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율법적인 신앙생활과 복음적인 신앙생활 (2)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철학박사)

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서를 어떻게 대할 것이며, 특히 구약의 율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율법은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율법, 특히 도덕적 율법들(Moral Laws)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무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규범(Norm)인가? 십계명과 십일조 헌금 등의 율법들은 복음의 시대에도 계속해서 유효한 것인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제시한다. 글의 내용은 6부로 나누어 전재된다.

III. 무죄선고와 이신칭의의 복음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어떤 이들은 구약의 율법들을 "의식적 율법들"(Ceremonial Laws)과 "도덕적 율법들"(Moral Laws)로 구분합니다. 의식적 율법들이란 레위인들의 각종 제사법이나 절기와 날과 해에 관한 법이나 유대의 정결법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러한 의식적 율법들은 폐기가 되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렇지만 도덕적 율법들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의무적으로 그것들을 계속해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에서 율법을 언급하면서, 한 번도 구약의 율법을 그렇게 두 종류로 구분하여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고 한 말씀에서, 바울이 언급한 율법은 의식적 율법들뿐 아니라 도덕적 율법들 양자 모두를 통틀어서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식적 율법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도덕적인 교훈이나 삶에 지혜를 주는 "도덕적 율법들"조차도 그 기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모든 율법들의 마침"(End of All the Laws)이 되었습니다.

유대교인 학자(Judaistic Scholar)가 바라보는 구약성경과 기독교인 학자(Christian Scholar)가 바라보는 구약성경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아직까지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메시야로 믿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믿지 않습니다(요 5:38-39).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약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던 메시야로 믿고, 그 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신자들은 생명, 즉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요일 5:11-12). 이것이 바로 복음이지 않습니까?

(요 5:38-39) "너희(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유대교인들-필자 주)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일 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죄가 전혀 없으셨던(히 4:15)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결과적으로 정죄의 원천인 율법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유법유죄(有法有罪), 즉 법이 있어야 죄가 성립됩니다. 무법무죄(無法無罪), 즉 법이 없으면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을 모두 받으셨기 때문에, 그 분을 믿는 자들은 죄 없다는 "무죄선고"(Sentence of 'Not-guilty,' 롬 4:25-5:1)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것("이신칭의," Justification through Faith, 고후 5:21, 갈 2:16, 빌 3:9)이지 않습니까?

(롬 4:25-5:1)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필자 주)를 우리를 대신하여 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빌 3:9, 공동번역)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유죄선고"(Sentence of 'Guilty')의 근거가 되는 율법이 예수 믿고 죄사함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엡 2:13-15)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이 지금도 예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나 불신자들에게는 유효하겠지만, 예수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폐하여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몽학선생(초등교사)이나 후견인이나 청지기인 율법의 조문에 예속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새 주인(New Lord, New Master)으로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그리스도의 주님되심(Lordship of Christ)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인노릇을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진리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요 8:31-32, 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성경책의 가죽 겉표지가 새까만 색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까만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글씨를 많이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까만색 바탕이 흰색으로 바뀔까요?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책을 열면 흰색 바탕에 까만색 글씨가 많이 씌어져 있지요? 까만색으로 더 많은 글씨를 쓴다고 하더라도 흰색 바탕이 까만색으로 바뀔까요? 그렇게 되지 않겠지요.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인인 인간의 마음 바탕은 까만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선행이나 사랑의 구제활동 등의 흰색 글씨가 많이 씌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마음 바탕은 까만색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 그 분의 빛을 받게 되면 죄인인 인간의 마음 바탕은 흰색으로 변합니다. 비록 죄나 악행이 다소 있더라도 바탕이 근본적으로 하얗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의 신분(Status of Sinner)으로부터 의인의 신분(Status of Righteous Man)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신분을 가졌지만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가지고 사는 한, 선하지 못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죄악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회개를 동반하는) 믿음으로" 인간의 마음은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죄선언과 이신칭의의 복음입니다.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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