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목회와 헌금
크리스찬북뉴스 서상진 편집위원(미래로교회 담임)

입력 Feb 04, 2019 03:39 PM KST
purse
(Photo : ⓒpixabay)
▲목회와 헌금.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역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타오르는 열정 하나 만으로 시골 어느 한 교회에서 전도사라는 칭호만 받아서, 찬양팀을 지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그 뜨거운 열정과 감정만 앞섰던 그 시절, 그래서 무엇이든지 한번 해보겠다고 하는 마음만 뜨거웠던 시절, 나에게는 열정이 있었습니다(물론 지금도 그 열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때 저는 의성 지역에서 꽤 잘나가는(?) 찬양 인도자였습니다. 그 때 교회에서 내어준 작은 교회 안의 방에서 기거를 하면서 찬양팀과 함께 거하던 그 때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시골에 있다 보니, 새벽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시골에는 농번기가 되면 4시에 새벽 에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참 어렸을 그 나이에 새벽 4시 전에 일어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 일어났을 때는 거의 새벽 예배 때는 유두고와 같은 예배 드림이 전부였죠. 한번은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었는데, 그 때도 어김없이 기도를 하다가 졸고 말았습니다. 한참 졸고 있었는데, 졸았지만, 기도하고 있었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저의 어깨를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입고 계셨던 몸빼이에서 꼬깃꼬깃 한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저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심을 사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시장 노점 상에서 산에서 띁은 산나물을 팔아서 생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어렵게 번 돈을 제가 어떻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괜찮다고 했더니 끝까지 저 손에 쥐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고집을 피우셔서 결국 그 돈을 받기는 받았지만, 그 돈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에 제 돈을 조금 더 보태서 할머니 빨간 내복을 한 벌 사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내는 돈을 헌금이라고 합니다. 그 헌금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들의 눈물과 피와 삶의 애환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헌금을 교회에 드리는 이유는 헌금을 통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름답게 사용하라고 드리는 것임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그렇게 헌금을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교회에서 그 헌금을 사용할 때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사용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제가 새벽에 할머니에게 돈을 받았던 그 때가 23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 때 저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중에 목사가 되면 헌금은 정직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요. 오늘 인터넷의 한 기사를 보니 헌금의 공공성이라고 하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헌금은 한 개인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헌금은 대를 이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또한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데, 귀하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주일마다 헌금을 드린 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나라와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매 주일 빠지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주일 목회의 현장에서 그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했던 그 약속을 제 자신에게 되새기며 오늘 예배도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http://www.cbooknews.com) 편집자칼럼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오피니언

칼럼

[김기석 칼럼] 조롱당하는 그리스도: 프라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화가입니다. 그는 이십 대 초반에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가 일평생 수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