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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칼럼] 헨리 태너의 '수태고지'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입력 Dec 03, 2019 05:39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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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Henry Osswa Tanner '수태고지'. 19세기. 필라델피아 박물관

12월은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설렘의 계절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그런 설렘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쾅거린다". 기다리는 사람은 모든 기척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문이 여닫히는 소리도 무심히 들을 수 없습니다. 대림절을 맞이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설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림절에 기억해야 하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이 마리아입니다. 나사렛 산골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던 소녀 마리아, 그는 어떤 꿈을 품고 살았을까요? 1세기 무렵 갈릴리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았을 겁니다. 소외된 지역에서 고단한 노동과 가혹한 착취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꾸는 꿈이 장밋빛일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삶을 우울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밝은 웃음을 짓고, 생의 행복을 누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정혼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더불어 이루어갈 삶을 가슴 벅찬 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삶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면서 전혀 예기치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놀란 마리아는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전언은 마리아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강력한 지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은 이렇게 누군가의 일상을 난폭하게 찢으며 느닷없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도구로 선택된 이들이 최초에 느끼는 감정은 황홀한 고양감이 아니라 당혹감입니다. 가브리엘과의 몇 차례의 문답 끝에 마리아는 자기 소명을 받아들입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1:38).

많은 화가들이 '수태고지'(Annunciation)라는 이 결정적 순간을 그림 속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종교적 주제를 다루는 화가들이 이 매혹적인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 가운데 얼핏 떠오르는 이들이 프라 안젤리코, 시모네 마르티니, 산드로 보티첼리, 카라바지오, 엘 그레코 등입니다. 한 점 한 점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매혹적입니다. 그런데 화가마다 그 사건을 표현한 양식과 도상학적 배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그림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날개 달린 천사 가브리엘과 놀라 주저하면서도 경외심에 사로잡힌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활동을 시작한 헨리 오사와 태너(Henry Ossawa Tanner,1859-1937)의 그림은 조금 다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헨리 태너는 피츠버그에서 7남매 중에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벤자민 터커 태너는 미국에서 조직된 아프리카계 미국감리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불의한 현실을 개혁하려던 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헨리 O. 태너의 미들 네임인 '오사와'는 그런 아버지의 지향이 담긴 이름입니다. 헨리가 태어나기 3년 전에 캔자스의 오사와토미(Osawatomie)에서 노예제 반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 사건을 기리기 위해 아들의 이름에 그 지명을 넣었던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던 헨리 태너는 1879년에 펜실바니아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인종 차별적 경험이 예민한 젊은이의 영혼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아틀란타 지역의 감리교 감독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비해 인종차별이 많지 않았기에 태너는 마음껏 자기 재능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고,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울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파리의 살롱에 전시되었고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성서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자굴 속에 있는 다니엘', '선한 목자', '나사로의 부활' 등의 그림이 경건한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독지가들이 나서서 헨리 태너에게 팔레스타인 방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거룩한 땅에 머무는 동안 그는 성경이 증언하는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사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태고지'(144.8 *181cm, 필라델피아 미술관)는 그가 성지 순례에서 돌아와서 그린 첫 번째 그림입니다. '수태고지'를 그린 화가들이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수도원적 건물이나 궁전으로 표상하지만,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헨리 태너는 누추하고 궁벽한 어느 방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침대의 오른쪽 위로는 물 항아리와 등잔이 보입니다. 그리고 침대에는 구겨진 시트가 깔려 있고, 울퉁불퉁한 바닥 그리고 그 위에 깔린 양탄자는 낡아 보입니다. 침대 위에 다소곳이 걸터앉은 마리아는 어린 티가 납니다. 입고 있는 옷도 영광이나 완성을 나타내는 붉은색 혹은 푸른색이 아닙니다. 갸름한 얼굴과 야윈 몸이 마리아가 겪어왔던 삶의 신산스러움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마리아는 눈을 들어 화면의 왼편을 채우고 있는 빛 기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느닷없는 사건에 놀란 것 같지만 경박한 반응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리아의 덕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쥔 두 손은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헨리 태너는 가브리엘 천사를 빛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환하지만 눈부시지는 않습니다. 마치 설화석고를 통과한 빛처럼 온화합니다. 그 빛은 사람들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고요히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화가는 그 속에 몇 가지 메시지를 담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밝은 빛 기둥은 물 항아리를 올려놓은 선반에 의해 분할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빛 기둥이 마치 십자가처럼 보입니다. 십자가는 태어날 아기의 운명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마리아가 겪게 될 아픔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결예식을 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을 때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눅2:35).

눈여겨보신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그림에는 물 항아리가 세 개 배치되어 있습니다. 왼쪽 바닥과 윗쪽 선반에 각각 놓여 있고, 오른쪽 벽감에 하나가 더 놓여 있습니다. 항아리는 어쩌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품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항아리가 셋이라는 것은 신적 숫자를 의도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이런 디테일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제한된 평면 위에 다양한 서사를 담기 위해 화가들이 늘 고심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저하고 머뭇거리면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계획에 자기 삶을 맡기는 이들은 행복한 사람일까요? 불행한 사람일까요? 행복과 불행으로 감히 그런 삶을 가를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려 하십니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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