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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진의 횡설수설] 김예령 기자 질문과 문재인 대통령 표정

입력 Jan 12, 2019 08:54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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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JTBC 보도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질문하고 있는 경인방송 김예령 기자의 모습.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경직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의 질문과 대통령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런데 중간에 경기방송의 김예령 기자가 질문을 했다. 대통령의 표정은 김예령 기자의 질문을 듣는 내내, 그리고 대통령 자신이 질문에 대답을 하는 내내 굳어져 있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그 냉랭한 반응이 못내 아쉬웠다.

화용론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발화는 명령문에 가깝다. 어떤 한 발화가 이루어지면 그 발화는 그 발화가 속해있는 상황 속에서 타자에게 하는 명령의 기능을 갖는다. 일례로 누군가 "밥"이라고 말을 한다면 그 말은 "밥 줘"의 의미할 수 있고, 연인사이에서 "누구랑 밥 먹었어?"라는 질문은 "아무하고나 같이 밥 먹지마"를 의미할 수 있다. 발화를 통한 명령체계는 극히 미묘하여 그 의도는 발화자 자신조차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수 있고, 또 발화자 자신이 의도적으로 일차적 명령의 의미를 교묘하게 감출 수도 있다. 형식적으로 그 발화가 의문문이든 감탄문이든, 또는 내용적으로 그 발화의 의미가 어떻든지 간에 발화자는 청취대상에게 일말의 반응을 명령한다. 그래서 아무런 반응도 청취자가 보이질 않으면, (이해하기 쉽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속어로 이야기해보자) 일명 자신의 발화를 청취자가 씹으면, 발화자는 매우 기분이 나빠진다. 발화자체는 메타적으로 청취자의 반응을 명령하기 때문이고, 그 명령을 청취자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취자가 발화자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예령 기자의 질문은 사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명령이었다. 아니, 사실은, 김예령 기자의 질문은 본질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하기 이전에 그 질문을 함께 듣고 있던 전 국민을 향한 명령이었다. 왜 그런가?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새해 복 받으라는 첫인사는 "나를 상식적이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생각하라"라는 의미이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당부는 "나를 공공을 염려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라"의 의미이다. 이것은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국민을 의식해서 한 발언이다. 김예령 기자는 지금 당장은 대통령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자신의 질문을 TV로 시청하는 국민들에게 온통 관심이 향해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질문의 첫 머리, "오늘 기자회견문 모두 발언을 보면"은"내가 없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바를 근거로 하여 앞으로 말 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말을 신뢰하라"고 국민들을 향해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서 성장을 지속시키겠다고,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론이 매우 냉랭하다는 것은 대통령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라는 말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이 매우 냉랭하다고 생각하라"는 국민에 대한 명령이다. 또 "현실경제가 매우 얼어붙어 있습니다"라는 말은 "현실경제가 매우 얼어붙어 있다고 믿어라"를,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는 국민들을 향해 "너희들은 많이 힘들다. 아니, 힘들어 해야만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이어서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합니다"라는 말은 "희망을 여차하면 버려라. 즉, 다음의 말을 내가 곧 할텐데, 이 명령을 대통령이 따르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희망을 반드시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부담감이 굉장함을 인지하라"를 의미한다.

이제 명령의 핵심이 되는 문장이 이어진다. "대통령께서 계속해서 이와 관련해서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를 하시고 있는대요. 그럼에도 대통령께서 현 정책에 대해서 그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그런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는 국민들을 향해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을 바꾸라는 나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데 그러지 않을 거면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야만 함을 명심하라. 그리고 대통령의 답변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저 염치없는 변명일 뿐임을 반드시 인지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시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는 "대통령이 단호히 자신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따른 대통령의 소통부족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고 국민들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만이 유일하게 문재인 대통령을 향하고 있는 명령인바, 그것은 "나는 명령하는 자가 아니다. 질문하는 자다. 당신은 나의 명령을 질문으로 받아드려야만 한다"를 의미한다. 그런데 명령이 아닌 질문으로 받아들이라는 이 마지막 인사말이 이 질문들 안에 숨어있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진정한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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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YTN 보도화면 캡처)
▲김예령 기자의 질문이 작동하는 방식은 분명하다. 먼저 김예령 기자의 질문은 국민들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은 이유 불문하고 경제정책의 변화를 취소하고 과거 보수정권의 정책으로 회귀해야만 한다고 명령하고 있으며 국민들을 자신의 명령으로 세뇌시킨다.

김예령 기자의 질문이 작동하는 방식은 분명하다. 먼저 김예령 기자의 질문은 국민들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은 이유 불문하고 경제정책의 변화를 취소하고 과거 보수정권의 정책으로 회귀해야만 한다고 명령하고 있으며 국민들을 자신의 명령으로 세뇌시킨다. 그래서 자신의 명령에 세뇌된 국민을 등에 없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 명령이 아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 당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한다. 내 말을 따르라. 그런데 당신은 내 뒤에 있는 세뇌된 국민들이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그런데 모든 질문은 역시 명령이다. 곧 "내 뒤에 있는 세뇌되고 있는 국민들을 보고 나의 말을 따르라!" 더 나아가 이 명령은 "나를 인정하라. 나의 질문을 보았지 않는가? 나의 여론 선동 능력을 보지 않았는가? 나한테 잘 보여라. 아니다. 오히려, 나를 잘 봐 달라. 나를 무시하지 말라. 이것은 명령이 아니다. 질문이다. 아니다. 명령이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의 말을 씹지는 말라. 나에게 대답하라. 적어도 나에게 일말의 관심은 보여라. 나를 무시하지 말아 달라!" 내가 여기에 있다!"

김예령 기자의 질문은 대통령을 향한 질문이라기보다는 먼저 국민을 향한 명령과 선동이었고, 이를 통해 자신이 방금 직조한 허위 국민 여론을 볼모로 문재인 정부에게 자신도 잘 봐 달라는 앙탈을 부렸던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정말 악의에 찬 선동꾼들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김예령 기자가 그렇게 악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저 세상의 관심이 필요한, 그리고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그 평범한 기자 중 한 명으로 보였다.

그런데 왜, 그 온화하고 자상한 미소를 간직한, 마음 넉넉한 옆집 아저씨 같은 우리의 대통령은 김예령 기자를 향해 웃어주지 못한 것일까? 과연 우리의 대통령은 그 순간, 그렇게까지 앙탈을 부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을 향해 일말의 연민 혹은 인류애조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그러한 선동적인 질문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만 한다. 물론 김혜령 기자의 질문 태도에 장단을 맞추어 줄 수는 없겠지만, 그저 그 밝은 미소 한 번쯤은 띄어 주는 것이 국민을 향한 진정한 대통령의 자세는 아니었을까? 그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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