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산티아고 순례기] Day 14.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글·이재훈 목사(쓰임교회 담임)

입력 Feb 09, 2019 10:32 AM KST

부르고스(Burgos) - 호닐로스 델 카미노(Honillos del Camino): 5시간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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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유난히 삐걱거리던 알베르게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누가 자리를 정해 준 것도 아닌데, 2열로 걷고 있는 동료 순례자들의 모습을 보니 장난 끼가 발동한다. 순간을 놓칠 새라 잽싸게 셔터를 찰칵!

하루 쉬었으니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부지런히 걸어간다, '따로 또 함께'를 반복하며.

그런데 오늘은 지금껏 괜찮던 양쪽 새끼발가락에 통증이 느껴진다. 걷는 내내 모든 신경이 그곳으로 향한다. 보름 가까이 물집이 잡히지 않았기에 한국부터 챙겨온 소독약과 발가락 양말 등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버리자니 앞일을 알 수 없고 챙기자니 짐의 무게가 늘어나는 곳, 매순간 선택이 압축적으로 다가오는 곳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통증을 일으키는 이놈의 물집. 익숙해질 때까지 신경 쓰일 이 물집은 목에 걸린 가시 같다. 완전히 삼키거나 끄집어 내지 않으면 계속 성가시게 할 이놈의 '가시'는 피부에 생긴 작은 오름인 '물집'과 그 시조가 같은가 보다. 외면해도 계속 존재감을 드러내는걸 보니.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양말을 조심스레 벗어본다. 양쪽 새끼발가락에 오름이 통통하게 솟아있다. 발가락 저 깊은 곳부터 차오르고 있는 이 물집은 아직 바늘로 찌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바짝 여물어서 추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까 이 상태로 며칠을 더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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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대도시를 지날 때 마다 결혼식 촬영장을 목격하게 된다. 관광객인 내가 봐도 예쁜 도시인데,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는 이 도시의 풍경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더구나 앤티크(antique)한 차에 결혼식 촬영이라. 낭만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삶의 근원, 그 본질 언저리에 접속한 인물이기에 릴케의 말은 새겨들을 것이 많다. 일상의 신비를 풀어 설명해 주는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려고 한다. 릴케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병든 몸의 치유책은 어떤 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기다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 전문을 들어보자.

"당신은 자신의 몸 상태를 감시해야 할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병이든 의사가 손을 쓸 수 없이 마냥 기다려야 하는 많은 날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병을 치료할 의사로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보다도 바로 이것, 즉 가만히 기다리는 일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p.89)

우리는 바쁜 일상 때문에 '시간'의 개념을 잊고 산다. 시간의 흐름을 자주 망각한다는 말이다. 해야 할 업무가 많은 날은 특히 그렇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이미 퇴근시간이 가까웠다. 물론 퇴근시간이 왔을 뿐 퇴근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저녁도 못 먹고 야근 행 기차에 바로 몸을 싣는다. 정신없이 일에 쫓기다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는 것은 부지기수다. 후회한들 흘러간 시간을 보상받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늘 우리에게 자신을 바라봐줄 것을 요구한다.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는 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말과 같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은 시간을 추억할 때 반드시 기억나기 마련이다. 즐거움의 순간이든 고통의 순간이든 후회의 순간이든 내가 살아 있던 순간의 기억은 세월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음이 시키는 일들을 했던 순간은 선명함으로 다가온다. 내가 살아 있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간들을 살아냈다는 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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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이른 아침, 한적한 동네의 한 Bar에서 먹는 토르티야(tortilla)와 빵,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는 순례자들에게 내리는 하늘의 만나(manna,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받은 신의 특별한 식량)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시간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제대로 보기 위해 달리던 선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멈춰서야 한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릴 때 반드시 멈춰서는 시간을 갖는다. 영혼의 속도는 말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은 '몸의 시간'과 '영혼의 시간'을 구분 지었고 둘 사이의 보폭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민하게 살폈던 것이다.

우리는 잘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제대로 보기 위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열심히 달리던 말에서 내리면 누구나 불안해진다. 세상에서 혼자만 뒤쳐진 거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견뎌내야 한다. 관성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은 필요한 법이다.

릴케도 삶을 바로 보고 참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기다릴 줄 알아야 함을 말하려는 것 아닐까? 기다림을 통해 시간과 친해지고 화해할 수만 있다면 몸과 마음의 질병 중 많은 부분이 치유될 것이다. 잊지 말자. 때론 우회하는 길이 가장 빠른 길임을 말이다.

당분간 양쪽 새끼발가락에 터 잡은 물집을 내 몸의 일부인양 그 '꼴' 그대로 걸어가 볼 예정이다. 바쁠 것 하나 없으니 속도를 늦춰 걸어가라는 하늘의 뜻이라 여기며 내일의 태양을 맞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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