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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과 초점(7)] 함옹의 신앙순수 지향과 니버의 리얼리즘
숨밭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입력 Sep 14, 2019 08:30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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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추석연휴가 끝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가을이 깊어간다. 9월 후반기는 한국 개신교 각 교단의 총회가 열린다. 교계의 구성원들과 지도자들은 새삼스레 교회의 본질과 교단총회의 본질을 성찰할 필요가 있는 때이다. 함석헌의 신앙관은 순수 신앙 지킴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윤리를 수행하기 위해 소위 '크리스천 리얼리즘'을 주장하는 윤리학자이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외로운 야인, 몰이해 당하는 함석헌'은 알고보면 철저한 신앙순수를 주장하고 살아보려 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흔히 일본유학시절에 내촌감상의 영향을 받은 무교회주의자요, 말년엔 영국의 조지폭스의 영향을 받은 퀘이커주의자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함옹의 고백에 의하면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교회주의','퀘이커주의' 등 어떤 형태든지 주의(-ism)를 싫어하였다. 그가 무교회신앙과 퀘이커 소종파에 몸을 담아 신앙생활을 영위하려한 가장 큰 이유는, 그 두 신앙단체가 비권위적이요, 교회주의나 성직주의나 교리주의를 지양하여 신앙의 순수형태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함옹에 의하면, 적어도 신앙생활만큼은 순수해야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기에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타협하거나 교회가 맡은 선교·봉사·증언을 효과적으로 한다는 목적으로 교회들이 조직체를 강화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고 본다. 교회사를 뒤돌아보거나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사를 반성해 보면 자본주의, 국가주의, 성장주의, 반공주의, 정통교리주의와 야합함으로써 교회의 본래 순수한 힘과 영성과 세상 속에 서 있는 '하늘 기관'의 장자권을 잃었다고 본다. 함옹은 신앙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이거나 하나님의 현존의 자리는 개인 인간 맘의 지성소인 것이지, 교회당 건물이거나 총회, 노회 조직기구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른 한 편, R.니버의 입장은 어떠한가? 그의 조상은 유럽 루터파 교단의 성직자였고 미국에 이민 와서 미국동부에 정착했다. R.리버는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이 닥쳐왔을 때, 미동부 자동차 제조공장 밀집도시 디트로이트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경제공황의 거친 바람이 교회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자, 같은 교인끼리 기업주와 노동자, 상류 중류 하류 계층, 의사, 교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육체노동 근로자들 사이에 첨예한 대립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경험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 서로 양보하고 역지사지하면 자기를 조금 희생하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느 정도 지속할 수 있지만, 집단과 집단, 계층과 계층 사이엔 불가능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나온 명제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이다.

위 불후의 명제가 주장하는 것은 2가지이다. 첫째, 인간사회공동체 속에서 집단과 집단의 갈등은 개인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이 증폭 강화되면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집단 간 윤리(정당, 계층, 계급, 국가)는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사랑'을 간접적으로나마, 근사치적으로나마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선악 양면성 때문에, 그리고 윤리적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변화 때문에 기독교 윤리는 상황에 맞게 최선의 악을 피하기 위해 개인 신앙의 순수성을 유보하면서라도 책임적 참여윤리행동을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가 그리스도인의 '전쟁참여' 문제로 나타난다. 히틀러 제3제국의 비인간성,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보인 비인간성에도 불구하고 '보다 작은 악'을 선택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함석헌은 전쟁은 한 인간의 인격과 영혼을 대신할 값어치가 없다. 병역 거부, 절대 무저항·비폭력 저항을 주장한다.

함석헌의 순수 신앙 지향 주장과 니버의 크리스천 리얼리즘 어느 쪽이 더 예수의 맘과 뜻에 따르는 것일까? 본래 교회 에클레시아(Ecclesia)는 '부름 받아 모인 회중무리'를 뜻했다. 초대교회는 20~30명 내외의 가정교회였고, 웅장한 교회당이나 총회 노회 조직도 없었다. 그래도 가장 위대한 영적 에너지를 고대 문명사회에 끼쳤다.

교단총회가 개최되는 9월 중순 이후, 우리는 노회, 총회 등이 본질이 아니라, 순수 신앙을 지켜가려는 최소한의 조직 기구요, 행정체계임을 각성해야 한다. 그것들은 결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권위적 조직체가 되려는 유혹을 벗어나야 한다. 개인의 순수 신앙을 '씨'라 한다면 총회는 '숲'이다. '씨'를 맺자는 것이 숲이요, 숲을 이루자는 것이 '씨'의 꿈이다. 다만 둘 다 순수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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