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역사적 진실 외면하는 세력이 발붙일 곳은 없다

우리 사회에 심각한 숙제 안긴 5.18망언 파동....개신교도 각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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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출처 = 오마이뉴스 )
'자유한국당 망언의원 퇴출, 5.18역사 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시민궐기대회'가 16일 오후 광주광역시 옛 전남도청앞 금남로에서 열렸다.

지금 정치권의 화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40여 년이 지난 일이고, 역사적·법적 판단이 이미 내려진 일이기에 얼핏 뜬금없어 보인다. 그러나 5.18광주는 현재형 이슈다. 16일 오후엔 광주 금남로에 대규모 집회까지 열렸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8일 자유한국당 이종명(비례)·김진태 의원(춘천) 등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아래 공청회)였다. 연사를 맡은 극우논객 지만원 씨를 비롯해 이종명·김순례 의원은 5.18을 폄훼하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사실 보수 내지 극우 세력의 5.18 폄훼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대표적인 인사가 공청회 연사였던 지만원 씨다. 지 씨는 2012년 무렵부터 북한군의 5.18개입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 씨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2012년 12월 지 씨의 주장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지 씨와 극우 세력들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 보수 야당 정치인도 찬동했다. 그러다 급기야 지 씨가 자유한국당 의원 일부를 등에 업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의 연사로 나선 것이다.

처연한 정체성 찾기 몸부림

정치권의 논란과 별개로 왜 보수(내지 극우) 세력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그토록 확신하는지, 왜 5.18의 의미를 깎아 내리는지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7년 7월 소설가 황석영은 시사주간지 <시사 iN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발언은 5.18을 폄훼하는 극우-보수 세력의 속내를 살짝 드러낸다.

"한국 정치에서 극우 보수한테 가장 큰 걸림돌이 5월 광주다. 광주를 어떻게든 변질시키려고 보수 세력이 총체적으로 공격한다. 5·18 유족회라든가 5·18 기념재단을 공격하고, 심지어 5·18 유공자 자녀에 대한 공무원 시험 가산점 제도를 과장 날조해서 공격해댔다."

극우·보수 세력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은 극우 논객에게서도 나온 바 있다. 또 다른 극우 논객 조우석 씨는 올해 1월 1일 전두환 씨의 부인인 이순자 씨와 대담을 나눴다.

이때 이 씨는 남편 전 씨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극찬했다. 이러자 조 씨는 "5공화국은 찬반 문제가 아니다. 5공화국에 대한 증오는 반(反)대한민국 정서를 만들어 내는 교두보"라고 맞장구쳤다. 문제의 공청회를 주최한 김진태 의원도 "5.18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5공화국'으로 불리는 전두환 정권은 광주민주항쟁을 탄압한 결과로 탄생했다. 그리고 보수 세력이 멀게는 친일 세력과, 가깝게는 군부독재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극우 보수 세력의 5.18 폄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극우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 개인이든, 단체든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알려는 노력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앞서 적었듯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미 대법원도 관련 사안에 대해 허위라고 판단 내렸다.

만약 북한군 개입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다. 만약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우리 군의 방위선 어딘가가 뚫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군 침투경로를 소상히 밝히고, 침투경로를 책임지는 부대가 어느 부대였는지, 누가 책임자였는지 여부도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게 순서다.

사회적 합의를 재구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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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KBS)
극우논객 지만원 씨는 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5.18 북한군 개입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논란이 분분함에도 자유한국당은 아랑곳 없다. 한국당은 14일 이종명 의원을 제명하고, 김진태·김순례 의원 징계는 당 규정을 들어 전당대회 이후로 미루기로 확정했다.

징계를 면한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폭주의 속도를 높이는 모양새다.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김순례 의원은 "살려 달라. 자유 우파의 가치를 지키는 겸손하고 절제된 용어로 앞장서는 여전사가 되겠다"고 외쳤다. 김진태 의원도 스스로를 "행동하는 우파"로 규정하고 "만약 당대표가 되지 않으면 김진태, 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저를 지켜주셔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요약하면, 두 의원은 오히려 논란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소비하는 셈이다.

5.18 폄훼 주장을 일삼는 부류와 이들을 제도권 정치에 끌어 들이는 행태는 실로 경악스럽다. 이런 최근의 사태는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적잖은 고민거리를 안긴다.

다시 말하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내려진 상태다. 5.18 당시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주장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법적 판단이 존재한다. 심지어 전두환 씨 조차 2016년 6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혀(모른다)"고 답했었다.

그럼에도 5.18 북한군 개입설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아무리 사실을 제시해도 소용없다. 문제는 이런 근거 없는 주장이 앞으로도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2일자 칼럼을 통해 "고통스러운 건 그들이 사라져도 ‘5·18 부정하기'는 그치지 않으리란 것이다. 별로 닮지도 않은 얼굴 몇 개를 앞세워 ‘북한군 5·18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출몰할 것"이라고 적었다.

권 위원은 더 나아가 "5·18은 예고편일 뿐이다. 10년, 20년 뒤엔 세월호 참사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국회에 등장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참으로 끔찍하지만 인정할 수 밖엔 없는 경고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들의 준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본의 대표적 혐한단체인 '재특회'를 탐사 취재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의 조언은 훌륭한 참고사례라고 본다.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의 준동을 막을 특효약은 없다고 단언했다. 대신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재특회 현상을 차단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세력은 세계도처를 활보한다. 히틀러를 신봉하며 자신을 스스로 비주류 역사학자라고 칭한 영국인 데이빗 어빙은 홀로코스트가 날조됐다는 주장을 거리낌 없이 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나서 자신이 당한 일을 증언해도 어빙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파고들어 허점을 찾아낸 뒤 생존자를 모욕했다. (이 이야기는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모티브가 됐다)

어디 그뿐인가? 일제 강점기 성노예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이 생존하고, 위안부의 존재를 입증할 기록이 속속 발견됐거나 되는 와중이다. 그럼에도 책임을 져야 할 일본 정부는 줄곧 모르쇠다. 이런 틈을 타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은 피해 할머니를 욕보이는 발언으로 2차 가해를 자행했다. 김진태·김순례 의원이 사회적 파장에도 아랑곳없이 5.18 폄훼를 일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아무리 사실을 들이댄들, 소용없다. 그보다 사실(내지 역사) 왜곡과 이를 일삼는 세력들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주장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주장이 동등한 대접을 받아선 안되다.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존재한다. 지구는 둥글고,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으며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피식민지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 또 북한군은 5.18광주에 개입하지 않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존재는 전두환 씨다.

개신교계라고 책임이 자유롭지 않다. 5.18망언 파동 3인방 가운데 이종명 의원과 김진태 의원은 개신교 신자다. 2016년 4월 총선거에서 김 의원이 당선되자 그가 출석하는 춘천중앙교회 권오석 담임목사는 "김 당선자는 신앙생활을 꾸준히 잘하고 있는 집사"라고 치켜세웠다. 5.18폄훼 주장의 주된 소비층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사회 공동체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부정과 왜곡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이 점이 이번 5.18 망언 파동이 우리 사회에 안긴 숙제일 것이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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