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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08 06:59
구약성서에 나타난 희년사상: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글쓴이 : 손규태

I.들어가는 말: 해석학적 전제

그 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구약성서에 기원을 두고 있는 “희년”개념을 다룰 때 제기되어온 문제는 그것의 역사성과 함께 오늘날의 세계에서 실현가능성의 문제이다. 희년의 역사성을 문제 삼는 학자들은 구약성서 혹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희년이란 실현된 일이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희년이란 개념은 하나의 유토피아거나 아니면 종말론적 미래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또 두 번째 물음 즉 희년의 실현가능성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희년사상은 매우 사회 혁명적이어서 기존의 사회경제적 질서를 뿌리로부터 문제삼는 것이므로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다원적이고 자본주의적 사회에서는 실천 불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모순된 현실들을 비판할 수 있는 단초로서 하나의 유토피아적 사상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년개념에 대한 역사성과 현실가능성을 묻고 나서 유토피아 사상이나 종말론적 미래에서 그 대답을 찾으려고 하는 데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물음은 성서의 해석학적 물음이다. 성서의 개념들 가운데서 역사적 단초가 결여되어 있다거나 아니면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개념들에 직면해서 우리는 위와 같은 유토피아 사상이나 종말론적 미래로 도피해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산상설교에 나타난 그리스도인들의 행위규범들 예를 들면 원수 사랑의 계명과 같은 것에 대해서 이중적 척도를 제시했던 카톨릭 신학을 상기하게 된다. 즉 원수 사랑과 같은 산상설교의 계명은 일반 신도들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제나 승려와 같은 특수한 직무에 있는 사람들이나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신교의 자유주의적 신학이 하나님 나라 개념을 기술문명의 발달과 동일시하거나 아니면 도덕적 성품의 고양과 일치시킴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던 철저성(Radikalität)을 희석시켰던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기만들은 교회의 제도화와 더불어 하나님 말씀의 요구의 철저성에서 도피하려고 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초대교회에서 교회의 제도화와 세속화에 반대해서 철저성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했던 몬타니즘을 정죄한 것이나 종교개혁 당시 같은 방향에서 철저한 사회주의적 공동체를 통해서 원교회를 회복하려고 했던 재세례파들을 정죄했던 것들이 그 대표적 예들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했던 그리스도인들을 제도권 교회들은 광신(Schwämerei)이라고 해서 이단시했다.

만일 희년이란 개념의 역사성과 그것의 실천가능성을 가톨릭이나 자유주의적 신학의 틀에서 문제 삼는다면 이 개념은 처음부터 신학적 토론의 현장에 끌고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성서의 다른 중요한 개념들 예를 들면 하나님 나라 등과 같이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중요한 것은 오늘날 세계교회 즉 자본주의적 세계 내에 안주하고 있는 제도화된 교회들을 깊은 잠에서 깨우고 참된 그리스도의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II.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희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구약성서에 나타난 희년사상은 신약성서에서 나사렛 예수의 입을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원 뿌리는 구약의 희년법 사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레위기의 희년정신이 이사야에게 와서 재해석되면서 그 정신이 확대되고 드디어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 설교에서 다시 재해석되면서 희년의 지평이 한없이 확대된 것을 본다.”고 한 김찬국 교수님의 지적은 그동안 희년개념을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해석한 것을 종합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예수가 그의 도래를 통해서 희년이 “지금, 여기에서” 완성되었다고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희년법사상의 노선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구약성서를 율법과 복음 혹은 약속과 성취라고 하는 구속사적 관점에 고찰할 때 제기되는 문제는 예수가 완성하려고 했던 율법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묻게 된다. 분명한 것은 희년법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들 즉 의식법(ceremonial law)과 사회법(social law)중에서 예수는 사회법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마 12:1-8; 23장).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판할 때 그들이 어떤 종교적 의식을 소홀히 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가난한 자들, 즉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지 않은 것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구약의 사회적 예언자들, 특히 아모스와 미가 그리고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예언자들에 따르면 역시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의식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사회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암 5: 4-7; 렘 7:1-7).

우리가 여기서 희년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 우리는 피안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가 명하신 것을 완성함으로써 그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 개념에 대한 철저한 탈형이상학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위탁한 사명에 나타나 있다. 그의 사명은 이사야 35장과 61장에 보면 버림받고 병든 민족의 온전한 구원을 내포하고 있다. “눈먼 자가 보고, 저는 자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듣고, 불결한 자가 정해지고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것”(마태 11,5; 누가 4, 18절 이하) -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위탁이다. 병든 자들을 치유하는 것, 마귀들을 추방하는 일, 옥에 갇힌 자들을 해방시키는 것, 눈먼 자들에게 빛을 보게 하는 것, 의에 굶주리고 억압당하는 자들에게 해방을 허락하는 것 등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예수의 위탁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경제학을 포도원의 일꾼들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마태 20,1-16). 그는 자본주의적 업적논리에 기초한 분배논리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대 눈에 그슬리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마태 20, 15-16). 희년정신은 원상복구를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정신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만일 희년정신을 단지 구약의 역사에서처럼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국한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지평이 열어놓고 있는 개방성을 차단하게 된다. 기존적인 것을 전적으로 뒤집어 업는 것이 희년정신이다.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희년정신은 현재적인 것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철저한 긍정이다. 따라서 희년은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보면 혁명적이다.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희년은 도래하는 하나님과 해방된 인간을 선포하는 것이며 그것과 더불어 새로운 땅으로 종말론적 출애굽을 하는 것이다.

III. 한국 “민족”의 희년운동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등장했던 동서냉전 체제는 사회주의권의 해체로 종식되었다. 그 결과 미국을 초극 점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체제가 등장함으로써 “남북열전”의 시대가 도래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삶의 기준이 되던 냉전시대는 지나가고 경제적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었다. 이러한 시장경제 원리가 빚어낸 문제 즉 부한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 사이의 격차, 부한 나라들 안에서도 새로운 빈곤의 출현, 가난한 나라들에서의 빈부격차의 심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시장화 현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다시금 민족들의 문제이다. 서구에서는 이러한 세계의 시장화의 부수현상으로서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국가“의 종언을 말하고 있지만 서구민족국가들에 의해서 19세기에 식민지화되었던 제3세계 국가들은 ”근대적 민족국가“ 형성이 여전히 역사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틀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의 시장화 전략에서부터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의 확보와 함께 경제적 기초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민족국가는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자본과 기술의 이동에 장애가 되지만(J. Habermas) 제3세게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무한경쟁시대에서 자신들을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오늘날 세계의 시장화 추세에서 강력한 세계자본들 앞에서 사실상 민족국가의 위엄을 지켜가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세계의 시장화의 상황 속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날 것이며 그들의 이름이 민족이다.“ 그렇지만 이들 19세기의 식민지적 상황과 20세기의 동서냉전체제 하에서 분단되거나 통합되거나 억압당했던 민족들이 새로운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정체성과 주체성을 찾아서 각기 나라들을 세우고 있다. ”우선 모든 민족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었고 모든 민족들은 종말론적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우선적으로 성경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은 민족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민족의 통일과 희년”이 문제가 된다. 1995년을 한국민족의 희년으로 선포한 것은 하나님께서 개개 민족의 역사적 현실과 희망에 따라서 역사한다고 하는 성서적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민족적 카이로스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민족에게서 희년운동은 49년 혹은 50년을 단위로 하는 연대적 이해가 중요하지 않고 1995년이라고 하는 기점, 즉 카이로스적 이해가 중요하다. 이러한 1995년이라고 하는 카이로스는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궁극적 완성의 도상에서 민족들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고백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1995년을 우리가 희년을 우리 민족에게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궁극적 카이로스에 대한 궁극이전(vorletzte)의 카이로스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들의 희년 혹은 민족의 희년을 궁극이전의 카이로스로서 말하게 되는 것이다.

IV. 궁극이전의 카이로스로서의 희년의 실천

희년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해이다. 그러나 희년법이 지향하는 해방, 노예의 귀향, 토지소유권의 회복, 부채의 청산, 땅의 휴식등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인간들, 즉 하나님의 동역자들의 책임성의 영역이다. 이 희년법이 지향하고 있는 실천프로그람들은 민족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과 민중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구별해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적 현실에서 희년을 다룰 때 우리는 그 내용들을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좀더 현대적으로 다음과 같이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의 문제에서는 근대사에서 한국민족의 민족자주화 운동과 함께 오늘날 분단현실에서 외세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민군의 철군문제, 미국 및 일본 등과의 불평등한 정치, 외교, 군사, 경제문제 등이 민족의 현실과 민중의 현실에 미치는 악영향들을 고려해야 한다.

노예의 귀향문제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노동현실의 문제들을 고려하게 된다. 세계경쟁력 제고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사용주들을 편들고 있는 불공평한 노동법들, 자본의 이익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법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약자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사회보장에 관한 법제도들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토지의 소유의 왜곡된 현실을 바꾸기 위한 토지개혁등 을 통해서 토지공개념의 혁명적 실시가 요청된다. 대기업들의 과도한 토지소유는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동시에 서울인구 가운데 60% 이상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현실은 타개되어야 한다. 주택건설법의 개정 및 주거안정을 위한 새로운 법의 제정이 요청된다.

빚의 탕감과 관련해서 농어촌의 문제들이 혁명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수의 농어민들이 과중한 빚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들의 빚은 탕감되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어야 한다. 빚의 탕감의 문제는 국제관계에서의 부채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휴경은 농경사회에서 땅의 힘을 보존하는 것인 동시에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법제화되었었다.

그리고 희년정신이 갖고 있는 원상복구의 의미에서 분단된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실천하기 위한 화해와 협력의 구체적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라고 할 때 이러한 평화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에서 언급한 희년정신들이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 억압, 사회적 불의, 경제적 빈부의 격차를 그대로 두고 통일을 달성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흡수통일을 강행한 독일의 경우 “국토는 통일되었지만 민족은 분단되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즉 동독에 땅을 두고 서독으로 피난했던 사람들이 땅을 찾기 위한 소송으로 온통 나라가 뒤숭숭하다. 재판에 이겨서 서독인들은 점점 부자가 되고 동독인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통일을 달성한다면 그 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1995년 해방 50주년을 마지 하면서 한국개신교는 금년을 희년으로 지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희년 운동과 관련해서 몇 가지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첫째는 희년정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하께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결여이다. 위에서 언급한바 있지만 희년의 역사성과 그 실천가능성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실천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행사 중심 즉 희년예배를 보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마치려고 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판문점에서의 예배도 그렇고 또 다른 교단들에서 준비하고 있는 여의도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희년정신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람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둘째 희년운동에서 나타난 교단간의 분열과 갈등이다. 희년운동을 좁은 의미에서 남북통일과 연관시켜서 진행해 왔지만 여기서도 한국 개신교는 어떤 통일된 목소리나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못하고 서로 분열되었다. 북한 당사자들과의 저촉에서도 경쟁적이고 배타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북한 그리스도인들을 곤경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열주의적이고 소영웅주의적 발상과 행태가 교단간의 협조운동을 좌절시키고 개신교의 신뢰성을 실추시켜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희년운동에도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

V. 결 론

이러한 희년 프로그램의 실천을 위해서 오늘날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이들 내용을 담아 가는 법제화이다. 김찬국교수는 그의 논문 결론에서 희년법의 성취문제를 다루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 희년을 성취할 수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피조물의 탄식이 기쁨으로 바뀌는 것도 희년이 성취도이었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전제할 때만 가능한 선언입니다.” 그러나 희년은 선포로서만 끝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신학적 수준에서만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늘날과 같은 반기독교적 새로운 세계질서 개편과정에서 희년사상은 한국의 민족의 희년으로서가 분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민족들의 희년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햐 할 역사적 당위로서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한국민족에서 희년사상의 출현은 세계사적 사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리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구약의 희년법은 성결법 안에 율법으로서 법제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 실현되었던 것이 분명하다(안병무 상게서 참조). 이것은 안식일 법과 같이 지켜야 할 법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희년법이 안식일 법처럼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후기 유대교에서 유대교가 과도하게 종교화됨으로써 “삶의 종교”에서 “종교적 삶”으로 왜곡되게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의 보수교단의 교인이 성수주일은 하면서 희년법은 멀리하는 것과 같다. 종교와 삶이 완전히 유리되었던 것이다.

또 희년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 내용이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었던 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득권자들이 자기의 소유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노예를 석방하지 않았고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다. 구약의 예언자들의 비판이 주로 사회경제적 불의에 집중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기득권 층에 서서 해석학적 기만을 통해서 그들을 도왔었다(막 7,11).

희년사상과 같은 새로운 사상의 출현했으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요구로서 나타나게 되고 그 요구는 법제화됨으로써 구체화된다(헤겔). 그것이 법제화되지 않고 하나의 사상으로 남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관념이고 역사적 회상이나 미래적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희년운동을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실현 이전의 운동으로서 그것이 우리 삶 가운데 구체화되어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제화를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희년법에 나타난 내용들을 향해서 그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구체화되도록 법으로 제정하고 모든 국민이 지킬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맞이하는 축복을 얻게 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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