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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가 보훈의 날, 누구를 추모할 것인가?

입력 Jun 01, 2019 07:31 AM KST

[편집자주] 본지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미국 종교 인터넷 신문인 Tikkun에 게재된 칼럼 '국가 보훈의 날, 누구를 추모할 것인가?'를 번역해 싣는다. 이 칼럼은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492-Present』(New York: Harper, 1995)의 저자 고 하워드 진(Howard Zinn: 1922-2010) 박사의 글로 1976년 6월 2일 Boston Globe에 게재한 칼럼이기도 하다. 서광선 본지 회장(이화여대 명예교수)이 번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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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미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올해도 우리는 국가 보훈의 날을 지킨다. 죽은 전사자들을 예년처럼 배신하면서, 더 많은 전쟁들을 준비하고 있는 정치가들과 무기 장사꾼들의 위선적 애국심으로 준비하면서 그 많은 무덤들 위에 오늘도 예년처럼 더 많은 꽃다발을 얹어 놓을 것이다. 그러나 전사자들은 좀 다르게 추모되어야 할 것이다. 전쟁을 마다하는 정부들에 저항하여, 평화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1974년 Boston Globe 신문의 편집인, 톰 윈십(Tom Winship)의 요청으로 이 신문의 논설란에 2주일마다 기고하게 되었다. 윈십은 1971년 당시 월남전의 역사에 대한 국방부 비밀문서의 일부분을 용감하게도 기사화한 사람이다. 나는 거의 1년 반 동안 논설을 기고하였다. 아래에 게재하는 나의 기고문이 1976년 6월 2일자, 그해 국가기념일에 실렸는데, 게재되자마자 삭제되고 말았다.

옛날과 다름없이 국가보훈의 날은 지켜진다. 정신없이 과속으로 달려가던 차량들이 충돌하고 고속도로에 나 딩구는 시체들과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로 온 땅이 어지러워진다.

국가보훈의 날은 성조기와 나팔소리와 북치는 소리, 추모행렬과 연설과 성의 없는 박수로 지켜진다.

국가보훈의 날은 거대 기업들, 총포와 폭탄과 전투기와 항공모함과 쓸데없는 무기들을 양산하는 기업들, 그리고 100조가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무기계약이 국회와 대통령에 의하여 승인될 것을 기다리면서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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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미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뉴 햄슈어 (New Hampshire)주의 한 젊은 여성은 월남전에서 전사한 그의 남편이 묻히는 군대 장례식을 거절하였다. 그는 그의 남편을 포함한 5만명을 죽게 한 자들이 제공하는 뜻 없는 공허한 장례를 거절하였다. 그의 용기야 말로 국가보훈의 날에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닉슨과 키신저의 전쟁에서 자행한 포악한 폭격을 거절한, 미국의 B52 폭격기 조정사들이 있었다. 그토록 앞정서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자들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하는 위대한 대학들은 학위수여식이 한창인 국가보훈의 날에 이 젊은이들을 치하할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전쟁 예산을 통과 시킨 정치인들이나, 군 장비와 시설에 투자하는 기업이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진군하라고 명령하는 장군이나. 반전 운동가들을 사찰하는 FBI 정보요원들도 이 거룩한 국가보훈의 날에 초청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전쟁터에서 죽은 영혼들만을 추모하도록 하자. 산자들은 다시는 대량 학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도록 하자.

"총알에는 숫자가 박혀있었다. 피는 땅에 흘러 퍼졌다. 그의 가슴에는 미국 의회 명예훈장이 꽂혀 있었고, 십자 무공훈장, 프랑스의 무공 훈장, 벨기에 전쟁 무공훈장과 이탈리아 황금 메달이 꽂혀 있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여왕 마리아가 보낸 Vitutea Militara 훈장도. 미국의 수도 워싱턴 사람들은 꽃다발을 가져왔고,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양귀비 한 다발을 가져왔다."

이 말은 1919년에 출판한 죤 도스 패소스 (John Dos Passos: 1896-1970))가 쓴 분노에 찬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오늘 우리 국가 보훈의 날, 그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자.

그리고 맥시코 침략전쟁을 반대하다가 감옥살이를 한 시인 소로 (Henry Thoreau:1817-1862)) 를 기억하자.

20세기 초 필리핀을 상대로 도발한 전쟁을 반대한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을 기억하자.

그리고 미국 신문 편집인들 중 유일하게 한국전쟁의 거짓말과 포악성을 폭로한 스톤 (I.F. Stone:1907-1989)을 기억하자.

우리는 백악관의 유혹과 친구들의 경고를 물리치고 월남전에 반대하는 호령을 친 마르티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1922-1968)목사를 기억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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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미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국가 보훈의 날은 전사자들의 무덤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 날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수호하기 보다는 우리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우리의 자원을 고갈하게 하고, 우리 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을 위협하는 죽음의 무기들을 쳐 없애는 날로 하자.

우리 국가보훈의 날에는 미 해군이 "물에 뜨는 세계 최대의 레몬"이라고 선전하는 헬리콥터 탑재 항모에 25조나 되는 세금을 "안보"의 이름으로 낭비한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결국 그 항공모함의 시험 항해에서 2,000건의 치명적 결함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난으로 해서 백만이 넘는 인구가 낙후된 도시 변두리에서 살아야 하고, 값비싼 집세와 임대료를 내야하고 대출이자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라는 현실을 기억하자..

이제 우리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이란 세대마다 전쟁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 보다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안보니 국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젊음을 소홀히 하고 우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자들보다 더 현실적이 돼야 한다. 결국 시체들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사람들, 파괴적 광기가 아니라 창조적 에너지, 이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안보이다. 단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다른 정부와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정부에 항거하는 것이이야 말로 진정한 안보이다.

국가보훈의 날, 예전처럼, 사망의 길로 술에 취해 질주하는 지난날과 같은 날이 아니라, 새로운 날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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