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독교사회주의 산책
정승환 목사의 책 이야기(1)

입력 Sep 10, 2019 07:35 AM KST

자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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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홍성사)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홍성서) 겉 표지

'자유'라는 가치는 소중하다. 한 인격체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우리나라도 자유를 빼앗긴 역사가 있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과 피를 흘렸는가.

그러나 자유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까? 더 나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자유는 언제든지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들을 향한 책임이 결여된 자유는 세상을 아프게도 한다. 자유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지는데 필요한 가치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유가 건강하게 사용되어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자유와 더불어 필요한 것들이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살펴보면, 그 속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있다. 자유로운 정직한 경쟁은 사회에 창조성을 더해줄 수 있다. 그러나 경쟁 이후가 문제다. 승자가 패자를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여,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한다면, 갈등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승자가 패자를 향해 무시와 냉소로 일관한다면, 공동체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질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사회적 제동이 없는 자유는 탐욕과 방종으로 변질되어 공동체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탐욕으로 변질된 자유는 공동체와 인간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소중한 가치들을 걷어차고 달리기 십상이다.

자유와 더불어 필요한 것들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우리가 추구할 대안이 없을까 궁리하던 차에 책 한 권을 만났다.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이었다. 이 책은 자유가 무한대로 확장된 시대의 부작용들을 경험하고 있는 시점에서 좀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대안은 기독교의 사랑과 사회주의의 평등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터져 나오는 시점에서 동일한 해(1848년)에 두 개의 사상이 흔적을 남겼는데, 하나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또 하나는 기독교 사회주의였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종래의 사회 질서를 전복시킴으로 착취의 구조로부터 해방되자는 운동이었다.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모든 생산수단은 국유화해서 소득의 공평한 분배를 추구했다. 그러나 국가가 강제적으로 법과 권력을 내세워 폭력적으로 이 일을 진행하는 일은 인간의 또 다른 가치인 자유를 희생하는 일이었다. 결국 공산권은 인간의 자유를 희생한 결과를 역사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 사회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보다 온건하다. 법과 권력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통한 자발적 나눔과 섬김을 제안한다. 자유를 희생시키기보다는 자유로운 삶 속에 공동체의 상생을 생각하며 사랑에 기반 한 평등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책은 성경 속에서 이를 지지하는 이야기들을 뽑아 소개하고 있다. 구약의 만나 사건, 안식년, 희년, 왕국 시대의 선지자들의 글과 신약의 예수님의 말씀과 성만찬과 사도행전의 나눔의 모습, 성경이 그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제시하며, 성경이 그리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요소들을 설명해준다.

인간다움에 대한 추구

그동안 세계는 꽤 오랜 시간동안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놓고 갈등이 있어왔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경제적 체제에 대한 고민에 그치지 않고, 이념에 따른 역사적 아픔이 더해져서 그 갈등이 더욱 심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라는 이념적 패러다임을 떠나 함께 인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지으신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길은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자유, 평등, 사랑이라는 소중한 가치 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인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길은 정직한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평등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귀한 가치들을 사랑 안에서 융합하고, 공존케 하는 것이었다. 성경의 내용을 해설하는 부분만 읽으면 기독교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구지 붙이지 않았다면, 그냥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첨예한 갈등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 사랑 안에서 만나 개인의 자발적인 섬김과 헌신으로 온전한 사회가 성립될 수 있다는 말은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니다. 신학자라면, 하나님의 이상을 펼쳐 보일 자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상을 추구하는 정신이라도 있어야 양극단의 폐해 속에서 조금씩 이상에 한걸음이라도 옮길 수 있는 현실의 답을 마주 할 수 있지 않을까.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그리는 이상을 탐구하고, 발견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발견된 이상은 현실의 삶과 유리된 지식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이상은 그와 어긋난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파생된 아픔의 역사에 애통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듬어 인간다움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께 참으로 구해야할 은총은 이러한 삶으로 인도해주시는 은총이 아닐까. 그 은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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