소중한 생명입니다.

성서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임을 확증합니다(창세기 1:11-30, 욥기 33:4, 시편 36:9, 스가랴 12:1, 사도행전 17:25, 히브리서 12:9).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기 33:4).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누가 17;25)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서가 확증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2:6, 시편 36:9).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우리의 성부 하나님은 오늘 시편의 교독문에서 읽은 것처럼 '생명의 하나님'(시편 42:8)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내 생명의 능력"(시편 27:1)이십니다. 그 생명 안에서 오늘도, 이번 한 주도 하늘의 "풍성한 생명"(요한 10:10)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적인 그 생명을 감사하며, 기뻐하며, 아름답게 가꿔 가시기 바랍니다. (2018.9.9.)

오피니언

기자수첩

[뉴스 되짚어 보기] 보수 개신교와 아스팔트

지난 주 전광훈 목사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소식이 여론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와 관련해 보수 개신교와 극우 정치세력의 결합을 우려하는

많이 본 기사

[인물탐구] 거침없는 광폭 행보 보이는 장신대 김철홍 교수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극우 성향의 목회자 중심으로 '문재인 정권 퇴진 범국민총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설교는 한 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