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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박사 부음에 부쳐: 은총의 길과 비움의 길

입력 Sep 10, 2019 04:38 PM KST
sonkyutae
(Photo : ⓒ사진= 김진한 기자)
▲고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최근에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반가운 분의 전화라 지체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근황을 물으니 얼마 전부터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까지 신장투석을 받아오면서 병마와 싸워왔다- 안부 인사를 나눈 뒤 전화 용건을 물으니 그동안 신문에 낸 칼럼들을 정리해서 출판을 하려고 한다면서 원고와 관련해 양해를 구했다. 다음에 다시 통화하기로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자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가 9일 타계했다. 향년 79세. 인간의 물질욕을 먹잇감으로 삼아 활개를 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현실을 성찰하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토대로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를 정초하기 위해 최근까지 노력해 왔던 한국의 신학자요 윤리학자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는 은총의 사회가 아니라 공로와 업적을 내기 위한 경쟁의 사회다. 은총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약자들은 경쟁에서 탈락해서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고, 업적의 달성자들은 경쟁의 승리자요 존경의 대상이 된다. 또 이웃은 공동체로서 같이 살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부르주아 사회가 동틀 때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가 말한 것처럼 오늘날 인간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 늑대가 되었다."(고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마틴 루터의 '오직 은총으로만'의 정신을 기독교 사회윤리학적 입장에서 성찰한 손 교수의 글 중 일부다. 그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체제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의 악마성을 폭로했다. 사회적 약자를 은총의 대상이 아닌 천대의 대상으로 여기고 인간성을 짓밟는 맘몬의 맨 얼굴을 드러냈다.

손 교수는 맘몬 숭배를 한국 기독교 부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맘몬 숭배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제의에 투사했는데 성서와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 들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기는 자기모순을 배타적 자기 긍정으로 합리화했다. 맘몬을 중심으로 자아도취적 우상숭배가 벌어진 것이다.

손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가리켜 "모두가 맘몬이라는 업적의 우상을 숭배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총을 저버린 오늘날 한국사회의 총체적 타락의 표징이다"라고 주장했다. 맘몬의 양태를 업적주의로 분석한 손 교수는 오늘날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늑대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해 "탐욕과 경쟁이 인간의 경제적 삶의 근간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으며 인간들의 정신을 황폐화시켜 온갖 조직적이고 집단적 범죄와 인간 생명에 대한 멸시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인류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은 업적이나 공로가 아니라 사랑과 은총이 길이라고 역설했다.

맘몬의 민낯을 폭로하고 호되게 비판한 손 교수의 일성이 다시금 귓전을 맴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여전히 이러한 손 교수의 뼈를 깎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교회 중심에 똬리를 튼 맘몬 숭배는 성직자의 일탈 현상으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탐욕이 움트는 곳은 제도 교회 뿐만이 아니다.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탐욕은 제도 교회를 비판하면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한 소위 '교회 개혁 세력'에서 조차도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교회여 어디로 가야 하는가? 손 교수의 은총의 길은 아마도 자기 비움의 길과도 맞닿지 않을까? 고인은 마지막 길에 별도의 빈소를 마련하지 않고 조용히 떠났다. 죽음의 길 마저 지배하고 있는 맘몬에 대한 저항이요 자기 비움의 실천이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24: 24)

아래는 고 손규태 박사가 최근까지 직접 논문 등 게시물을 올린 아카이브 주소.

http://veritas.kr/archive/d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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