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대림절 묵상

심광섭 전 감신대 교수

christ
(Photo : ⓒ심광섭 전 감신대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 1480-1538), <그리스도의 탄생>

본회퍼는 1943년 4월 5일 한스 폰 도나니 부부 및 요셉 폰 뮐러 부부와 함께 체포되어 베를린 테겔 형무소에 수감된다. 다음은 감옥에서의 생활 8개월 쯤 되는 43년 11월 28일 첫 대림주일에 본회퍼가 부모에게 쓴 편지이다.

사랑하는 부모님!

지금 이 쓰는 편지가 전달될지 또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첫 대림주일 오후에 두 분에게 기쁨으로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알트도르퍼(Altdorfer)의 그리스도 탄생의 그림을 생각합니다. 그 그림은 폐허가 된 건물의 잔해 밑에 구유와 함께 성가족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화가는 400년 전에 모든 전통에 거슬러 이렇게 그렸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이 그림은 지금 봐도 현대적입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 안에 구세주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구유를 설치했다는 것이 여러 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우리가 이렇게 성탄을 축하할 수 있고 축하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런지요. 아무튼 그는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두 분께서는 몇 년 전에 우리와 함께 대림절이 축하했듯이 어떻게든지 어린이들과 함께 앉아 강림절을 축하하시리란 생각을 하니 기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축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것을 더욱 정성 드려 축하하게 됩니다.

두 분께서 우리들 중 한 사람도 없는 가운데 그렇게 무서운 밤과 무서운 순간을 보내셔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한 때에 감금되어 아무런 도움도 드릴 수 없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한 일이 정말 곧 끝이 나고 그리고 더 이상 지체됨의 고난을 당하지 않기를 지금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

두 분을 다시 볼 수 있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1943년 11월 28일)

같은 날 친구 에베하르트 베트게(Eberhard Bethge)에게 보낸 편지에는 알트도르퍼의 그림을 보면서 다음의 시를 지어 보낸다.

말구유는 밝고 맑게 빛나고
밤은 새롭게 빛을 비치니
어두움은 빛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신앙은 언제나 빛나네

Die Krippen glänzt hell und klar,
die Nacht gibt ein neu Licht dar
Dunkel muß nicht kommen drein,
der Glaub' bleibt immer im Schein.

「심한 공습 특히 폭탄에 의해서 의무실의 창이 떨어져 나가고, 어둠 속에서 마루 위에 넘어지고, 빠져나갈 출구를 찾을 가망도 없었던 지난번 공습이 나로 하여금 전혀 새롭게 기도와 성서의 세계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네」(1943년 11월 29일)

1943년 12월 5일 제2강림주일에 친구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에는 공습경보와 공습 앞에서 드러나는 두려운 감정만이 아니라 진정한 은총에 의한 기쁨을 구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강림절 주간에 당신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만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는 군인들에게도 기쁨을 나누어 주길 바라네. 여기서 새 공습경보가 울릴 때마다 사람들이 새로이 체험하는 것은 공포만이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안정과 기쁨 또한 만나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네. 만일 그러한 태도가 가식적이 것이 아니라 진정하며 당연한 것이라면 사실 나는 가장 강력한 권위는 그와 같은 태도를 통해 형성된다고 믿네. 사람들은 안정을 주는 지점을 찾고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네. 우리 둘은 그것에 돌입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믿네만, 그러나 그것은 은총을 통해서 확실하게 되는 심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네.」

「그런데 실은 성탄절도 옥중에서 맞이할 것 같네. ... 젊은 죄수 중 몇 사람은 오랜 고독의 생활과 어둠 속의 생활 때문에 완전히 지쳤고, 아주 녹초가 되어 버린 것 같이 보이네. 이러한 사람들을 몇 달 동안이나 일을 시키지 않고 감금해 둔다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지. 사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을 타락시킬 뿐이라네」(1943년 12월 15일)

「우리들이 장기간에 걸쳐 사랑하는 사람들과 강제적으로 격리되어 있을 때...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네. 우리는 이 격리를 말없이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되네. 우리는 병들기까지 동경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고 말야. 우리는 그것이 비록 고통으로 차 있는 것이기는 하나 다만 동경을 통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귐을 굳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네」(1943년 12월 18일)

「신앙이 없는 동요,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끝없는 숙고, 어떠한 모험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이 정말 위험한 것이라네. 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지, 사람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네. 그러면 무엇이나 견디기 쉬운 방법이거든. 어떠한 어려운 고난도 지금의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 '잘 이해할 수 있는 초조(焦燥)가 아니라 모든 것이 신앙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라네. ... 나는 지금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었네.

"그대의 방을 충실히 지키라.
그러면 그 방이 너를 지키리라."
halte treu Wacht über deine Zelle
und sie wird Wacht halten über dich

하나님, 우리를 신앙 안에서 지켜 주시옵소서!」(1943년 12월 22일)

※ 이 글은 심광섭 목사(전 감신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