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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함'-신을 해명하는 것이 아닌 신을 실천하는 것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신익상 박사편

입력 Mar 11, 2019 06:03 PM KST

본지는 올해 특별기획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신앙을 실천하는 젊은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현실 속 신앙과 실천 사이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한편 그 벌어진 간격을 좁힐 수 있도록 돕는 신앙성찰적인 내용을 담으려 합니다. 행동하는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시간에 다름 아닙니다. 그 첫 편으로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신익상 박사를 만나봤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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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신익상 박사를 만났다.

Q: 먼저 요즘 매우 바쁘게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전에 인도에 연구 프로젝트로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대요.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신 것인가요?

신익상 교수: 연구재단 일반 공동연구를 성공회대학에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성공회대 두 분, 연세대 두 분, 이화여대 두 분, 서울장신대 한 분의 교수님들께서 함께 참여하고 계시고 연구 제목은 대충 이렇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상황에 대한 신학적 성찰.

Q: 제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신익상 교수: 네. 저희 연구는 제1세계와 비1세계를 먼저 나누고 두 세계에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바를 연구하고 하고 있어요. 비일세계의 대표를 인도로 상정해서 인도에 가서 관찰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라스베거스에서 매해 열리는 CES 2020라는 가전제품 박람회에 참석해서 일세계의 4차 산업혁명 상황을 살펴보려 하고 있습니다.

Q: 인도의 4차 산업혁명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신익상 교수: 저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일종의 브랜드가 인간의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인데 아직은 연구의 초입부라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연구 과정 중에서 줄곧 느끼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갖는 고질적 한계가 문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의 틀 위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일례로 인공지능 연구도 초창기에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학교에서 진행되었는데 국가에서 주도하는 연구는 지속성을 띠기가 참 어렵죠. 그래서 이제는 기업에서 연구자들도 스카웃을 하고, 그래서 기업 주도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4차 산업혁명도 결국은 기업가들의 이윤창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Q: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인데도 간략하게나마 연구에 관해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바꾸어보죠. 박사님 프로필이 흥미롭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었는데 전공을 신학으로 바꿔서 대학원을 다니셨죠? 아주 힘든 길인데 어떤 계기로 전공을 바꾸게 되셨나요?

신익상 교수: 실수였어요! 하하! 사실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너무 소명의식이 강했어요. 그 당시에는 먼저 물리학을 공부해서 자연의 이치에 대해 이해하고 그 후에 신의 이치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둘 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우리는 자연의 이치에 대해서도 신의 이치에 대해서도 온전하게 알 수 없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진리를 사유하는 존재의 입장과 해석이 중요하게 부각되기 마련이지요. 어렸을 때는 그것을 몰랐어요.

Q: 자연의 이치, 신의 이치를 말씀하시니까 진화론과 창조론의 다툼이 생각나는군요. 이 둘이 양립가능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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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신익상 박사를 만났다. 왼쪽은 장효진 객원기자.

신익상 교수: 자연의 이치, 신의 이치를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것에 대해서 다시 질문을 하시는군요. 창조론과 진화론이 양립가능하기 위해서는 창조론이면 창조론, 진화론이면 진화론이라고 할 만한 하나의 대상이 정립되어야만 해요. 그런데 그렇게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창조론, 하나의 진화론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양립가능성 여부에 대한 질문의 대상 자체가 애매모호한 거지요. 이 두 진영이 마치 명확한 인격적 실체인 것처럼 대화나 갈등의 주체로 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모두 상상의 산물이죠. 제 생각에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양립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질문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봐요. 대답하고 싶어도 문제가 되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Q: 자연과학은 언제나 실증성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찾기에 시초 문제가 안 나오지만, 철학이나 신학에서는 그 시초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왔잖아요. 창조론은 그 시초 문제를 다루고, 진화론은 실증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에 이 둘이 양립가능 한 것은 아닌지가 제 질문의 의도였습니다. 이 두 이론이 각기 다른 영역에 위치하는 대도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아서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신익상 교수: 저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 더는 형이상학이나 시초 문제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신학이 고민을 해야 할 문제도 그런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문제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그런 문제에 매달리고 싶지 않아요.

Q: 저도 스피노자의 철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창조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학자에게는 창조의 문제가 중요할 것 같아서 질문을 드렸는데 교수님께는 더는 신을 해명하는 것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익상 교수: 저에게는 신을 해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신을 실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보시죠. 그때 기독교가 유지하던 스탠스가 그 절박한 상황에 무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 사건을 신으로 해명하려고 해서였던 거지요. 그 사건을 신의 뜻이라고 기독교가 말해버린 순간 기독교는 스스로 무너져 내린 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신의 뜻일 수가 있지요? 물론 제 학문의 시작은 형이상학이었어요. 사실 물리학도 오랫동안 철학에 속해있었고,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물리학에서도 많이 던지곤 합니다. 물리학 이후에 공부했던 신학은 두말할 것도 없이 형이상학적이고요. 즉 신으로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해명하려고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신학은 신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에요. 신을 실천하는 것이지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에게 필요했던 신학이 신으로 그 사건을 해명해주는 신학이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 사건 속에서 신의 뜻을 실천하는 신학이었을까요?

Q: 말씀을 들어보니 무엇인지 모르게 신학이란 신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학의 진정한 문제는 해명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말씀 새겨두어야겠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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