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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21 10:11
루터의 종교개혁과 한국교회의 현실
글쓴이 : 손규태
 
 
들어가는 말
 
금년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박사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493년이 되는 해다. 이제 4년이 더 지나 내후년이면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맞게 된다.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개신교회들 혹은 교파들은 500여년이 흐른 오늘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기도 하고 변용되기도 했다.
 
첫째 기독교는 예수께서 명한 것처럼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기독교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5세기 콜롬부스의 신대륙발견과 더불어 가톨릭교회는 일찌감치 남미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개신교는 19세기 영미의 식민주의의 물결을 타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이제는 예수의 이름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예수께서 명하신 것처럼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마태 28:19).
 
둘째 개신교는 수많은 교파와 종파로 분열되었다. 종교개혁교회의 3대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루터교, 장로교 그리고 성공회 외에도 수많은 지류 교파들이 존재한다. 종교개혁 당시 이른바 종교교혁의 좌파 교회들, 이탈리아의 왈도파 교회, 체코의 모라비안 교회, 프랑스의 휴그노파 교회, 네델란드의 메노나이트, 영국의 퀘이커들 외에도 수많은 교파들이 등장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통일성보다는 기독교의 다양성을 낳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다양성을 가진 교회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특색들을 가지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복음에 더욱 충실한 종교개혁 좌파 교회들도 있으나 복음으로부터 이탈하는 교회들도 있었다.
 
셋째 이러한 종교개혁교회들은 종교개혁 정신 즉 성서만, 믿음만, 은총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정신에서 많이 이탈하고 있다. 개신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루터교회, 장로교회 그리고 성공회들은 500여년의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에 성실하기 보다는 시대와 사상 의 흐름에 좌우되어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도 야기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약 1000여 년 동안 중세 봉건영주와 그 체제와 결탁하며 살아왔다면 개신교회들은 500여 년 동안 유럽의 주된 사상인 계몽주의, 주된 세력인 제국주의, 자본주의 등과 궤를 같이 하면서 살아왔다.
 
우선 인간 이성을 숭배하던 계몽주의 시대에는 신학자들과 교회들은 종교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의 일부로 파악하여, 19세기에 와서는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종교의 기원을 인간의 절대의존의 감정에서 파악한 슐라이엘마하, 종교란 도덕적 성품의 함양의 도구로 파악한 릿츨, 종교를 과학적 발전에서 본 로데 등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종교를 인간의 한 가능성으로 보았다. 인간의 도덕적 성품이 높아질수록 또는 자연과학이 발전될수록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지 않고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은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비판했다.
 
그 다음 19세기 영미 제국주의 시대의 개신교회는 이들 제국주의 세력의 물결을 타고 복음을 선교하는 활동을 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의 다수의 국가들이 영국의 식민지가 될 때에 기독교가 그 세력을 등에 업고 전래되었다. 마치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미를 식민지화 할 때 가톨릭교회를 전파한 것처럼 19세기에는 영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 등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 때 기독교를 전파했다. 따라서 당시 기독교는 자유와 해방의 복음의 종교가 아니라 억압과 수탈의 종교로 피식민지 국가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유와 해방 그리고 인권의 종교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민중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셋째로 19세기 유럽이 계몽주의를 통해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서 제국주의 세력으로 등장하고 엄청난 자원을 갈취하면서 산업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되었다. 따라서 계몽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 신학과 식민주의 물결을 탄 제국주의적 선교와 더불어 등장한 자본주의에 상응하는 자본주의적 신학이 등장하게 된다. 이 자본주의적 신학이란 전제군주 시대에 왕권신수설을 통해 종교적 기초를 만들어주던 궁정신학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하나님의 본성에 충실한 경제체제라고 받아들였다. 특히 이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것을 바르게 이끌어준다”라고 주장하여 시장의 자유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는 부하게 되며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는 가난하게 산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부는 성실한 노동을 통해서 재화를 축적하는데서 가능하고 가난하게 되는 것은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들이 부하게 잘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가난하고 못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한국 개신교의 강단에서는 설교되고 있다. 목사들은 설교단락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라고 외침으로써 예수가 무선 복덕방망이 같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기독교는 자본주의 원리 즉 인간의 업적과 성과의 원리를 가장 하나님의 질서와 상합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던 공로사상, 거기서 나온 면죄부 정신이 오늘날 개신교와 자본주의 세계에서 다시금 왕 노릇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종교개혁의 원리인 은총만이 아니라 업적이며, 더 이상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돈, 자본주의, 맘몬이 이 세상을 통치한다. 지금부터 513년 전 신앙심 깊은 콜럼부스는 스페인의 바셀로나 항구를 떠나면서 성 어거스틴의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라는 기도를 외우면서 그의 신대륙발견을 통해서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할 것을 기원했었다. 그런데 독일의 슈피겔지는 1992년도 유럽자본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콜럼부스의 신대륙발견 500주년 기념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등장했고, 이 시장이라는 신의 현현은 다우존스 지수며, 그 성체는 미국의 달러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며, 그의 나라는 지금 크렘린의 지도자들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적 보편문화이다.”(Spiegel, 1991.12.3w. S. 97).
 
루터의 종교개혁과 한국개신교회의 실존
 
오늘날 세계교회를 말하기 전에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단들은 종교개혁 이후에 형성된 개혁교 정통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정통주의는 칼빈의 사상을 체계화 내지 교리화 한 것으로서 매우 배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교리화 되고 배타적인 개혁교 정통주의는 18세기 미국으로 건너가서 더욱더 배타적이 되어서 이른바 근본주의로까지 발전된다. 그것의 다섯 가지 기본원리들은 성서 무오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의 대속적 희생, 육신의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등이다. 이러한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 장로교 선교사들은 성서의 무오설에 근거해서 근대적 성서연구방법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성서학을 교리학의 시녀로 삼았다. 이 이러한 우리 나라의 정통주의적 장로교 교단들은 1970년대까지는 앞서 말한 근본주의의 다섯 가지 원리를 잘 준수하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 순수성을 지켜갔고 엄격한 신앙생활을 신자들에게 요구했다. 이러한 보수적 장로교회들은 1950년대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신학적 사조 즉 성서비판학을 받아들여 성서의 자유로운 연구를 주창하는 한국기독교 장로회라는 진보적 교단이 등장했지만 흔들림 없이 정통주의적 선교사들이 전해준 근본주의 신학을 확고부동하게 지켜나갔다.
 
장로교와 같은 시기에 들어온 감리교회는 그들의 조상 요한 웨슬레의 정신에 따라서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고, 신앙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건주의 신학노선을 견지했다. 감리교회는 특히 교리적이고 배타적인 장로교회와는 달리 감성적이고 경험적 중생의 신앙 즉 예수를 통해서 거듭나는 삶을 중요시함으로써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중생의 체험을 갖도록 지도했다. 특히 감리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사경회와 부흥회를 자주 열어 신자들의 신앙이 식지 않고 늘 활성화되도록 노력했었다. 또 감리교회는 어떤 교리적인 틀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한국의 종교적 전통들과도 자유로이 대화하면서 종교신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로교회의 정통주의와 감리교회의 경건주의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것은 1970년대 중반 “교회성장론”이라는 신학적 원리가 미국으로부터 도입되면서부터이다. 교회성장론은 60년대 미국의 세속화 과정과 종교적 냉소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에 몇몇 종교적 천재들, 예를 들면 빌리 그래함, 로버트 슐러 등과 같은 부흥사들에 의해서 고안된 것으로 그 밑바닥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철저한 경영논리가 깔려 있다.
 
이러한 교회성장론은 처음에는 순복음 계통의 교회를 통해서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이 교단은 이 방법을 통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특히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그 여세로 다수의 지 교회(지점들)를 설립하자 한국의 전통적 개신교회들도 여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1970년대로 말하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 시작된 산업화와 함께 시작된 도시화로 인해서 다수의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 특히 서울로 이주해 옴으로써 도시교회들의 급성장이 있었으나 농촌교회는 피폐화되고, 1970년대 말 산업화로 인한 세속화로 그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기 시작할 때였다. 이러한 개신교회들의 성장둔화기에 급성장을 계속하는 순복음 교회에 대해서 대교단들은 무시하거나 이단시 하는 것으로 대처하려 했다. 그러나 이 순복음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무조건 무시할 수만 없는 상황이었다.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통적 개신교회들 장로교회들과 감리교회도 이 교회성장론을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각 교단들은 5천 교회운동, 1만 교회운동, 혹은 5만 교회운동 등의 프로그램을 조직함으로써 교회성장론의 신학을 실천 프로그램화 하게 된다. 교단마다 개척교회 위원회를 조직하고, 부흥사들의 조직을 이용하여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총동원주일과 같은 군사적 용어들이 비판 없이 교회에서 사용되었으며 새 신자를 교회에 데려오는 대가로 교인들에게는 일정한 물질적 대가를 지불하기도 했다.
 
이러한 교회성장론의 실체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력 확대와 이윤창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프로그램들은 어떤 것인가? 간단히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는 전통적 목회방식으로는 유럽의 교회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쇠퇴와 몰락의 길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의 목회에도 자본주의적 경영논리와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는 목회(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경영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고상한 성직자가 아니라 뭔가 성과를 내는 대기업의 CEO가 돼야한다.
 
둘째 설교는 과거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복음의 선포하는 것(Proclamation)으로는 부족하며 오늘날 발전된 대중매체들을 통해서 선전(Propaganda)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포로서는 성과를 거둘 수 없고 오직 선전으로서만 성과가 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했다는 교회의 목사들의 설교는 더 이상 선포가 아니라 선전이 되었다.
 
셋째 교회조직도 과거처럼 신앙(은총)원리가 중심이 아니라 업적(성과)원리가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헌금이나 전도를 통해서 성과와 업적을 올리는 사람들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 결과 업적과 성과에 따라서 교회의 지위와 역할도 주어져야한다는 것이다.
 
넷째 새 신자 훈련 프로그램은 세포조직(Cell Organization)으로 체계화돼야 한다. 각 단위의 책임자가 그 구성원을 잘 조직하고 철저하게 훈련시켜야 한다. 요즘 다단계 판매방식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판매망과 훈련방식을 교회도 채택해서 신자들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단계 판매회사인 암웨이의 신입회원 훈련과 교회의 새 신자 훈련 프로그램들 사이에는 내용과 언어만 다를 뿐이지 형식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 발생하고 발전되어온 교회성장론은 철두철미 팽창과 성과(업적)를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본질과 성격을 담고 있다. 그 결과 1980년대부터는 한국의 대교단들의 지도력도 과거처럼 신학적 지식이나 고매한 인격이나 돈독한 신앙을 가진 선배집단들로부터 업적과 성과를 거두어 거대한 교회를 짓고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도 순서를 맡는 사람들도 자금력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른바 “능력 있는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한국개신교회들의 신학적 변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들이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여기서 분명한 신학적 문제들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한국 개신교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교회성장론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적 원리에 사로잡혀 있다.
2. 이 교회성장론은 자본주의적 업적원리에 기초하고 있어서 “믿음만”(sola fidei)이라고 하는 종교 개혁적 복음의 원리에서 이탈하여 가톨릭의 업적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3. 이 교회성장론은 인간을 상호 믿음에 기초한 “관계적” 인간에서 이탈시켜서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쟁자들로 만들어서 사회통합에도 거침돌이 되고 있다.
4. 특히 교회성장론자들은 친미적이고 반공. 반북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되어서 앞으로 민족 자주와 민족통일에 커다란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5. 이들 교회성장론자들은 자본주의적 업적원리를 신봉하기 때문에 정치적 영역에서도 그들의 정의와 도덕성을 문제 삼지 않고 정치와의 불건전한 타협과 유착을 가져올 수 있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가장 큰 대의라고 할 수 있는 “은혜만” 혹은 믿음만이라는 대의는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이러한 자본주의적 업적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결과들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맘몬이 왕 노릇하는 자본주의적 독점지배, 즉 세계화가 가져온 세계 정치적 결과는 어떤 것인가? 여기서 파생된 문제들을 다 설명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해서 “은혜”가 상실된 세상이다. “믿음”이 상실된 세상이다. 은혜와 믿음이 없는 맘몬이라고 하는 거대한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을 우리는 지금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맘몬의 숭배요, 그것은 다름 아닌 “무한경쟁의 세계”이다. 교육영역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과외를 해야 함으로써 성장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배우는 즐거움에서 공부의 짐에 억눌려 있다. 맘몬은 가능한 한 더 큰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 인건비를 깎고 일자리를 줄여서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수가 없다. 젊은이들로부터 자본은 희망을 빼앗아 간다. 나이 먹은 사람들도 봉급이 높아지고 능력과 성과가 떨어지면 일찌감치 직장에서 퇴출된다. 일자리도 정규직은 없고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 56%에 달한다. 그들의 원급은 정규직에 잔 밖에 안 된다. 그럴수록 기업가진 부자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된다. 이리하여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은 붕괴되고 극빈층에 들어가는 인구가 750만 명에 달한다.
 
이것이 은혜중심, 믿음중심이라고 하는 종교개혁 정신을 망각하고 성과중심 업적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세계의 현실이다. 종교개혁정신인 은혜중심은 단순히 면죄부를 사서 구원받겠다는 가톨릭 신앙의 문제와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 정신인 믿음중심은 단순히 가톨릭의 공로 중심에 대칭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늘날 맘몬 세계자본주의의 사슬에 사로잡혀 신음하고 죽어가는 전체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은총의 원리 없이는 오늘날 물질을 더 얻기 위해서 피 흘리며 싸우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 따라서 은총의 원리는 평화의 길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의 원인도 맘몬에 사로잡힌 자본주의적 팽창논리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도 “은총만으로”라고 하는 루터 박사의 종교개혁원리 아니 세계개혁의 원리에 따라서 살 때만 가능한 것이다.
 
손규태(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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