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회자와 식사 대접

크리스찬북뉴스 서상진 편집위원(미래로교회 담임)

dinner
(Photo : ⓒpixabay)
▲목회자와 식사 대접. 위 사진은 해당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예전에 섬기던 청년이(이제는 애 아빠지만) 점심 때 전화가 와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하자고 약속을 하고 교회에 도착을 하면 전화를 하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따뜻한 순대국밥 한 그릇을 했습니다. 늘 저에게 오면 점심값을 내는 데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번에도 점심값을 계산하고 나오는 그에게 점심 잘 먹었다고 했더니 최고로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오늘 먹은 밥이 최고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는 비싼 음식 대접을 꽤 많이 받았습니다. 대구에서 유명한 식당은 많이 다녔죠. 그래서 좋은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다녔고 그런 곳을 가지 못한 동역자를 좀 무시하기도 했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랬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돈을 벌어서 헌금을 하고 그 돈으로 자신들은 먹지도 못했던 음식과 갈 엄두도 못한 식당을 거리낌 없이 갔던 지난 날의 나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운 것입니다.

최근에 백종원씨가 식당을 컨설팅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제 오전에 재방송을 보았는데 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의 사연이었습니다. 하루에 10만원을 판 것이 최고의 매출이었고 백종원씨가 분식집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해서 실행한 검증단이 분식집에서 주문을 하는 방법이 분식집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에게는 너무벅찬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주문에 당황했고 너무 힘겹게 일을 해 냈습니다. 그러나 백종원씨는 이런 환경을 창업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 모른채 시작하기에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식당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힘들게 돈을 벌고 하루에 10만원을 벌면 무조건 적자이고 20만원을 벌면 조금 나아진다는 말 속에서 라면과 김밥을 몆개 팔아야 20만원을 벌 수 있을까요? 그런 성도들의 땀을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한 채 한 끼에 몆 만원씩 하는 것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먹었던 저의 모습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어떤 부흥회에서 우리나라의 이름난 부흥사인 이모 목사가 자신은 자연산 회가 아니면 안 먹고 저녁에 1인분에 15만원짜리 돔을 먹었다고 설교 시간에 자랑하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내가 비싸다고 생각되는 그 음식은 대접하는 성도들의 생각도 비싼 음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라는 이유로 대접을 하고 그 대접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받는다면 진짜 이건 아닙니다. 적당한 선에서 대접하는 문화를 우리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겨울에 뜨뜻한 순대국밥 한 그릇. 여름이면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에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라고 한다면 그 어떤 음식보다 더 좋은 식사의 시간일 것입니다. 식사는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맘 편하게 부담 없이 먹는 식사가 진짜 좋은 대접이고 훌륭한 음식일 것입니다. 저와 국밥 한그릇 하실 분 언제든지 오십시요. 맘 편히 밥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http://www.cbooknews.com) 편집자칼럼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5]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의 터전을 마련한, 아우구스티누스!

"서방신학은 동방신학보다는 출발이 좀 늦었으나 곧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암브로시우스 등의 교부들이 주축이 되어 착실하게 발전해갔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4] 카르타고 학파의 거침없는 변증과 교회론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의 신학을 오늘날 살피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들의 신학은 현실적이고 참여적이고 실존적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