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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10) “복음주의가 보는 근대: 문화의 노예”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10 “복음주의가 보는 근대: 문화의 노예”Nov 03, 2015 01:28 AM KST

앞에서 종교 간 관계 유형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비교하면서 각 유형의 논리적 근거와 역사적 배경을 간단하게 살폈습니다. 논리적 근거는 씨줄에 해당하고 역사적 배경은 날줄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공시성과 통시성이라는 말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논리적 근거와 역사적 배경’이 가로와 세로라는 것은 이것이 임의로 고른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이 말에는 세 가지 유형에 대해 구조와 역사를 한데 엮는 체계적인 분석을 하겠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논리적이고도 역사적인 순서대로 배타주의로 분류되는 복음주의부터 살펴봅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9 하나님이 세월호를 빠뜨리셨나?!Oct 12, 2015 08:59 AM KST

바로 앞에 그려놓은 표에서 우리 이야기를 계속 이어갑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시대 흐름에 따른 역사관의 차이가 종교 관계유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역사에 대해 고,중세에는 비관주의가 지배적이라면 근세는 낙관주의를 절정으로까지 끌고 간 시대라 하겠고, 이에 비해 현대는 중심적이고 일방적인 비관이나 낙관을 거부하는 현실주의를 채택합니다. 그리고 시대에 따른 각 역사관이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관계유형에 상응합니다. 왜, 어떻게 그리 되었을까요?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8 종교간 관계 분석을 위한 틀(1)Sep 22, 2015 09:04 AM KST

앞서 서론의 끝자락에서 말씀드렸듯이 이제 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구 그리스도교의 배경에서 시작된 종교신학은 다른 종교들과 공존하고 혼재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마땅한 길을 모색하려는 목적으로 개진된 분야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살피고 되씹고자 합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던 ‘자기라는 인간’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두고 비판적으로 읽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7 다종교세계를 이루는 ‘종교 간 관계’와 그 얽힘Aug 26, 2015 03:44 AM KST

몇 차례에 걸쳐 서론을 나누었던 글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는 여러 종교들이 함께 있는 상황을 살피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락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그것도 그저 추상적 인간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라는 인간’을 살피자고 했습니다. 삶의 모든 면들이 그러하지만 종교에서 이게 더욱 진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되돌아 새기곤 했습니다. 충분하진 못해도 어느 선에서는 이야기를 옮겨가야 하기에 인간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덮어놓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자기성찰이 모든 종교 이야기에 착실하게 깔려야 할 터이니 필요한 때마다 다시 끌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이게 다종교세계를 보는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정재현의 신앙성찰] ‘자기’에 대해 한 마디 더!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6 ‘자기’에 대해 한 마디 더!Aug 06, 2015 07:52 AM KST

자기에 대한 이야기에 미련이 좀 남아 있습니다. 아니 사실 이건 미련이기보다 노파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마디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그리 하겠습니다. 앞서 타자를 배제한다는 배타주의는 배제하려는 타자가 자기를 이루고 있으니 자기모순이라고 했습니다. 타자를 포함한다는 포괄주의는 타자에 대한 우월을 전제하니 서로 우열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타자와 함께 한다는 다원주의도 자기가 그렇게도 타자와 다르기만 한 별개라는 착각을 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제 같은 이야기를 반대 방향에서 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려는 것은 이것이 바로 다종교상황에서 겪는 문제의 핵심적인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5 결국 ‘자기’가 문제의 핵심이다!Jul 16, 2015 03:40 AM KST

앞서 살펴본 대로, ‘인간’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종교의 문제들을 아무리 심도 있게 논해도 그 뿌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종교의 문제를 인간과 떼어 놓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가 표방하는 절대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경향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대체로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우리는 종교의 원론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됩니다. 이상적이고 원리적인 이야기만 하니 그럴 듯 해보이기는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위나 정오를 판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많은 논의가 공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을 덮어놓고 종교만 살피려하기 때문입니다.

[정재현의 신앙성찰] 그렇다면 ‘인간’은?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4 그렇다면 ‘인간’은?Jun 24, 2015 07:03 AM KST

앞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은 독실한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가당착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교회를 앞세운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그것도 내가 속한 교회만이라 하니 자기절대화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교회나 그리스도교라는 범주를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얼마나 심각하게 자아내는지를 진솔하게 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성경도 무슨 법전인양, 휘두르는 칼처럼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아직도 생소하거나 여전히 꺼려진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인간을 스스로 살펴봅시다. 나 자신을 보자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 그리스도교, 성경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우리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비/의도적으로,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3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에 대하여Jun 08, 2015 11:22 AM KST

교회보다 그리스도교가 더 크고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것이라고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성서에 갇혀 계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럴 수 없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물론 이 구호는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뭘 어떻게 생각해? 당연한 거지!”라고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착실히 하시는 분들에게 교회와 구원의 분리불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언제나 옳고 당연한 것입니다. 아니라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할 이유도 없겠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사에서도 이런 구호는 꽤 일찍이 등장했습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중세 초기인 7세기의 키프리우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구호라고 하겠습니다. 이교도들과의 싸움을 위한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중세 절정기인 13세기 교황 보나파시오가 교회의 치리를 목적으로 이 구호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그러다가 시대의 전환이 근세로, 현대로 넘어오면서 세상이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듯이 보이자 교회는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듯이 이 구호를 재천명했습니다. 현대가 시작할 무렵인 1860년대에 열렸던 가톨릭교회의 제 1차 바티칸공의회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60년대 제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이 고전적 구호를 폐지하고 현대로의 전환의 길목에서 근대적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호는 가톨릭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니 개신교회의 경우도 이 선언은 포기할 수 없는 기조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회가 이 구호를 오히려 더욱 목청 돋우어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한 교회가 전권을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2교회-그리스도교-성서-하나님의 관계May 26, 2015 09:44 AM KST

서로 다른 여러 종교들이 함께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다종교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살피기에 앞서 그리스도교 안에서 좀 정리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뼈대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핵심들을 추려본다면 교회, 그리스도교, 성서, 하나님, 이렇게 열거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더 많은 핵심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동의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넷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넷이 모두 같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미 차원이 다르니 액면 그대로 무조건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소유 또는 귀속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고 보는 가장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고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경전으로서 그 수용과 해석의 권한이 전적으로 그리스도교에 속하며 그러한 그리스도교는 현실에서 교회로 결집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 넷은 등호(=)를 써서 ‘교회=그리스도교=성경=하나님’이라고 정리됩니다. 순서를 정반대로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를 구성하는 요체로서 전부이며 그리스도교는 성경을 경전으로 채택하고 전수하는 권한과 의무를 지닌 독자적 종교이고 성경은 하나님을 이 세상에 알려주는 유일한 계시 또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돈독한 신앙으로 보입니다.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1 ‘종교’와 ‘다종교상황’이라는 것May 16, 2015 09:07 AM KST

과학의 출현이 새로이 열었다는 근세를 탈종교화 또는 세속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중세 종교의 자리를 과학이 대신하여 인간을 더욱 확실히 잘 살게 해 줄 것이고 결국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과학주의까지 치달아갔지만 그것은 곧 근세 붕괴의 서주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시작된 우리 시대인 현대는 아직도 엮어져가는 중이라 잠정적으로 ‘포스트모던(post-modern)’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앞선 근대와 연속적이라는 뜻에서는 ‘후기근대’이기도 하고 불연속적이라는 뜻에서는 ‘탈근대’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우리의 시대에 종교의 퇴조를 여러 모로 예견한 이들이 꽤 있었지만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종교의 운명을 그렇게 점쳤던 말들이 딱히 맞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즐거워할 일만도 아닌 것은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무종교인들이 그 어떤 종교인보다도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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