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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칼럼] 조르주 루오의 '어머니들이 미워하는 전쟁'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입력 Jun 10, 2019 07:09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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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조르주 루오의 ‘어머니들이 미워하는 전쟁‘

파리 코뮌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태어난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어린 시절 파리 교외의 지하실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가난한 이들의 신산스런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그 경험은 일평생토록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어려운 이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었습니다. 가구 세공사였던 아버지로부터는 평범한 사물이나 일상적인 일도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미술에 재능을 보인 그는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스테인드글라스 직공이었던 할아버지 히르슈의 도제로 들어가 일을 배웠습니다. 그의 그림이나 판화에 검은 테두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스테인드글라스적 기법을 채용한 것입니다. 스무 살 되던 해에는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해서 신화적인 모티프의 그림을 많이 그리던 귀스타브 모로에게 사사했습니다. 루오는 모로로부터 예술에 대한 사랑과 아울러 내면의 통찰력을 가지고 사물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인간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던 시기이지만 동시에 삶의 공포와 실존의 가혹함 또한 증대되던 시기였습니다. 종교적 감성이 예민했던 루오는 인간의 아픔을 보듬지 못하는 자기 시대의 제도화된 종교에 대해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합니다. "서른 살이 다 되었을 때,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섬광 혹은 은총의 빛줄기가 나에게 내렸다. 내 눈에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였다. 그전에 내가 보았던 것들을 이제 다른 형태와 조화로움으로 보게 되었다."(발터 니그, <조르주 루오>,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p.56에서 재인용) 그것은 '빛 체험'이었습니다. 그 빛은 그의 어두운 내면을 밝혔고, 이후에 다시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빛은 세상의 온갖 부정성 너머의 세계를 보도록 그의 눈을 밝혀주었습니다.

조각가인 최종태 선생 또한 그러한 빛을 체험했다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조용하고 따뜻하지만 압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빛 속에 있을 때 그는 시간을 넘어서는 체험을 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랑의 빛 안에서 도무지 구별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무시간(無時間) 속에서 일체였습니다. 그것은 생명이고 사랑 자체였습니다. 나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나는 빛 안에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분명히 있는 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그 자체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최종태,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 열화당, 1998년 2월 20일, p.49) '나'의 존재가 소거되는 것이 아니면서도 전체 그 자체 안에 있다는 느낌이 그를 안식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빛 체험 덕분일까요? 조르주 루오는 인간 실존의 슬프고 가혹한 모습을 무수히 보았지만 덧없는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멸시받고 모욕당하는 이들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존엄성을 박탈당하는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창부들의 모습 속에서도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쉰여덟 점으로 구성된 판화집 '미제레레'(Miserere,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라틴어)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그가 인류에게 보낸 일종의 메시지입니다. 첫 번째 작품 제목은 "하나님, 자비가 크시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이고,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다. 기원과 고백입니다. 그 사이에 있는 작품들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짊어지고 수난 당하시는 예수의 모습과 더불어 사람들을 주변화하고 수단으로 삼는 악마적인 세상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들의 고단한 삶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을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의 잔인하고 무감각한 모습이 투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절망의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마른 땅에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들이 미워하는 전쟁'은 '미제레레'에 실린 작품 중 마흔두 번째 작품입니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이 작품이 전쟁과 연관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한 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일반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아이는 엄마의 무릎이 마치 기도단인 것처럼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런 짐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슴 앞에 들린 그의 두 손이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머니는 지긋이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은 아이의 허리께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가 만든 공간은 원을 닮았습니다. 두루 원만한 공간, 온전한 사랑의 샘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의 몸에는 환한 빛이 드리워 있습니다. 마치 아이 속에 있는 어둠을 어머니가 다 빨아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두 존재를 연결하고 있는 어머니의 손만은 환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어머니들이 미워하는 전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십시오. 전쟁은 죽음과 공포를 자아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전쟁은 생명의 부정이고 사랑의 단절입니다. 신학자 C.S. 송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co-creator of God)라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쟁은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악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이 겪어야 할 슬픔을 라헬의 울음에 빗대 설명했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렘31:15).

전쟁의 악마성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간파한 루오이지만 이 작품은 매우 절제되어 있습니다. 격렬한 슬픔이나 분노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1945)의 작품에는 작가의 파토스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케테 콜비츠의 '씨앗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작품은 놀란 세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를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두 팔이 마치 둥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십자가의 횡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깥 어둠을 응시하는 어머니의 눈빛은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비장함과 슬픔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거기에 비해 루오의 그림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고통을 추상화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빛 체험'을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세상의 평화가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신의 은총이 세상을 지킬 것임을 그는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울음을 안으로 삼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 몰아닥쳤던 전쟁의 광풍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 말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전쟁은 없습니다. 명분이 어떠하든 전쟁은 인간의 악마성의 전시장일 뿐입니다. '어머니들이 미워하는 전쟁'에 담긴 간절함이 문득 가슴을 가득 채웁니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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