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4)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편집자 주] 우리나라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충분히 민주적인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실제 교회생활에서 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본고는 이 의문과 관련하여, 어떻게 교회가 보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교회구성원들도 보다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책임적인 참여가 현실화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제언하고 있다. 내용은 5회로 나누어 전재될 것이다.

V. 교회의 리더십과 민주적 회중주의

1. 영적인 지도자 직분과 평신도 지도자 직분

침례교인들이 회중주의 정체를 실천한다고 해도, 신약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목회자를 의미하는 영적인 지도자 직분과 목회자를 돕는 평신도 지도자 직분이 있었다. 평신도 지도자들은 목회자들이 말씀준비와 선포 그리고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봉사, 구제, 행정, 재정관리 등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신약성경에는 영적인 지도자를 "장로," "감독," "목양을 하는 자"라고 부르고 있다. 사도 바울이 세 번 째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밀레도 섬에 일시 체류하여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렀다.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행 20:17, 28)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Elders of the Church)을 청하니, ...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Overseers, Bishops)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Shepherds, 목양을 하는 자, Pastors)."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감독자들"(감독들)이라고 부르고 있고, 또한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야 할 자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양 떼인 교회를 보살피는 자들," 곧 목자들(목회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같은 하나의 직분(영적인 지도자)을 기능의 다름에 따라 장로, 감독자(감독), 목자(목회자)로 부르고 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5장에서 사도인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며 자신의 동역자들인 장로들(영적인 지도자들인 목회자들)에게 편지하고 있다. 그는 장로들을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자들,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할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장"(Chief Shepherd)이라고 부르면서 장로의 자세에 관하여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벧전 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사실 신약성경에서 "목사"(poimen)라는 명칭은 오늘날 사용되는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담임목사(Pastor)라는 개념과는 약간 달랐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양을 치며 보살피는 자," 즉 "목자"(Shepherd)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된 말이었다(에베소서 4:11, 공동번역: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표준새번역: "또 어떤 사람은 목회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목회서신들(디모데전서와 후서 그리고 디도서)에서 영적인 지도자를 지칭하는 공식적인 직분으로 "목사"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서신들에 의하면, 단지 "장로"와 "감독"만이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에 대한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신들에서 장로와 감독의 자격을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볼 때, 이들은 별개의 두 가지 직분이 아니라 오늘날 목사 혹은 목회자 즉 영적인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격요건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딤전 3:1-7)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딛 1:5-9)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위의 두 문단에서 "감독"과 "장로"가 상호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감독이 장로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다거나 더 큰 권위를 가진다는 것으로 읽혀지지 않는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장로"는 유대적 배경이 강한 지역(팔레스타인, 알렉산드리아, 수리아, 소아시아 등)에서 주로 사용된 영적인 지도자 명칭이었고, "감독"은 희랍적인 배경이 강한 지역(빌립보, 데살로니가, 로마, 카르타고 등)에서 주로 사용된 명칭이었다고 생각한다. "장로"(presbuteros)는 인생과 신앙생활의 경험이 많아 삶의 지혜를 두루 갖춘 연장자(Elder, Older Man)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고, "감독"(episcopos)은 교인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교회의 전반적인 사역들을 두루 살펴보며 지도하는 자(Overseer, Bishop)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Byron McWilliams, "The Church and its Officers: A Pastor's Perspective," Jason G. Duesing, Thomas White and Malcolm B. Yarnell, Upon This Rock: The Baptist Understanding of the Church, the third ed. [Nashville: B&H Academic, 2010], 157).

오늘날 장로교회에서 장립하는 "치리장로"와 신약성경이 말하는 "장로"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평신도 지도자인데 비해서 후자는 영적인 지도자인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장로교회에서도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은 장로와 집사 두 가지였다. 그런데 디모데전서 5장 17절("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의 말씀에 근거하여, 장로를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로 구분하여 전자는 목사(가르치는 장로)로, 후자는 치리장로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는 안수집사와 함께 3원적인 직분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교회의 공식적인 안수를 받은 직분은 2원적인데, 영적인 지도자 직분인 장로들 및 감독들(오늘날 이들을 목사들 혹은 목회자들이라고 부른다)과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직분인 집사들(딤전 3:8-13, 집사의 자격)이다.

초창기 영국 침례교인들의 신앙고백에 의하면, 영적인 지도자, 곧 목회자를 "장로"(Elder)로 표현하였다. 1644년에 발표된 영국특수침례교회의 "제1차 런던신앙고백"에 의하면, 교회직분을 "목사들, 교사들, 장로들, 집사들"(Pastors, Teachers, Elders, Deacons)이라고 했는데, 2년 후에 발표된 1646년 수정판부터는 "목사들과 교사들"은 삭제되었고 "장로들과 집사들"만이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으로 언급되었다(William L. Lumpkin, Baptist Confessions of Faith [Valley Forge: Judson Press, 1983], 166). 1677년의 "제2차 런던신앙고백"에서는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으로서 "감독 혹은 장로"(Bishop or Elder) 그리고 "집사"(Deacon)로 표현되어 있다(Ibid., 287). 남침례신앙고백인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의 1963년판과 2000년판에서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은 목사와 집사임을 명시하고 있다. "교회의 성경적인 직분자들은 목사들과 집사들이다"("Its scriptural officers are pastors and deacons," Herschel H. Hobbs, The Baptist Faith and Message, 64, 69-70; Douglas K. Blount and Joseph D. Woodell, ed. Baptist Faith and Message 2000: Critical Issues in America's Largest Protestant Denomination [Lanham, NY: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nc., 2007], 212).

신약성경에 묘사된 집사들의 직무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돕는 역할이었다. 집사들은 성도들의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 주고 그래서 목회자들의 부담을 들어주기 위한 직분이었다. 장로교회에서는 가르치는 장로들(목사들)과 치리장로들이 당회를 구성하여 교인들의 대표자들에 의한 "간접적 대의적 과두정치"(Indirect Representative Oligarchy)를 행하지만, 침례교회에서는 회중 전체가 참여하는 "직접적인 민주정치"(Direct Democracy)를 행하기 때문에 안수집사들에게는 원칙적으로 교회를 치리하는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 교회치리의 최종권한은 회중 전체가 참여하는 "사무처리회"(Church Business Meeting, "사무총회")에 있다(Byron McWilliams, "The Church and its Officers: A Pastor's Perspective," 159-61). 단지 규모가 큰 침례교회에서는 각종 위원회들(예를 들면, 예배, 교육, 전도, 선교, 친교, 봉사, 교회음악, 구제 위원회 등)을 두어 집사들과 성도들의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2. 담임목사의 지도력과 민주적 회중주의

회중 전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회중주의 정치는 담임목사의 지도력을 무력하게 만드는가? 담임목사의 강력한 지도력이 교회일에 대한 회중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제한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중주의 정치는 강력하고도 성서적인 목회지도력(Pastoral Leadership)에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회지도력의 은사들이 원활하게 활용되도록 하는 최선의 장치가 민주적 회중주의 정치다(Norman, The Baptist Way: Distinctives of a Baptist Church, 102). 침례교 담임목사는 평신도 지도자들의 과도한 참견과 압력을 받지 않고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신의 목회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외부의 간섭이나 참견을 받지 않고 부담 없이 자유롭게 헌신할 수 있다. 침례교 목사는 발언권이 강한 장로들로부터 압박을 덜 받고, 노회의 간섭이나 참견을 받지 않고 소신껏 목회활동을 감당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담임목사의 독선과 고집으로 교회회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이 되지 않고 독재적인 행정이 강행되어서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난 경우들도 없지 않았다. 또한 신령하지 못한 교회회원들이 세상적인 욕심에서 세상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다수결 투표를 강행하여 담임목사의 지도력을 곤경에 빠뜨린 경우들도 없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민주적 회중정치는 담임목사와 회중 전체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신앙인격과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양자 모두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신앙과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담임목사는 겸손하게 섬기는 종의 지도력(Servant Leadership)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교회회원들은 담임목사의 영적인 지도력을 인정하고 그 분을 잘 따라주는 건전한 추종자의식(Sound Followership)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때 안수집사들(혹은 호칭장로들)은 담임목사와 교회회원들 사이에서 양자 간의 신뢰와 화합을 위해 애써야 한다. 그들은 담임목사의 목회비전과 계획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교회회원들이 어떠한 영적 현실적 필요를 가지고 있는지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담임목사와 회중 사이에 튼튼한 가교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담임목사의 과중한 목회사역에 부담을 경감시켜 주고 안수집사들(혹은 호칭장로들)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역들, 예를 들면 새신자들이나 환자들에 대한 심방, 초신자들에 대한 성경공부 인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성도들을 보살피고 구제하는 사역, 교회활동의 재정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일 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한국적인 상황: 서리집사와 호칭장로 제도

장로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 상황에서, 장로교회의 직분과 교회행정의 관행이 침례교회를 비롯하여 여타 교단들의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에는 직분에 있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 현상을 빚고 있다. 신약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직분들이 교단헌법에 규정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그러한 직분들이 교회에서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성경에서 집사는 안수집사만을 의미하는 직분인데 서리집사 제도가 한국교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이는 목회와 교회행정에 있어서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인 목사들부터 성경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있는 관행이다.

성경에도 없는 "서리집사"는 원칙적으로 1년 임기의 임시직분인데, 한번 서리집사로 임명받으면 그 직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생 따라 붙게 된다. 또한 "권사"라는 직분도 성경에는 없는 직분인데, 서리집사로 오랫동안 활동을 해 온 여성도들에게 담임목사의 임명으로 부여되는 직분이다. 목회서신들(디모데전서와 후서 그리고 디도서)에는 "권사"라는 직분이 언급된 적이 없다. 이렇게 목사-장로-안수집사-(서리)집사-성도, 권사-(서리)집사-성도 등의 직분명칭이 생기면서, 한국교회에서는 직분이 마치 계급과 명예의 상징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경이 말하는 직분은 어디까지나 교회 내에서 봉사를 위한 것이고 결코 높낮이의 위계질서를 세우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교회직분은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지위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교회 내에 직분의 명칭이 많게 되면 자연히 직분들 간에 상하의 위계질서가 생기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인 성도들 간에 위화감과 거리감도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평등해야 할 민주적인 회중주의 행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내에서는 "호칭장로" 문제가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지역교회 내에서 안수집사들 가운데 전부 혹은 일부를 "장로"로 호칭하는 것과 관련하여 지방회와 총회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어 왔다. 침례교 안수집사들이 직장생활 면이나 사회활동 면에서 다른 교단의 장로들과 대등하거나 유사한 위치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침례교회에서만 그들이 (안수)집사로 불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들을 장로로 호칭하여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를 격상시켜 주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다른 교단에서 장로로 안수(장립)를 받아 교회를 섬기던 평신도 지도자들이 침례교회로 이적해 왔을 때, 그들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1986년 기독교한국침례회 제76차 연차총회에서는 호칭장로를 반대하는 여론이 강성하여, 호칭장로 제도를 취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교단 내의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결의가 이루어졌던 적도 있었다(김용복, "제3장 한국침례교회의 직제문제: '호칭장로'를 중심으로," 『다문화시대에 다시 보는 한국침례교회』, 102).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적 상황을 강조하면서 호칭장로제도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결국 2010년 연차총회에서는 호칭장로 제도가 총회의 결의로 가결되기에 이르렀다(Ibid.). 안수집사들에게 장로교의 장로에 해당하는 책임과 명예를 부여하여 교회를 위해 더욱 헌신케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호칭장로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일부 침례교회들에서 안수집사를 장로로 호칭하고 있었던 현실을 총회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인정해 주자는 동기도 있었을 것이다.

4장("침례교 신앙의 특징들과 민주적 회중주의")에서 언급했던 대로 침례교인들은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자율권)을 매우 중요한 교회행정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역교회가 교회 나름의 필요에 의해 직분자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특별한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그 지역교회가 자체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다. 지역교회의 사무처리회에서 안수집사를 장로로 호칭하기로 대다수의 교인들이 찬성하여 결정하였다면 그러한 결의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침례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라는 기본원칙 위에 서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하겠다. 비록 안수집사가 장로로 호칭된다고 하더라고, 이제 그가 장로교회의 당회원처럼 교회회원들을 치리하는 지위에 있게 되었다거나 교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침례교회의 궁극적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고 교회문제 결정의 최종권위는 교회회원들 전체가 참여하는 사무처리회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침례교회에서 호칭장로 제도를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안수집사들을 대외활동의 편의 상 장로로 호칭한다는 것이지 그들을 장로로 안수하거나 장립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장로교회처럼 교회 내에 장로들의 회의체인 "당회"를 구성해서 대의민주주의적인 장로정치를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비록 그들이 장로로 호칭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더욱 겸손한 자세로 헌신적으로 목사와 교인들을 섬기는 봉사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472).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