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이후정] 존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

이후정 교수(감신대, 역사신학)
 
6개 신학대학원 연합학술제 발제문
 
존 웨슬리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18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부흥운동가요, 교회 갱신운동과 영적 회복의 사역으로 교회사의 큰 빛이 된 인물이다. 그가 남긴 유산은 영성과 신학, 교회의 삶과 실천, 목회와 교육에 걸쳐 넓게 영향을 미쳐 왔다. 특히 그의 신학적 특징은 “실천적 신학”(practical divinity)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영혼과 삶의 변화를 실천적으로 일으키며 그 변화의 참된 체험(경험)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살아있는 신학(living theology)이라는데 놓여 있다. 즉 신학이 이론과 사변에 그치지 않고 건전하고 올바른 교리(orthodoxy)를 바탕으로 하되 반드시 바른 체험(orthopathy)과 바른 실천(orthopraxis)을 통전, 포괄하는 “종합적” 성격이 웨슬리의 신학과 사상을 특징짓는다는 말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참된 종교는 먼저 내면적인 종교 즉 마음의 종교(heart religion)이지만 동시에 그 뿌리에 연결되어 열매 맺는 실천적인 덕 있는 삶과 행위로 드러나는 외면적인 종교로서 성취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단지 내면성에 멈추지 않고 사랑의 길로 나아가 선을 행하며 사랑의 율법과 계명을 성취할 수 있는 종교를 그는 목표하였다. 그가 강조하였던바, 종교의 이 두 차원은 경건의 행위(works of piety)와 자비의 행위(works of mercy)로 서로 연결, 연합되어 웨슬리적 종합(Wesleyan synthesis)의 한 본질을 이루는데, 이 둘은 결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합쳐져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이 세상에 가져오는 것이다.

1. 사회적 성화의 신학적 기초
 
웨슬리의 신학과 영성의 핵심은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하는 거룩한 삶이다. 물론 이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가능한데, 먼저 선행적 은혜가 자연적 인간의 타락 속에서도 역사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이 선행 은총 신학은 어거스틴이나 칼빈적인 전적 타락과 부패를 인간본성으로 보는 신학과 차이를 가진다. 타락 하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 이성, 정감, 자연적 양심 등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빛으로 작용하며, 따라서 선에의 도덕적 결단은 원천적으로 결코 불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은 순수히 자연적 (본성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적인 은혜의 결과이다. 인간은 이에 대해 응답할 때에야 비로소 구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웨슬리 신학은 이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적인 노력, 동참, 협력의 행위를 가치 있게 보는 “신인협력론”(synergism)을 포함하고 있다.
 
웨슬리는 나아가서 회개의 은혜를 통해 본래적인 의미에서 구원의 순서(ordo salutis)가 계속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죄와 타락은 오직 참된 회개를 통해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개의 결과 인간은 칭의에 이르며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갱신은 여기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내면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되며, 그것이 곧 새로운 탄생, 즉 중생(신생)이다. 칭의와 중생은 동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이지만, 웨슬리의 관심은 오히려 그 후에 따르는 실제적인 변화(real change)인 성화와 완전에 치중되었다. 성화는 인간 존재를 전적으로 변화, 변형시키는 은혜(transforming grace)로서,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갱신과 회복이다. 그것은 새롭게 창조되는 갱신의 완성을 향해,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완전성화를 목표로 해서 계속 성장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것이 웨슬리 신학의 가장 중요한 국면이 된다. 그는 성화를 거룩한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으로 보았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삶 전체는 죄에서 완전히 자유케 되고 그 권세가 무너지고 그 뿌리가 뽑혀져서 대신에 사랑으로 충만함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신약성경이 최종적으로 명령하는 “하나님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계명의 실체이다. 이를 위해 영혼은 선으로 고무되며, 사고, 행동, 모든 인격의 전적 변화와 갱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삶에 일치되어 정의, 자비, 진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실존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영적 체험에 경험주의자로서의 웨슬리는 특별히 관심하였는데, 그것을 “영적인 감각”(spiritual senses)이라고 칭하였다. 신앙의 인식 기능과 결부된 영적 경험은 신적 증거, 확신으로서 하나님과 영적 세계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가져오며, 존재론적, 인식론적, 윤리적 변형의 도구가 된다.
 
실천적, 윤리적 차원에서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를 도출하는데 중요한 또 하나의 신학적 기초를 이루는 주제는 “신앙과 행위의 관계”이다. 웨슬리는 종교개혁, 특히 루터의 신학과 달리 행위와 율법을 보다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새 사람 된 존재의 선행을 칭의(신앙)의 필연적, 자동적 결과로 보려는 후자와 달리, 웨슬리는 선행이 칭의 신앙에 관계된다고 본다. 행위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것이다. 즉 야고보서를 옹호하면서, 선행은 내적 필연성으로서 칭의된 자의 성화를 촉진하며 완성시키는 도구로 여겨진다. 이러한 믿음과 행위의 관계는 웨슬리에겐 루터파 경건주의의 한 형태인 헤른후트 형제단의 신비주의적 정적주의(quietism), 반율법주의(antinomianism) 혹은 유신론(solifdeism)의 위험에서 뿐만 아니라 카톨릭교회, 영국국교회의 행위의 의로 기울어질 가능성에서 보호되어야 했다. 선행과 신앙의 활동적 측면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위해 중요하다. 비록 오직 믿음으로 칭의가 이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의 필연성은 무시될 수 없으며, 여기서 웨슬리의 성령론적 신인협력설은 계속 중요한 신학적 역할을 한다. 즉 하나님께서 역사(활동)하시니, 우리도 역사하여야 하며, 이 둘이 다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책임성은 분명히 긍정되어야 하며 신앙과 사랑의 근본적인 상호연결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웨슬리는 천명하였다.

2. 사회적 성화의 원리

 
웨슬리는 <산상설교  IV>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성도의 기독교적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가 개인적, 은둔적 종교가 아니라 사회적 종교(social religion)이며, 단지 개인적, 인격적 갱신과 변화(성화)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나아가서 온 세계와 우주까지 변화시키고 갱신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창조에 도달해야 하는 이른 바 원대한 비전을 본다. 웨슬리는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종교”이며, 따라서 이 종교를 고독한 것으로 화하게 할 때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회를 떠나서는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관계를 맺지 않고는 기독교가 유지되거나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때로 종교적인 퇴수(retreat), 은거와 같은 깊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회생활과 관계성을 통해 기독교는 이웃사랑의 계명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교의 뿌리는 내면 즉 인간 심령 깊은 곳에 있으며 그 목표는 하나님과의 합일이며 인간 영혼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이르는 것이지만, 그 가지와 열매는 종교가 사회와 외적 삶을 통해 사랑으로 행동화되어야 함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강해하면서 웨슬리는 참된 종교가 사회적 성화를 중시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것은 곧 이웃 사랑의 계명을 선행을 통해 실현하라는 진지한 요청과 호소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성경 속에서 모든 기독교인의 윤리적 행동의 토대와 척도로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무사적(disinterested) 사랑으로, 이 사랑이 모든 선한 행위의 필수적 전제를 이룬다. 믿음은 사랑으로 나아가며 그 원동력이 된다. 또한 믿음은 사랑을 인식하는 기관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웨슬리의 사랑의 윤리는 이웃 사랑을 하나님 사랑의 체험과 확신의 반사에서 찾게 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우선권을 보여주며 그에 따른 이웃 사랑이 비이기적인 선함에 기초하도록 해준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부정하는 예정론이나, 계몽주의의 낙관적인 인간성 이해와 도덕주의에 의한 이신론, 무신론, 인본주의 등에 반대하여, 웨슬리는 하나님 중심주의를 고수하면서, 하나님 없는 행복을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참 하나님 사랑에서만 인류 사랑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웨슬리는 하나님 사랑에서 결과 되는 이웃 사랑으로 사회적 성화의 원리를 삼은 것이다. 이웃사랑은 필연적인 것으로 무아적인(selfless) 것을 특징으로 한다. 즉 대상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지 않고 어떤 한계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받을 가치 있는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의 결합에서 필연적으로 유래되는 이 신학과 윤리는 보편적 사랑, 포괄적이고 무제한적인 사랑을 추구하며, 그것이 성화의 본질인 사랑과 행복이다.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는 개인적 성화와 결합되면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처럼(christlike) 살아가는 은혜 안에서의 완전성화 추구에 합쳐지게 된다. 사랑 안에서 자라는 성장의 가능성과 필연성, 부분, 정도(단계)의 측면을 포함하여, 늘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되어 사랑으로 충만해지기까지 계속 이 사랑은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 사랑의 실천은 선물인 동시에 인간의 과제와 책임이며 율법의 완성이다.
 
독특한 사회적 성화의 신학적 원리로서, 우리는 웨슬리에게서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이해를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계명들로서의 율법은 복음에 의해 폐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율법은 이제 새로운 것으로 화하며, 사랑의 법(law of love)이 된다. 원래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며, 바른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서 요약되며,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계명으로 순종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길을 제시하신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와의 결합 속에서 신자에게 율법은 더 밀접하게 그리스도와 관계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삶에 더 깊고 넓게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를 밝혀주는 동시에 율법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도록 인도하는 신앙 안에서 삶은 일치되고 성화를 가능케 한다. 무엇보다도 율법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도록, 그의 계명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며 확고한 희망 속에서 목표를 보고 약속의 실현을 향해 가도록 인도하는 길잡이가 된다. 물론 이제 율법은 옛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법이 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의 사랑,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웨슬리는 율법을 사랑으로 종국적 성취를 이루는 성화의 상하에서 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한 최고의 행복의 근거, 감사와 기쁨의 동기인 완전한 사랑에서 발견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삶의 법칙인 것이다. 또한 율법은 이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와 일치하는 윤리적 선행을 사랑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처럼 사랑이 그 모든 행위를 결정하도록 사랑의 지배를 받는 삶의 원리가 율법의 완성인 것이다.

3. 사회적 성화의 실제

 
웨슬리는 옥스퍼드의 초기 메소디스트 모임에서 이미 사회적 실천과 활동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 시대는 근대 유럽의 혁명 이전 시대로서, 서서히 계층 간 대립과 그것이 사회, 교회 활동에 미치는 의미가 증대되려고 하던 즈음이었다. 웨슬리의 신성클럽(Holy Club)은 하층계급들의 비참에 눈을 돌렸고, 빈부격차의 심각함 속에서 교육받지 못하고 산업지역의 도시 변두리 슬럼가에서 버려진 비참한 상황에 관심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은 기독교적인 인간사랑 또는 박애의 정신과 노력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당시 웨슬리 이전에 일어났던 감리교 운동의 일종의 전신인 안토니 호르넥의 종교회(religious societies)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경제적 도움, 교도소 방문, 병자 돌봄 등의 사회적 과제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웨슬리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리하여 웨슬리의 옥스퍼드 초기 메소디스트들은 기독교적 삶의 본질적 요소로서 사회적 자선(자비의 행위)을 추구하였으며, 내적으로는 금식, 자기절제 등을 실천하여 거기서부터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려 했다. 이를 가능케 한 종교적 동기는 물론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본받아 따르는 삶을 통해 선을 행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계명의 실천이며, 그 결과는 영혼을 구원하는 데까지 이르는 더 큰 행복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종교교육 지도,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봄 등등 이러한 선행은 성화와 행복에 이르는 윤리적 규범의 성취였던 것이다.
 
이제 감리교 부흥운동의 전개와 더불어, 웨슬리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실천은 복음 선포와 더불어 중요한 사명으로 여겨졌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속회를 통한 모금을 실시했고, 궁핍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자립하기 위한 노력을 격려하였다. 웨슬리는 메소디스트 운동이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들데 대한 관심과 그들에 대한 청지기직으로 표현되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나아가서 그는 많은 부유한 감리교인들에게서 계속적으로 모금을 하여 이러한 사회적 활동의 토대로 삼았으며, 설교, 책자 등의 출판에서 나오는 기금을 사용한 동시에 거기서 인간의 양심을 일깨우는 교화의 길을 찾았다. 또한 웨슬리의 사회적 관심은 병과 치료에도 상당히 기울여졌다. 그에 의해 의약소들이 세워졌고, 기초의학(primitive physic, 민간치유법) 등의 수집을 통해 치유문제를 스스로 처방하도록 도움도 주었다. 광범위한 의료 활동을 통해 감리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힘썼는데, 의식 개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기본적으로 정치,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견해에서 사회적 이슈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빈곤의 원인들을 분석하여, 정확히 당시의 사회적 상황 및 내적 전제들을 인식하려 했다. 가난의 원인은 무지와 완악함이지만, 단지 게으름에만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도움, 즉 사회적 사랑이 없어서이며,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윤리적 문제, 경제적 문제에 대한 통찰과 함께 빈곤의 연구가 필요하며, 검증 가능한 원인을 밝히려 했던 웨슬리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사회적 불의의 근본적 원인을 밝혀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 이러한 웨슬리의 접근은 단지 자선적 도움 이상으로 사회적 관심을 확대했던 실천적인 노력으로서, 그의 사회적 성화의 큰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웨슬 리가 당시 시장경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세금제도의 개혁 등을 통해 경제적 악을 치유하려 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성화의 실천은 물론 본질적으로 무제한적인 이웃 사랑의 실천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웨슬리의 선포의 결과였다. 그를 통해 이루어진 각성운동, 부흥운동의 결과 봉사적 열정은 불붙여졌고, 참된 기독교의 실현으로서 감리교는 하나님의 모든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실현하는 사회적인 실천을 주된 믿음의 열매로 낳게 된 것이다. 이웃 사랑은 오직 화해에 근거한 거듭난 사람들의 삶에서 완전하게 성취될 수 있다는 웨슬리의 신념은 예수 그리스도와 첫 기독교인들의 모범을 따르려 했던 것이었다. 웨슬리의 감리교 모임들은 이처럼 사회적 시험의 무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회관계의 구조를 형성하면서, 이 모임들은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였고, 모든 인간의 원칙적 동등성, 평등과 무차별을 추구하였다. 가장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으로 인해 사랑, 동정, 긍휼과 친절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외적 선행, 자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존엄성, 필수불가결한 가치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기독교적 사귐과 형제애, 연대의식과 모임 속에서 감리교 운동은 사회적인 장벽, 차별 등을 넘어서는 평등한 인간성의 구현을 보여주었고, 하나님의 사랑에 입각하여 모두를 환대하고 도와주는 새로운 관계성, 가치의식으로 새로운 방향의 사회적 성화를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의 실천은 웨슬리와 그를 뒤이은 감리교 역사에서 노동운동, 여성해방운동, 노예해방운동, 교도소개혁운동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로써 그는 인권에 대한 심오한 관심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 사회정의의 향상에 기여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의 회복에 열정을 쏟았던 것이다. 감리교 운동에서 여성의 지도력을 극대화함으로써 그의 시대에 훨씬 앞서가는 사회적 성화의 불길을 드높인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웨슬리는 물질에 대한 청지기 의식에서 더 나아가 환경의 청지기 의식을 주창하였다. 후기 웨슬리에게서 나타나는 우주적 새 창조(new creation)의 종말론적 비전은 그로 하여금 창조된 질서와 자연의 파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환기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 이외의 피조물에 대한 긍휼과 배려, 하나님 나라의 가치요 실재인 정의와 자비, 진리의 실현을 도모하였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회복과 갱신에 이끌리어 마찬가지로 회복, 치유, 갱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인간은 청지기로서 봉사해야 한다. 생태학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자기훈련과 자기절제, 및 희생에 대한 비전은 웨슬리에게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웨슬리의 성화는 개인에서 시작되어, 사회와 공동체, 나아가서 자연과 환경, 우주에까지 이르는 것이 된다. 창조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양육 받고 용기를 얻어, 이제 우리에게 위탁된 이 지구를 보존하는 청지기로서의 사회적 성화의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 웨슬리가 소망했던 참된 감리교도의 높은 비전이었던 것이다.
  
4. 사회적 성화의 목표

 
웨슬리의 성화 영성과 신학은 그의 복음적 선포와 목회적 활동에서 시작된 것이다. 복음은 개개인을 대상으로 회개로 부르시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구원의 메시지인데, 거기에서 반드시 사회적 차원에까지 포괄해 나아가는 교회의 사명이 드러난다. 개인의 변화와 갱신인 성화가 우선이며 필연적 전제이긴 하지만, 웨슬리는 기독교가 사회적 종교로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것이 사회적 성화의 목표를 분명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회적 성화는 먼저 개인의 가치, 불멸하는 영혼인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과 갱신을 높이 평가하는 자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목표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가치와 존엄성에 입각하여 그 행복을 구현하는 사회적인 변화와 그것을 위한 활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설교를 통해 인간들은 죄로부터 치유 받고 도덕적 변화, 생활의 전반적인 변화를 겪게 되며, 이러한 성화는 반드시 윤리적인 힘을 동반하여 인격의 변화와 성장을 가져오는 동시에, 사회적인 갱신운동으로 역동화되어야 한다.
 
웨슬리에게 사회적 성화는 책임과 연대의식을 낳았다. 이제 참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사회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웃사랑과 청지기의식을 고양한다. 그는 동료 인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선을 행하여 인류복지를 도모하고 인간 사이의 평화와 선의를 증진함으로써, 피조물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고 악과 부도덕을 치유, 극복하는 현 세상에서의 구원을 목표해야 한다. 또한 참 기독교는 연대의식을 통해 사회적 정감과 긍휼의 실천을 가져오게 된다. 감리교운동은 사회성을 높였고 웨슬리의 성화 사상은 동료 피조물의 동등성을 존중하면서 심지어 동물, 자연의 세계에까지 관심을 확장하였다. 함께 고난당하는 연대의식은 우월감 대신 섬기는 데로 나아가며, 사회적 사랑으로 열매 맺게 된다.
 
세상 속에서의 종교인 기독교는 사회를 갱신함을 목표로 한다. 사회적 질서, 구조, 국가제도의 변혁까지 나아갈 정도로 18세기의 정황에 처한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 사상은 진전하지 못했다. 그는 현 상태 유지와 질서 및 안정을 요점으로 하는 정치적 보수주의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밝혔듯이 웨슬리는 사회의 불의, 부조리에 항거하여 사회의 변혁, 갱신을 목표로 삼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주저하지 않았고, 특히 인간의 권리, 자유, 평등을 존중하고 강조한 것은 중요한 그의 공헌이다. 물론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갱신의 수단은 먼저 개인의 도덕적인 혁신이라고 웨슬리는 믿었고, 거기에서 인간의 정의가 도출되어야 하며 새로운 인간 태도의 결과로 행복과 평화를 고양하고 죄와 악을 제거하며, 궁극적으로 사랑으로 개인과 사회를 개혁하는 성화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경적인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새 창조의 현재적인 역동적인 침입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정의, 자비,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명을 미래에 대한 위대한 소망에 입각하여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새 창조의 비전은 특히 후기 웨슬리의 신학사상에서 우주적 차원에까지 넓혀지면서, 오늘날 생태계의 존재 위기에까지 접근하여 모든 피조물의 고통, 부서짐 등에 대한 긍휼과 함께 책임 있는 청지기로서의 보존, 공존을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에 비춰 주창하게 되는 창조/새 창조의 도식을 보여주게 되었던 것이다.

5. 결론적 코멘트

 
우리는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 사상을 그의 시대적 제한성과 더불어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 보수주의나, 법적, 제도적인 변혁까지를 보지 못한 점 등의 한계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개신교의 약점이 되기 쉬운 바, 기독교를 단지 믿음에 국한시키지 않고, 선한 행위의 가치를 높이 인정하며 성화와 그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 고양한 것이 그의 큰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슬리에게 인간은 죄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사랑의 대상이며 평등, 자유, 행복을 누려야 하는 이성적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과 갱신인 성화는 먼저 개인의 변화를 통해 시작되며, 하나님 나라의 세상 속에서의 확대를 통한 사회적인 변화로 결과 되어야 한다. 그 핵심적인 원리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에 입각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성취이다. 그러한 웨슬리의 확신은 그 시대에 뛰어난 많은 사회적 생활 태도의 훈련, 사회적 관심, 참여와 활동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는 그 시대의 최대의 사회개혁가라고 불리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는 사회적 성화의 실천에 있어서 초대교회처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청지기직을 강조하였고, 노동과 인권, 사회적 정의와 자유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재들이 실현되는 종말론적 변혁의 비전을 구현하였다. 심지어 새로운 창조의 비전에 의해 창조계의 생태적, 환경적 청지기직에까지 그의 사회적 성화의 범위는 확대되었다.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켰고, 사회문제에 가장 실천적으로 주목하면서 거기에 신앙의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조치하고 개혁하고 치유하였던 웨슬리, 그의 사회적 성화의 신학은 이렇게 위대한 유산으로 전체 기독교회의 역사 속에 빛나게 남아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그러한 영적 유산을 계승하여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읽을 책>
테오도어 러년, 새로운 창조: 오늘의 웨슬리신학, KMC.
김홍기, 이후정 외, 존 웨슬리의 역사신학적 조명, 감신대출판부.
-----, 존 웨슬리의 희년사상, 감신대출판부.
-----, 존 웨슬리의 경제윤리, 대한기독교서회.
만프레드 마르쿠바르트, 존 웨슬리의 사회윤리: 그 실천과 원리들, 보문출판사.
김진두, 웨슬리와 사랑의 혁명, 도서출판 감신.

 

출처: NCCK 자료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