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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특별기고문] 사월의 할렐루야: 부활절 아침에
최영실(성공회대 명예교수)

입력 Apr 21, 2019 06:43 AM KST

'할렐루야'를 부를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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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과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교파를 초월해 드린 개신교 부활절 연합예배 전경. 세월호 리본이 달린 부활절 달걀이 인상적이다.

4월, 죽은 것 같은 대지에 생명이 솟는다. 개나리, 목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먼 산에 피는 진달래가 진홍빛으로 눈부시다. 시인 이영도 님은 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진달래'를 이승만 정권의 총칼에 의해 스러진 4. 19의 젊음 넋들로 노래하면서, '맺혔던 한이 터지듯 온 산하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고 피맺힌 울음을 울었다. 우리의 굴곡진 역사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한 젊은 넋들이 어디 4.19의 '그들'만이었을까? 4.15 제암리 학살 사건, 제주 4.3 학살 사건, 4.9 인혁당 사건, 그리고 바로 5년 전, 304명의 무고한 생명이 속절없이 죽임당한 4.16 세월호 참사!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픈 역사의 4월에 교회는 부활절을 맞는다. 이번 부활절에도 아마 대규모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교회들에서는 부활을 축하하며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나눠 주고, 성가대는 부활절 칸타타를 부르며 '할렐루야'를 찬송할 것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레-엘 루야" 아픈 역사의 희생자와 죽음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저 부활절 할렐루야 찬송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픈 역사'와 무관한 교회들의 '할렐루야'

강대국의 지배와 침략, 전쟁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죽임 당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들은 무엇을 했을까?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3. 1 운동 이후 교회가 '몰역사적'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일제 말, 친일로 돌아선 교회 지도자들, 남북분단 이후 친미-반공의 노선에선 대다수의 교회들이 분단과 독재 정권의 불의에 침묵하고, 고난 받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이원론적인 영(靈) 주의와 기복신앙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의 세월호 참사 3주기 증언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정말 부끄럽게 만든다. "참사 초기에 기독인 유가족들은 '한국교회 큰일 났다. 무슨 일이 나도 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 부정부패가 드러났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교회가 부끄러워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역할 못했다고 자책하고, 대대적 회개 운동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건 막말뿐이었습니다.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찬송가, 주여 삼창, 할렐루야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강자들의 거짓 이데올로기와 불의를 심판한' 하느님을 '찬양하라!'

도대체 무엇이 한국교회를 이토록 몰역사적으로 만들고, 아픈 우리의 역사에서 고난 받는 이들을 외면하게 만든 것일까? 강자들의 지배와 분단 구조에서 만들어진 '정교 분리'와 '반공'이라는 '거짓 이데올로기'들이 아닐까?

지난 4월 16일 아침, 이해인 수녀님이 쓴 4.16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시 '그 슬픔이 하도 커서'를 눈물로 읽었다. "잊으십시오 기다리십시오 라는 말을 가볍게 내뱉었던 우리의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이기심으로 방관하고, 비겁함으로 방치하는 못난 실수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나는 "해인이 너도 빨갱이 무리에 속했냐?"라는 어느 독자의 댓글을 읽으며 수녀님의 시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분통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지금까지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고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온 저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반공 이데올로기!'

우리 교회 안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며, '화해와 평화를 이루라!'는 예수의 말씀은 '반공' 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한 낱 한 낱 '헛소리'가 되어 버린 것만 같다. '반공'을 절대적인 신적 규범과 율법처럼 신봉한 극우적인 기독교인들은 지난 날 '극우단체'의 일원이 되어 무고한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정죄'하고, '죽이는' 일도 자행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죽이면서도, 그것이 '하느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믿었듯이(요 16: 2). 그리고 지금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빨갱이'를 몰아내자고 소리치고 있다. 도대체 예수의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예수의 부활은 불의한 지배 권력자를 심판한 구원과 승리의 사건이다!

예수의 부활은 관념적인 것도, 하나의 은유나 비유도 아니다. 또 그것은 어떤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 같은 자연현상이나 '자동사'가 아니라, '타동사'로서, 불의한 자들이 예수를 '죽였지만 하느님이 예수를 일으켜 살게 한' '타동사'이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의 죽음은 역사적이며 정치적인 것이다. 예수는 로마의 식민통치 하에서 남쪽 예루살렘 사람들로부터 '이방인'의 '더러운 죄인'으로 멸시받던 '갈릴리'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방의 개', '죄인'이라는 '죄의 짐'과 억압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법을 이용하여 불의를 저지르던 예루살렘 귀족들과 종교가들이야 말로 '죄인'이라고 심판했다. 예수의 이런 설교는 당시 지배자들의 법 체제, 무엇보다 약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변절된 예루살렘 성전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부터 흔드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예수는 "국가를 전복시키고(눅 23:2)," "온 유대를 다니면서 백성을 선동한(눅 23:5)" 죄인이라는 죄목으로 유대 종교가들에 의해 고발당했다. 그리고 로마는 정치범을 매달 때 사용한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 예수를 살해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사도행전 저자는 베드로의 설교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선포한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를 하느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행 4: 10). 예수를 죽인 세상 권력자들의 거짓 이데올로기와 불의한 법 체제를 심판한 사건, 바로 이것이 예수의 부활소식의 핵심이다. 골로새서는 예수의 부활을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세우고, 구경거리로 만든(골 2: 12-15)"사건으로 증언한다. 이 놀라운 부활소식 때문에 우리는 부활절을 기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할렐루야를 기쁘게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불의에 맞서 '싸우고', '고난당하며' 부르는 '할렐루야'

한국교회는 '할렐루야'를 그 의미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부르는 것 같다. 신약성서에서는 요한 계시록에 잠깐 언급될 뿐, 예수와 바울, 요한, 그 어디에서 '할렐루야'라는 말이 없다. 구약에서도 시편 113편-118편에서 몇 번 나오는 데, 이때의 '할렐루야'는 약자의 호소를 듣고, 불의한 대적들을 심판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할렐루야'는 억울함을 당했던 약자들이 부르는 찬송이다. 불의한 강자들이 약자를 억압하고 불의를 저지르면서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예수를 믿으면 고통과 고난이 없이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죽은 후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자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죽음과 그를 살리신 하느님을 믿으면서, 지금 이 땅에서,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자신을 못 박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산 자들(롬 6:3-11)'이다. 그들은 지금 이미, '죽음을 이긴 자들'(롬 8: 35-39)로서,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불의한 자들에 맞서 '싸우고'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간다. 바울은 이 '고난'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특권(빌 1: 29)' 이라고 말한다.

부끄러운 한국교회의 역사에서도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올바로 깨달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 머물지 않고, 고난의 역사의 현장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불의한 독재정권 하에서 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지금도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40여년의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온 4.3 희생자들, 4.16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빨갱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불의한 통치자들을 심판하고, 죽임 당한 자를 살리신 그 하느님을 '할렐루야'로 찬양하면서. 이번 부활절 예배에서 우리 교회들도 단순히 "부활을 축합합니다!", "할렐루야!"로 인사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 인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았으니, 우리도 이 고난의 역사 현장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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