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고흐의 하나님
정승환 목사의 책 이야기(6)

입력 Nov 02, 2019 08:22 PM KST

도슨트와 함께

미술전시회를 가면, 미술 작품에 대해 안내를 해주는 도슨트를 만날 수 있다. 혼자 전시회를 돌면서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혼자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직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도슨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작품에 대한 해설과 함께 한다면 좀 더 풍성한 관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도슨트는 어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림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좋을까? 주관적 관점에서 작품을 평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을까?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안내와 해설을 들어야 한다면, 나는 작가와 내적 공명을 경험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작가의 갈망과 고민, 이상을 마음에 품어봤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함께 갈증을 느껴보았고, 탄식도 해보고, 감격도 해보았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고흐의 하나님'은 그러한 도슨트와 함께 고흐의 전시회를 관람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고흐의 그림 속에 담겨진 영혼의 소리를 경험한 저자와 함께 한 작품, 한 작품을 감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고흐의 일기를 바탕으로 그림에 담겨진 고흐의 소리를 들었다. 더불어 고흐가 그림을 통해 전달하였던 소리를 바탕으로 오늘의 신앙현장을 성찰해보려 하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고흐의 그림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메시지를 바탕으로 오늘 우리의 신앙을 성찰해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은 고흐의 그림을 텍스트 삼아, 텍스트로부터 오는 소리를 듣고, 이를 기준으로 오늘 우리의 신앙이라는 컨텍스트를 성찰해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탄식, 이상을 향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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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홍성사)
▲『고흐의 하나님』 겉 표지

저자와 함께 고흐의 그림들을 살펴보는 중에 나는 두 가지 정서를 마주했다. 하나는 탄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움이었다. 사실 두 가지는 연결되는 정서이다. 이상을 향한 그리움이 있지 않고서야 현실에 대한 탄식이 있을 수 없다. 반대로 현실에 대한 탄식이 있기에 이상을 향한 그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고흐의 그림을 통해 고흐의 탄식과 그리움을 읽어냈다. 아마도 저자 안에 이러한 탄식과 그리움이 있었기에 그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실상 그것은 고흐의 것이기도 했고, 저자의 것이기도 했다.

책은 고흐의 그림을 통해 다양한 묵상의 주제들을 제시했다. <성경과 소설이 있는 정물>은 성경이 삶으로 번역되지 못한 것에 대해, <여자광부들>은 삶에 이루어지는 고된 노동의 현실에 대해, 교회가 이러한 삶의 현실 속에 성육신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감자먹는 사람들>은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과 신학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뉴넌의 오래된 탑>은 종교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 <아포네즈리, 꽃핀 오얏나무>는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자연과의 상생, 공존에 대해, 여러 <자화상>들은 정직한 자아 인식에 대해, <아를의 노란집>은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해, <담뱃대가 놓인 빈센트의 의자>는 진정한 소통에 대해, <별이 빛나는 밤>은 하나님과의 신비한 합일에 대해, <사이프러스 연작>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정직한 직면에 대해, <까마귀 나는 밀밭>은 삶을 포용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들었다.

깨어진 세상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의 끈을 놓지 않고 인간다움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결국 이 땅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삶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현실은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현실과 괴리된 이상만을 보는 신앙, 현실에 심히 매몰되어 이상을 볼 수 없는 신앙은 아니어야겠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현실 너머로부터 다가오는 새로운 빛에 이끌려 현실을 새롭게 하며, 영원을 향해 순례하는 신앙이어야겠다.

목마름을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계로 초대하신다. 이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람에겐 좋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이상을 바라보는 것만큼 황홀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세상은 그 세계와 어긋나 있는 점이 많기에, 하나님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새로운 고통을 창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 초대가 황홀한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과 어긋난 나의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기에 좋을 수 있다. 이는 은총의 사건이다. 그러나 영원의 세계를 이 땅에서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는 현실들이 있는 한 늘 목마름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결국 신앙생활은 시작된 은총에 대한 감격과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이라는 두 기둥을 붙잡고 살아가는 일이다.

목마름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이를 고통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목마름이 있음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은총이 거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닫고, 이러한 목마름을 온전함에 이르는 과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며 나아갈 필요도 있다. 이 시점에서 목마름은 고통에서 은총으로 전환된다. 결국 목마름도 우리를 온전함으로 인도하는 은총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고흐의 하나님'을 읽어가며 목마름을 느꼈다. 이것이 고흐의 목마름이었는지, 저자의 목마름이었는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영원한 존재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이 분명하리라.

책 속에 담겨진 목마름을 느끼며 처음에는 안타까워했다. 고흐의 시대나 오늘 우리의 시대나 목마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답답함을 느꼈다. 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며 목마름이 오히려 은총의 흔적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목마름은 순례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책을 덮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영원에 이르기까지 목마름의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목마름을 통해 온전함을 향한 시선을 잃지 않고 묵묵히 걷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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