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시론] 한반도 평화는 불가역적 흐름이다
2019년 화려하게 부활한 카터의 3자 회동 구상

입력 Jul 02, 2019 03:25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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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출처 = 청와대)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데 이어 북·미 정상간 만남, 남·북·미 정상 회동이 이뤄지면서 잠시 교착상태였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새로운 동력을 얻는 양상이다.

6월의 마지막 토요일과 일요일, 세계의 관심은 한반도에 쏠렸다. 6월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을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오기 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비무장지대(DMZ)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적었다.

이후 32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은 현실로 다가왔다.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 북한 땅을 밟는,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다.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했다. 남·북·미 3국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인 건 1953년 한국전쟁 이후 66년만의 일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권은 북미 판문점 회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박한 평가를 내놓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로 시작해 중재자를 자처하더니 이제는 객으로 전락한 것 아닌가 싶다"고 했고, 손학교 바른미대랑 대표는 "문 대통령은 오늘 중심은 북미 간 대화라며 조연을 자처했지만,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야권의 주장대로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객에 그쳤을까? 잠시 시계를 40년 전으로 돌려보자. 1979년 6월 29일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은 한국을 찾았다. 이때 카터는 대담한 구상을 내놓았다. 자신의 방한 때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 한국 박정희 대통령 등과 3자 회동을 갖겠다는 구상이었다.

훈풍을 가져오려 했던 카터

카터는 대선 후보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집권하자 이 공약을 실천하려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은 군부 등 관료들의 반발에 막혔다. 철수 반대론자들은 주한미군 철수가 동북아 정세에 미칠 정치적·안보적 파장을 우려해 격렬히 반대했다.

반면 카터의 생각은 달랐다. 카터는 기본적으로 아시아 국가에 미 지상군 병력을 두는 것 자체를 위험한 일로 여겼다. 이 같은 생각은 아시아의 복잡한 정치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닉슨 독트린과도 맞닿아 있다.

카터는 대담하게도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면 주한미군 주둔 이유가 원천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다. 더구나 카터는 앞선 해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중동평화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한 바 있다. 카터는 자신의 경험이 한반도에도 유효하리라고 자신했다. 남·북·미 3자 회동은 이 같은 사고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3자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시아 지역 정세에 정통한 미 정부 관료들은 백악관 참모를 통해 3자 회동 구상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카터는 물러서지 않았다. 정상에서 외교관으로 수위를 낮춰 재차 3자 회동을 제안했다.

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반대하지 않았다. 카터의 구상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북한 김일성 주석이 응하지 않으리라 내다봤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즈음 북한은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1977년과 78년 사이 미 국방부가 대대적으로 정보분석에 나서 북한군 병력이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북한 지상군 병력 68만 명이 비무장지대에 근접배치돼 있다고 적었다.

그 시절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했고, 이후 베트남전 패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또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실행에 옮기려고 정치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김 주석으로선 1950년에 이어 남한을 향해 군사적 모험을 준비할 적기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김 주석이 굳이 실효성이 의심스런 카터의 제안을 수락할 이유는 없었다.

카터의 대담하지만 이상적인 구상은 40년이 지나서야 현실화 됐다. 그러나 카터의 구상이 완전히 사장되지는 않았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간 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이는 한국의 외교력이 성장한 데 따른 결과다. 이번 북·미-남·북·미 정상 회동도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력이 맺은 성과다.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주춤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더구나 북미가 사실상 적대행위 종식을 선언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밝혔다.

40년 전 성사되지 못한 남북미 3자회동이 오늘 화려하게 부활하고, 잠시 멈춰섰던 한반도 평화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사는 이렇게 작지만 의미 있게 앞으로 나간다. 이런 불가역적인 흐름 앞에 겸손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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