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김기석 칼럼] 진흙 등불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입력 Mar 06, 2019 11:22 AM KST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겨울 한복판에 봄기운을 숨겨두신 주님,

주님은 세상의 모든 것들 속에

주님의 영을 불어넣어 새롭게 만드십니다(시104:30).

우리 속에도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냉랭한 이 세상에 봄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나무는 겨울에 봄눈을 준비한다. 봄은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선다. 겨울 기운이 걷히기도 전에 봄을 준비하고 노래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지혜인가? 농가월령가는 정월령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정월은 맹춘이라, 입춘 우수 절기로다. 산중 간학間壑에 빙설은 남았으나, 마을녘 광야에 운물雲物(하늘 모양과 천지간의 경물 또는 경치)이 변하도다."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세상에 하늘의 숨결이 닿으면 만물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눈석임물 소리에 눈을 뜬다.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고, 번갯불을 시종으로 삼으신 분, 땅의 기초를 든든히 놓으실 뿐 아니라 물의 경계를 정하여 땅을 뒤덮지 못하게 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이 계절은 우리에게 말없이 증언한다. 주님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다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은 다시 창조된다. 흙으로 빚어진 인류의 첫 사람에게 불어넣으셨던 그 생기는 지금도 우리를 살리고 있다. 눈을 뜨면 보인다.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주님의 생기.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시104:24).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인간의 마음이 빚어낸 어둠과 절망과 폭력과 권태가 가득한 세상에서 차마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리석은 말이다. 그런 세상이기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가를 부르고 또 불러야 한다.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고, 욕망을 확대재생산함으로 유지되는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에게서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 사람들은 즐겨 욕망의 식민지 백성이 된다. 더 많은 것, 새로운 것을 소유하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한다. 피로가 일상이 되고, 타자를 우리 속에 받아들일 여지는 점점 좁아진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는 살아남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우리는 암묵적으로 동의한 채,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함으로 발생하는 사람다움의 길에서 벗어나곤 한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외로움과 불안이 우리 삶을 확고히 장악한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지만 마음의 헛헛함은 가시지 않고, 분주하게 달려가지만 숨만 가쁠 뿐이다. '존재의 충만함'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잿빛 우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저 크고 넓고 깊은 세계와의 접촉이 아닐까? 어느 분은 신앙을 먼 빛의 시선이라 정의했다. 눈앞의 현실에만 몰두하며 살다보면 시야는 좁아지고,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삶을 성찰하지 못하게 된다. 신앙은 하늘의 눈으로 이웃과 세상과 역사를 보게 만든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수단으로 삼는다든지 물화시키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된다. 자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욕망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자연의 '있음'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시인들은 자연 속에 깃든 하나님의 숨결을 읽는다. 어쩌면 무정물처럼 보이는 것들 속에서 신적 광휘를 읽어내고, 신의 언어를 발견하는 이들이 바로 시인인지도 모르겠다.

구상 시인은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뜨니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만상이/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라고 노래한다. 눈을 뜨고 못 뜨고의 차이가 이렇듯 크다. 감탄과 경외심이 우리 마음을 채울 때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든든한 기둥 하나가 우리 내면에 선다. 공허와 우울은 스러지고 삶을 한껏 살아낼 용기가 생긴다. 성 프란체스코는 인간을 '진흙 등불'이라 했다. 인간은 흙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빛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욕망의 전장으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우리의 그 '등불'은 가물거리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이 재는 법, 무게 다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러러보는 법, 놀라고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다. 장엄함을 느끼는 감각이나, 인간 영혼의 보이지 않는 위대함과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으로 부여된 어떤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은 좀처럼 심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세계는 평면이 되고 인간의 혼은 텅 비게 된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현실이 이러하기에 하나님의 숨을 간절히 기다린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빚어진다. 사람의 영혼이 사뭇 납작해진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더불어 병든 세상을 치유하기를 원하신다. 비록 진흙에 불과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면 우리는 '진흙 등불'이 되어 어둡고 냉랭한 세상을 밝힐 수 있다. 겨울 한 복판에 들어선 봄처럼, 역사의 봄을 선구하는 이들, 그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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