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고] 유리막을 걷어내고 - 데미안 허스트의 "천년"
민경진 목사 (창솔감리교회 부목사)

입력 Oct 19, 2018 11:14 AM KST
천년
(Photo : ⓒ 민경진)
▲데미안 허스트의 “천년”(a thousand years, 1990)은 인간 세상의 형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세상 더럽고 치사해서!' 살아보겠다고 남들 앞에서 창피도 당하고 비굴해지기도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마음의 소리다. 사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충분히 이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소개하는 작품을 한 번 보시길 바란다.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의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천년"(a thousand years, 1990)이다. 사실 허스트는 1991년에 사치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유명해진 작가이다. 죽음이라는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독특하고 직접적으로 표면화해서 관람자 앞에 내놓는다. 예를 들어, 동물의 사체를 사용하는 식이다. 젊어서 시체닦이 일을 하며 마주했던 경험이 이런 작품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그래도 그것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독특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앞에서 소개했던 "천년"으로 돌아와서, 설치미술인 이 작품은 먼저 구조적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설명이 꺼려지는 것이 작품 자체가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우선 피가 흥건한 소의 잘린 머리가 강철로 프레임이 되어 있는 유리관의 한 쪽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파리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들을 마련해 놓고 가운데는 구멍이 뚫린 유리를 세워놓았다. 아마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면 이 유리관 안은 파리와 구더기로 가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스트는 조명에 전기가 흐르는 그물망을 소의 머리 위에 매달아 놓아 파리가 접근하면 타 죽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관람자는 알에서 구더기가 되어 소의 사체를 먹고 파리가 되어 날아가다가 살충기에 타죽게 되는 일련의 삶의 패턴을 한 눈에 보게 된다. 소의 머리나 파리가 죽게 되는 살충기의 혐오스러움은 작가의 정신세계를 의심하게 할 만큼 기괴하다. 그러나 허스트는 이것을 통해 우리네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길 원했다. 이것은 정말 더럽고 치사한 세상의 축소판인 것이다. "천년"이란 제목은 이런 세상(작품)을 가만 두면 그렇게 천년이 흐를 것이란 암시이기에 더 섬뜩하기만 하다.

여기서 질문 하나.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세상에 들어오신 것일까? 이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신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파리의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파리보다 우리가 한 차원 위의 존재인 듯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큰 착각이지만.) 그것은 파리 세상과 우리 사이가 유리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유리가 두 존재의 차원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해보라! 그곳엔 어떤 숭고함도, 신이 된 듯한 착각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도망치든지 파리를 다 죽이든지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그런 세상에 들어오신 것인가?

예수님의 성육신의 정도가 이 정도일지 상상이나 했을까? 파리보다 못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유리관 안에, 그것도 가장 구석진 곳에 나타나셔서 전기 살충기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이신 것일까? 도망도 안 가고 끔찍한 우리들을 다 죽이지도 않고 유리관에 들어오셔서 손수 피 흘리며 유리를 깨신 그리스도. 단절된 차원을 잇기 위해 낮아지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구원은 그러기에 말로만 된 것이 아니다. 만져질 수 있는 사랑.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인 것이다.

그 은혜가 참 크다. "천년"의 혐오스러움이 크면 클수록 은혜의 역량도 커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유리관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한이 없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된 증거는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주님은 지금도 유리관 안에서 말씀하신다. 일곱을 일흔 일곱 번 더한 "천년"이라도 사랑하라고 말이다.

오피니언

연재

[#산티아고 순례길] Day 1. 당신이 있기에 내

순례의 시작은 파리(Paris)부터였다. 잠시 머물던 파리의 한 민박에서 한국에서 온 세진이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하루 먼저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였고 그와 파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