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어린아이처럼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입력 Dec 31, 2018 04:53 PM KST

- 미가 6:6-8, 로마서 8:26-28, 누가복음 8: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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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1666년 9월 2일, 영국 런던에서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한 빵집에서 시작된 불은 동풍을 타고 번지며 나흘 동안이나 중세의 목조건물들을 집어삼켰습니다. 근대적 소방체계가 없던 때라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가옥 약 1만 채가 전소됐고, 성당도 약 100개가 불탔습니다. 가뜩이나 때는 1666년이었고, 요한계시록의 숫자 '666'에 대한 공포로 인해 영국인들은 세상의 종말이 임박한 줄 알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당시 국왕이던 찰스 2세는 불탄 건물들의 복구를 위해 왕립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수학자인 크리스토퍼 렌 경에게 성(聖) 바울 대성전(St. Paul Cathedral)을 위시하여 55개 교회당의 재건축을 위촉했습니다. 그 성당은 거기 1천 년 동안이나 서 있었습니다. 당대 가장 훌륭한 건물이었고,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건물이었습니다. 전승기념식이 열리고 왕과 시민이 만나는, 그야말로 런던의 중심이었고 상업과 문화의 핵이었습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렌 경은 공사장에 나가 돌을 깎고 있는 석공들에게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첫 번째 석공에서 물었습니다. "자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예, 저는 저 네모난 벽에 끼어 맞출 돌을 깎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석공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무얼 하고 있나?" "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셋째 석공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자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네, 저는 지금 성바울 대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똑같이 돌을 깎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는 각각 달랐습니다. 첫 번째 석공은 자신의 일을 실무적인 차원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두 번째 석공은 자신의 일을 가족의 생계부양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석공은 자신의 일을 높고 원대한 안목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돌을 깎는 일은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석공은 자기 삶에 대한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2018년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정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한 해를 어떻게 기억하시겠습니까? 어떤 시간들이었다고 말하시겠습니까? 그 모든 수고와 눈물과 아픔 그리고 기쁨의 의미가 무엇이었다고 말하시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그 세 번째 석공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지금 성바울 대성전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그 석공처럼 어떤 일을 하든 '나는 지금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다'는 높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소명(召命, vocation)이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이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남다른 능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언젠가 앨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에게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슈바이처 박사의 소문을 듣고 자신들도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보려고 아프리카를 찾아온 자원 의료봉사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박사는 이렇게 잘라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앞으로 여기서 하게 될 일이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거면 지금 집에 가시오.' 슈바이처는 영웅이 되려는 생각을 경계하면서 그들에게 오직 '진실한 열정'(sober enthusiasm)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토머스 케플러 목사는 그의 명저 『성자와의 여행』(A Journey with the Saints)에서 성서와 역사에 나타난 수많은 위인들을 연구하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서와 역사에 나타난 위인들은 모두 시간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결코 서둘거나 바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과 연결시켜 생각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올 한 해 어떤 일을 하며 사셨습니까? 지난 365일이 어떤 의미의 시간이었다고 기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우리 역시 세 종류의 답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머니나 아버지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밥하고 빨래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지금 애 키우기 위해 돈 벌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으며,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맡기신 한 아이를 훌륭한 인간으로 키우고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공부하는 학생이라며, '저는 지금 수학 미적분 3장 1절을 풀고 있다'고 답할 수도 있고, '앞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할 수도 있으며, '나는 지금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 중에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과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일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엘레나 파스퀼리(Elena Pasquali)가 쓴 『세 나무 이야기』(The Three Trees)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영미권에서 오래된 전래동화를 그림동화로 만들어 밀리언셀러가 된 책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올바른 신앙적 가치관과 꿈을 심어준 책입니다.

옛날 옛적 어느 산에 올리브나무와 떡갈나무 그리고 소나무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미래를 꿈꿨습니다. 첫 번째 올리브나무는 아름다운 보석상자가 되어 세상의 온갖 값진 보석들을 담고 싶어 했습니다. 두 번째 떡갈나무는 사람들을 많이 태울 수 있는 커다란 배가 되어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소나무는 하늘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이 자라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몇 해가 지났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자신이 꿈꾸었던 것과 달리 그저 평범한 여물통이 되어 말과 소들이 먹는 짚이나 마른 품을 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무도 큰 배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어부들이 타고 다니는 자그마한 고기잡이배로 만들어졌습니다. 세 번째 나무 또한 몸통이 잘린 통나무가 되어 산 아래 통나무 더미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세 나무는 자신들이 꿈꾸었던 대로 미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무척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은신처를 찾는 한 젊은 목수와 임신한 그의 아내가 여물통이 있는 마구간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여물통을 정성껏 닦아 새로 태어난 아기의 요람으로 사용했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 바로 메시아라는 보물을 담은 상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갈릴리 호숫가에 사는 몇 명의 어부들과 함께 자그마한 고기잡이배에 올라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물 위로 걸어갔고, 거친 바람과 파도를 잠재웠으며, 병든 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고기잡이배는 이제 고기를 잡지 않고 그와 함께 진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낚는 이들을 태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3년이 지났습니다. 통나무 더미에 누워있던 세 번째 나무는 그 사람이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는 십자가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통나무로 버려졌다가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를 모시는 영광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동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성경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서에서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 55:8-9)고 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걸음을 인도하신 이가 여호와임을 믿습니까? 내가 내 길을 계획할지라도 내 생각보다 높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를 하나님의 높은 길로 인도하심을 믿습니까? 내 생명이, 내 삶이,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 안에 있음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 사랑과 경륜에 온전히 자신을 믿고 의지하십니까? 어린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듯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여러분을 온전히 맡기고 계십니까? 우리 유스콰이어가 불러줄 마지막 노래 '어린 아이처럼'의 가사처럼, "엄마 아빠 없인, 다른 아무 것도 소용없는 어린 아이처럼" 그렇게 "늘 순진하게 주님만, 늘 주님만 바라보며" 사십니까? "걱정 근심 모두 다 주님께 맡기고, 순진하게 주님만 바라보며" 사십니까? 그렇습니다. "저 하늘나라는 어린이 나라"입니다. "어린이 같아야 거기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누가 8:17)고 말씀하셨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지난 한 해 무엇을 하며 사셨습니까? 단지 돌을 깎아 벽 속에 짜 맞추고 계십니까?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돌을 깎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해 돌을 깎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삶과 일을 하나님의 은혜와 경륜 안에서 바라보고 있습니까? 진실로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미가 6:8)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의 선한 뜻과 부르심 안에서 새해에도 기쁘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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