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산티아고 순례길] Day 7. ‘우연’이 주는 즐거움
글·이재훈 목사(쓰임교회 담임)

입력 Dec 22, 2018 02:24 PM KST

로스 아르고스(Los Arcos) - 로그로뇨(Logroño): 6시간 (2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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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그림 같은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이라니, 어찌 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산티아고 순례길과 그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다시 가슴이 뛴다.

오늘은 피레네 산맥을 넘은 후 가장 오래 걷게 될 그런 날이다. 하지만 이놈의 감기는 눈치도 없이 여전히 코와 목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사실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기 가장 꺼렸던 이유 중 하나는 언어 때문이다. 그렇다, 영어 울렁증을 말하는 게 맞다. 이미 일주일 넘게 외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 울렁증은 어딜 가질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솟아나는 이 긴장감은 길에서 만난 외국 순례자들과 나 사이에 자꾸만 벽을 세운다.

긴 대화를 나누곤 싶지만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접촉'과 '회피'라는 모순된 갈망이 이 촌스러운 순례자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 외국 순례자가 내게 말을 길게 걸 것 같으면 인사 몇 마디만 주고받은 채 잽싸게 걸음의 속도를 높인다. 왜? 민망과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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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걷다보면 간혹 자신이 신었던 신발을 가리비 표지석 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중에 새 신발을 산건가? 한 쪽만 올려놓았다면, 그럼 다른 한 쪽은?’ 잠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까미노에서도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순 없는 법이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폴란드인(a pole)이면서 가톨릭 신자인 한 순례자를 만나 함께 걷게 된다. 대부분 순례자들이 그렇듯 그도 단출한 복장이었는데, 몸 한 구석이 불편해 보였다. 다리를 절고 있던 것이다.

그의 얼굴은 영적여정을 떠난 사람처럼 종교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무릎의 통증도 자기 짐의 일부인양 어떤 불평도 없이 걷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어딘가 엄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평소에 만난 순례자들보다 조금 길게, 더듬거리며 몇 마디 더 나눴을 뿐인데 그와 헤어지고 나니 그와 나눴던 대화와 그의 함께 걸었던 시간이 자꾸 생각이 난다. 좀 누추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에게 이 산티아고 순례는 어떤 의미였을까?

청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기석 목사는 유럽의 한 성당에 들어가 제단 위 그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 신앙이란 위협이나 시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두려움 없이 직시하는 것이구나. 제단에 가까운 곳에서 이런 그림을 만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상당히 훈련된 사람이라 해도 이런저런 시련과 영적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김기석, 『흔들리며 걷는 길』, 포이에마, 2014,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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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이른 아침의 Bar와 점심의 Bar에는 항상 사람들이 만원이다. 웅성웅성, 왁자지껄! 주문을 하려는 순례자들과 꼬깃꼬깃 쌈짓돈을 꺼내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점원을 보는 것도 순례의 쏠쏠한 재미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교를 갖는다는 것 혹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는 것과 무관한 것 같다. 종교인이 된다 해도 삶의 지지부진은 면치 못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의 빛과 조우한 사람은 자기 안에 어떤 변화의 단초가 심겨진 것이기에 그는 이전과는 다른 삶의 과정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에둘러 말했지만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신앙은 여정이지 도착지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삶의 시간은 이전과 동일하게 흐르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곧 신앙의 신비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폴란드 순례자는 이 길을 걸으며 시련이나 위기 또한 자기 삶의 한 단면임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의 손에 들린 나무 지팡이가 목적지까지 가는 그의 걸음을 든든히 지탱해 주고 있는 듯 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로그로뇨(Logroño)'는 팜플로나만큼 규모가 큰 도시다. 그래서 거주하는 인구가 꽤 많은 편인데 그러다보니 이곳에선 동양 사람이 운영하는 마트나 식당도 만나게 된다. 우리 일행은 운 좋게 중국인이 운영하는 마트 하나를 발견했고 오늘 저녁은 고향 음식을 먹을 지도 모를 거란 생각에 모두가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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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개인적으로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기괴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그 모습들이 참 좋다. 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팀 감독의 영화에 나올법한 풍경들이 나타나자 망설이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역시나'였다! 유럽 음식이 물릴법한 동양의 순례자들을 위해 고추장과 김치, 라면 등이 진열대 위에서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을 오아시스로 임명했다. 오늘은 현정이를 중심으로 한국인 밥상을 꾸려볼 작정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가득 장바구니를 짊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웬걸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에 주방이 없다. Oh, my God! 그러나 주방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파리민박에서 만난 동생 세진이를 로그로뇨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일주일만의 재회다. 서로 묵는 알베르게는 달랐지만 바로 근처에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세진이가 머무는 알베르게에는 주방이 있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이웃 알베르게에서 도둑 같은 식사를 마쳤다. 그러고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다른 사연을 안고 있는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떨어져 있던 사이에 나도 세진이도 각자의 동행 그룹이 생겼다. 만남은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졌다. 오늘을 기점으로 두 개의 순례자 그룹이 새롭게 재정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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