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산티아고 순례기] Day 9. 설렌다면 당신도 청춘
글·이재훈 목사(쓰임교회 담임)

입력 Jan 05, 2019 08:25 AM KST

나헤라(Najera) -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4시간 (2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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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인생에 여러 선배가 있듯이, 까미노(camino)에도 순례 선배가 있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눈을 감고 목례를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은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은 순례 선배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다.

산보(散步) 정도였다. 필자는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미 말한 적 있지만 이 순례는 급히 떠나온 순례였다. 배낭과 등산화 끈 조절도 잘 할 줄 몰랐으니 준비 없이 떠난 순례가 확실하지 않은가.

까미노를 걸은 지 아홉째다. 이제야 배낭을 몸에 밀착되게 메는 법을 터득한다. 그것도 스스로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료를 통해서다. 배낭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하나가 되는 느낌,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밀착된 배낭의 새로움이 문득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떠나야만 했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오늘도 아침 햇살을 맞으며 현정이, 지혜와 함께 출발한다. 늘 그렇듯 발맞추어 걷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각자의 보폭으로 각자의 속도에 맞게 걷는다. '따로 또 함께'를 반복한다.

오늘은 좀 지루해지면 들으려고 아껴두었던 음악을 재생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나만의 세계로 빠져본다. 사실 오늘은 감정이 좀 복잡한 하루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우린 청춘이 아니었던가. 싹튼 이 감정이 홀로 걷고 있는 나를 더 깊은 고독 속에 침잠하게 만든다. 용기 없는 자의 자기연민일까? 속으로 '괜찮다, 괜찮지 않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오늘 하루는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특별한 날이라서 그럴까? 오늘은 한국 순례자들인 선영이와 현정이, 지혜와 세진이가 모두 뭉치게 된 날이다.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고 함께 식사를 나눈다. 이게 뭐 특별하냐고?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이와 관련된 사연을 말하기 위해서는 며칠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처음 본 선영이는 순례 중에 마주치면 조금은 무심한 듯 때론 냉소적으로 나를 대했다. 그런 반응에 의기소침해진 나는 무안함만 간직한 채 그녀를 앞질러 걷곤 했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더 반복된다. 그녀의 반응에 이유를 알 수 없던 나는 소심한 복수를 계획한다. 또 마주친다면 나도 쌀쌀맞은 말 한마디로 그녀의 가슴에 흔적 하나 남겨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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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항상 말없이 걷던 동료 순례자가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녀는 마치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산뜻해 보인다. 이 순간을 놓칠 새라 힘주어 한 컷 남겨본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저 앞에 선영이의 모습이 보인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녀 옆을 지나며 "왜 그렇게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나"고,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을 꼭 그렇게 차갑게 대할 필요가 있냐"는 멘트를 날리며 유유히 사라진다. 난 '그래, 괜찮은 시도였어. 괜찮은 복수였다.'라고 생각하며 그 자리를 벗어난다.

그 일이 있고 네 번의 밤이 더 지났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선영이를 '산토 도밍고'에 입성하자마자 마주친 것이다. 겁나 깜짝 놀랐다.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선영이는 짐을 풀지도 못한 나를 붙잡고 근처 Bar로 향한다. 그녀는 오해를 풀고 싶다며 목을 시원하게 축여줄 맥주(Cerveza) 한잔을 내게 건넨다. 정신없는 이 상황에 기분마저 혼미하다.

작가로 전향한 前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은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에 관한 말이었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혼,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彼岸)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의길, 2013, p.56)

우리는 사람에게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사람에게서 가장 많은 치유를 얻는다. 결자해지(結者解之)가 여기에도 해당되는 말일까? 오늘 그렇게 청춘 순례자 다섯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물론 잊진 않는다. 하나의 오해가 풀리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중 일은 나중으로 미뤄두자. 오늘 하루의 일은 이 정도면 족하다. 오늘은 아주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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