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연탄재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입력 Mar 04, 2019 03:41 AM KST

- 요엘 2:12-15, 베드로전서 4:7-10, 누가복음 18: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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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요즘 연탄 한 장 값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매년 10-20%씩 올라, 현재 800원입니다. 고지대 달동네나 옥탑방 등에는 배달료가 더해집니다. 그러면 장당 1,000원에 육박합니다. 그래서 요즘엔 연탄을 '금탄'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약 14만 가구입니다. 대부분이 에너지 취약계층입니다. 정부가 '화석연료 지원금'을 없애면서 서민들의 겨울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연탄은행'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17년 전 허기복 목사가 원주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수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노숙자로 전락하던 시기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던 시절, 정말 가혹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허기복 목사가 원주 시내를 지나가는데 노숙자로 보이는 분이 점심값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허목사는 제발 만 원짜리가 아니라 오천 원짜리가 나와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런데 만 원짜리 지폐가 나오고 말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자 '아, 나도 속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고맙다고 말하며 돌아가는 노숙자의 젖은 눈을 보면서 허목사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분이 또 배고파지면 다시 구걸해야 되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허기복이 아닌가! 허기진 자에게 땅에서 나는 을 나누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허기복'이라는 이름값을 해야겠다고 시작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별한 은행인 '연탄은행'입니다. 우리도 이름값을 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이 은행 전국협의회의 부회장으로 일하는 춘천제자교회의 정해창 목사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연탄신학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분은 15년째 연탄 배달부로 사는 목사입니다. 또한 밥상 공동체를 통해 에너지 빈곤층과 영세 어르신, 실직자, 노숙인, 여성가장,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생명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신학을 공부하면서 '정통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등 수많은 신학을 공부했지만 '연탄신학'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영어로 무어라 했을까 찾아보니 "Yeontan Theology"입니다. 저자 정해창 목사는 연탄이 "이 시대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가난과 추위, 아픔과 눈물의 상징이 연탄"이라고 말합니다. 연탄신학의 뿌리는 '허(虛)의 정신'입니다. 허는 '비어 있음' 혹은 '아무 것도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 시대 가장 낮고 춥고 어두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다 태우고, 다 비우고, 다 없애버려서 그들의 눈물과 아픔을 치유하고, 생명을 지키고 살려내는 것이 연탄"입니다.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 연탄차가 부릉부릉 /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 생각하면 / 삶이란 /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저도 기억이 납니다. 추운 겨울날, 눈이 내려 미끄러운 빙판길 위엔 밤새 불타고 하얀 재가 된 연탄재를 깨뜨려 길을 내던 옛날이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다 태우고, 다 비우고, 다 없애버려서 세상을 따뜻하게 덥히고 생명을 지키는 것이 연탄입니다. 정해창 목사는 바로 예수님의 삶이 연탄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을 새번역 성서로 읽어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다 비우고, 다 태우고, 다 없애버려 세상에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불살라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신, 연탄과 같은 분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내어주고 비움으로써 세상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운 분입니다.

다석(多夕) 유영모 선생은 "허공(虛空)이야말로 모든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절대공'(絶代空)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가득 찬 것을 좋아하고 빈 것은 싫어합니다. 빈 지갑, 빈 통장, 빈 곡간은 질색입니다. 사람도 빈털터리면 어디가도 대접을 못 받습니다. 이렇게 빈 것을 얕보는 버릇이 있어서 사람들은 허공까지 무시합니다. 그러나 유영모 선생은 "빈탕[즉 허공]이 존재 전체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절대공을 사모한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야 참이다. 이 허공이 하나님이다... 우주가 허공 없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허공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피리는 속이 다 비어야 깊은 소리를 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자신을 비우고 '빈탕' 즉 허공이 되었을 때 온 세상에는 하나님의 피리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불살라버림으로써 예수님은 이 차갑고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 사랑과 빛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이정하 님의 시 <사랑은 비어 있는 것입니다>를 인용해봅니다.

"사랑은 비어 있는 것입니다. / 아무런 조건 없이 다 주고 / 자신은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 한 방울의 물이 시냇물에 / 자신을 내어 주듯 그 시냇물이 / 또 바다에 자신의 물을 내어주듯 / 사랑이란 것은 자신의 존재마저도 / 그대에게 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그리하여 사랑할 때 / 단 한순간이라도 어느 한 사람을 / 진정으로 사랑할 때, /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은 비어 있어야 합니다. // 그때 사랑은 비로소 비어 있는 / 당신에게 가득 차게 됩니다. / 그 비밀스런 문을 열어 / 당신에게 가득 흘러들게 됩니다."

연탄이 타면 하얀 재만 남지만, 따뜻한 사랑은 영원히 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자신을 다 불태워주셨기에 우리에게 그 사랑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연탄'[briquette]이라는 말은 없지만 석탄을 의미하는 '숯'[coal - 이사야 6:6, 사무엘하 14:7, 예레미야애가 4:8 등] 혹은 '숯불'[charcoal - 이사야 47:14, 잠언 26:21, 요한 18:18, 요한 21:9 등] 등의 구절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로 돌아간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기 위해서 호숫가에 숯불, 즉 석탄을 피우시고 그 위에 생선을 구우시기도 했습니다(요한 21:9). 한 장에 800원, 일반인들에게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연탄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지치고 병든 사람들에게는 하룻밤 생명을 지켜주는 사랑의 파수꾼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연탄이 넉넉히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연탄의 구멍은 스물 두개인데, '행복'(幸福)이란 글자를 한자로 쓰면 딱 스물 두 획으로 연탄구멍 숫자와 똑같아집니다.

곧 사순절(四旬節, Lent)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40일 간의 거룩한 절기입니다. 사순절의 시작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입니다. 올해는 3월 6일, 이번 주 수요일입니다 이 날의 공식적인 이름은 '재의 날'(Day of Ashes)입니다. '재'라는 용어는 이날 성도들이 재로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하고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쓰였고, 이 날이 '수요일'인 이유는 사순절의 끝인 '성토요일'로부터 역산하면 사순절이 항상 수요일에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재는 인간의 유한성과 슬픔 그리고 회개와 정결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흙(먼지, 재)에서 와서 흙(먼지, 재)으로 돌아갑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창세기 3:19)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성서에서 재는 슬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는 민족 멸망의 위기 앞에서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했습니다(에스더 4:1-3). 이복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다윗의 딸 다말은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눈물로 정의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사무엘하 13:1-19). 셋째로, 무엇보다 성서에서 재는 회개의 상징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요엘 2:12-15)고 강력히 회개를 촉구합니다. 다윗은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눈물 섞인 물을 마"시며 회개했다고 했습니다(시편 102:9). 에스겔 선지자는 "재 가운데에 뒹굴며" 회개했습니다(에스겔 27:30). 욥도 "재 가운데에서" 회개했습니다(욥기 2:6-9, 30:18-20, 42:5-6). 요나에게 회개하라는 말을 들은 니느웨의 임금은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서" 회개했습니다(요나 3:1-10). 다니엘 선지자도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다니엘 9:1-3). 이렇게 구약성서에는 하나님 앞에서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고 금식하며 참회하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늘날에도 '대속죄일'(Yom Kippur)에 이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지막 넷째로, 재는 또한 정결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민수기는 부정한 자의 죄를 깨끗하게 하려면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우슬초를 가져다가" 뿌리라고 말합니다(민수기 19:16-19).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히브리서 9:11-14).

이렇게 재는 성서에서 인간의 유한성과 슬픔 그리고 회개와 정결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재를 교회의 절기 전통에서는 한 해 전 종려주일에 쓰였던 종려나무 가지들을 말려 두었다가 그것을 태워서 재로 만들어 '재의 수요일'에 사용합니다. 재가 갖고 있는 모든 상징적 의미들을 품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립니다. 이마에 십자가를 표시하는 전통은 초대교회부터 있던 전통입니다. 성서에는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 "이마에 표를 그리라"(에스겔 9:4) 혹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라"(요한계시록 7:3)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상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신다는 표지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시입니다. 오늘 읽은 교독문처럼,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로마서 14:8)이라고 말합니다. 주중에 모이기 어려운 대학교회의 특성상 오늘 우리는 이러한 '재의 예식'(Imposition of Ashes)을 예배 중 거행하려 합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인용해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Please refrain giving a kick on ash of a briquette with your foot, but think if you even once were a warm person to someone as it did burn of itself).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에겐가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습니까? 혹 시인의 말처럼,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습니까?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는 연탄재와 같이 식은 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연탄불과 같이 뜨겁게 타올라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온몸을 불태워 우리의 언 몸을 녹여주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성경말씀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가복음 12:30) 하셨습니다.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누가 10:27)고 하셨습니다. '대충'이 아닙니다. '미지근하게'가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고'(with all your heart) '뜻을 다하고'(with all your mind), '힘을 다하고'(with all your strength), '목숨을 다하여'(with all your soul)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전 존재 전체를 불살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신약서신도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7-8).

이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주간입니다. 영어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The Passion of the Christ"라고 합니다. "The Suffering of the Christ"라고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의 뜨거운 열정(passion)이 그를 고난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뜨거운 분이셨습니다. 연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재가 되신 분입니다. 그 정결한 십자가의 재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하늘 보좌 위에 앉아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불태워버림으로 사랑을 몸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이 재의 십자가를 받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이마나 손등에 십자가가 표시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유로 인침을 받아 영원한 생명과 은혜 안에 살게 되었음을 확증하십시오. 그리고 이 재의 표시를 받을 때 여러분의 가슴도 연탄불처럼 뜨겁게 타올라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세상을 덥히고 밝히는 삶을 사십시오. 티끌같이 유한한 인생이니 영원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이기심으로 가득 찬 욕망의 인생이 빈탕의 하나님 앞에서, 없이 계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심으로 모든 것을 품으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다." 그렇습니다. 덤덤하고 의미 없는 삶을 먼지처럼 사는 것보다,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찬란한 섬광 속에서 열정의 불꽃을 한껏 불태우며 사는 것이 기독교적인 삶입니다. 시인의 말대로, 참으로 삶이란 연탄재처럼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 그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 연탄재의 길이 예수님의 진리와 생명의 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캄캄해도 / 우리 가슴에 사랑의 불꽃 하나 있으면 / 그 불꽃을 모아 /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 아무리 세상이 절망적이어도 / 우리 마음에 희망의 빛 하나 있으면 / 그 빛을 모아 / 온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정해창의 시, <작은 사랑 아름다운 세상>). 길이신 예수님의 이 연탄길을 따라 뜨겁게 사랑하며 사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길 기도합니다. (20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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