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산티아고 순례길] Day 2. 한 걸음 내딛을 용기
글·이재훈 목사(쓰임교회 담임)

입력 Nov 21, 2018 03:24 PM KST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 수비리(Zubiri): 5시간 30분 (2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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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3층의 전경이다. 아침이 되면 자원봉사자들의 노랫소리가 신명나게 울리는 모닝콜은 이곳의 잊지 못 할 특색이다.

첫날의 험난한 순례에도 불구하고 몸이 좀 가볍다. 수비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제보단 가벼워진 기분이다. 하지만 단정 짓기 어려운 것은 몸이 건네는 말을 정확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국에서의 긴장과 낯선 곳을 걸으며 오는 땅의 전율이 몸 안에 질서 없이 축적되는 듯하다. 완벽한 준비가 세상 어디에 있겠나, 되뇌며 계속 걸어 본다. 그렇게 정처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더니 어느새 마을로 안내하는 다리가 무척이나 낭만적인 수비리(zubiri)에 도착했다. 욱신거리는 어깨 때문에 산책은 잠시 접어두고 부랴부랴 숙소에 짐을 푼다.

혼자 떠난 해외여행이 처음인 나는 자유에 관한 어떤 불편을 느꼈고 그 불편을 잠재우고자 동행을 찾기 시작했다.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더라. 하지만 동행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에서 산티아고로 출발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사실을 안 것은 한 온라인 카페에서 운영하는 단톡방 초대 때문이다. 그 카페를 통해 매월 산티아고로 떠나는 이들을 위한 단톡방이 개설됐고 난 떠나기를 결정하고 나서부터 그곳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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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순례를 하다보면 아기자기한 마을부터 문명이 화려하게 꽃핀 대도시까지 지나게 된다. 하지만 어느 곳을 가든 순례자들을 향한 환영의 인사 “Buen Camino”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익했던 건 비슷한 날짜에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자들을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단톡방에서 눈여겨보던 또래의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을 수비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미리 말하자면 이들과의 만남이 이번 순례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이 인연이 오랜 동행으로 이어질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알게 된 나의 길벗이 바로 현정이, 지혜, 제영이다.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용기'를 필요로 했다. 철학자 조중걸은 그의 책 <러브 온톨로지>에서 사랑을 논하며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최선이라고 말했다.

"운명은 기성품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맞추어 나가야 할 맞춤복이다. 세계를 우연인 것으로 보느냐 필연인 것으로 보느냐하는 것은 단지 사랑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관을 가르는 두 시각이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우리에겐 최선이 남는다." (조중걸, 『러브 온톨로지』, 세종서적, 2015, p.224)

그는 사랑에 빠져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연인의 테이블에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을 건넨다. 운명의 짝이 그저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이야기는 낭만적 사랑을 무한히 신뢰하는 이들에겐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만약 사랑이나 세상사가 정해진 운명대로 흐르는 게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일의 축적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몫은 무엇일까? 능동적인 태도 다시 말해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적극적인 태도만이 남지 않을까? 그렇기에 의식하며 행동할 최선의 선택은 바로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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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길을 잃진 않을까, 걱정이 될 때면 눈앞에 있는 순례자 화살표를 주목하라. 마음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따르는 이는 길을 잃어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산티아고로 떠나기를 결정하면서부터 나의 모든 운명은 내가 내딛는 걸음의 향방에 있다고 느꼈다. 걸어야 할 때 걷지 않으면 남는 건 아쉬움과 후회, 자기연민이었다. 나를 가두고 있는 틀을 돌파하는 방법은 한 가지였다.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 물론 쉽지 않다. 어렵고 두렵다. 그렇기에 실패할 수도 있다. 분명히 여러 번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한 작지만 위대한 내면의 요구와 마주한 이상 잠잠히 머물 수만은 없었다. 우회하는 길은 없다. 만남이든 떠남이든 이 길에선 피하지 않을 것이다.

캐 묵은 습성을 벗고자 한 걸음 더 '용기'를 내 걸어본다. 이미 수많은 순례자와 함께 했고 또 앞으로도 함께 할 하늘의 은총이 방황하는 이 가난한 영혼 가운데에도 깃들 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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