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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08 07:25
기독교사회윤리학적 관점에서 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글쓴이 : 손규태

 

들어가면서

필자는 한국신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부터 안병무박사와 같이 일하다가 그 분의 주선으로1975년 말 좀 늦은 나이에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을 하게 되었다. 독일 교회에서 가족들의 생활도 부담한다고 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와중에서 별로 활동도 하지 못했는데 정보부의 신원조회가 떨어지지 않아서 여권을 받는데 1년 반 동안이나 기다렸었다. 당시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총무로 일하던 아내는 인권운동을 하면서 고통당하던 이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았는데 여권을 받지 못해서 같이 독일로 떠나지 못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필자는 11월 말에 홀로 독일로 떠났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 다음 해 서울에서 열린 한독교회협의회에 참석했던 독일 대표단이 박정희 대통령을 청와대로 예방하면서 아내를 위해서 제출했던 탄원서가 효과를 발휘해서 1년 후에 독일로 와서 가족이 합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서 우리 가족은 막대한 정신적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독일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 크게 불편을 느꼈던 것은 저녁 7시경이면 모든 상점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것이었다. 그 시간을 놓치면 물건을 살 수가 없었다. 독일에는 폐점시간 규정법(Ladenschlussgesetz)이라는 것이 있어서 일정한 시간에 모든 상점들이 장사를 시작하고 또 장사를 마감해야 하는 것이다. 적은 구멍가게 같은 상점 주인들도 공무원들이나 회사원들처럼 저녁 7시경이면 문을 닫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물건 몇 개를 더 팔려고 밤 12시경까지 상점 문을 열어놓고 가끔씩 나타나는 손님을 기다리며 졸고 앉아 있던 동네 가게주인 아주머니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떠올리면 독일의 이 제도는 매우 인간적이었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웠었다.

그 후 필자는 1980년대 초에 미국에서 열리는 기독학자회의 세미나에 강사로 초청받아 시카고에 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워싱턴에 들려서 친지들과 즐거운 재회를 했다. 거기서 우연히 독일에 광부로 왔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상점을 하는 사람의 초청으로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세븐 을레븐(Seven-Eleven)이라고 하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침 일곱 시에 상점 문을 열고 밤 열한 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락되어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상점을 열고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밤 11시게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 오면 12시가 되고 씻고 잠자리에 들면 12시 반이나 1시가 되고 다시 상점에 나가려면 늦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잠잘 시간이 없어서 낮에 손님이 없을 때는 거의 졸다시피 하고, 또 피곤이 겹쳐서 상점 안 물건들 사이를 걸어 다닐 때는 여기저기 몸을 부딪치고 자주 넘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요일도 없이 매일 그런 생활을 하다보니 돈을 벌지만 돈을 쓸 시간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무제약적 자유가 허락된 나라인데 사람들은 그 자유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고 있고, 독일은 법으로 자유를 통제함으로써 공동체성을 구성함으로써 보다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을 필자는 발견했다. 역사에서 인류가 힘들여 싸우며 추구해왔던 자유라는 고귀한 가치가 오늘날 미국과 같은 그것이 무한정 허락된 나라에서는 인간들을 노예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유의 양면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장차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가르칠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이른바 오늘날 미국이 주축이 되어서 추구하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어떤 의미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그리스도교 윤리학을 가르치는 신학자로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쟁점들

한국은 지금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의 삶 특히 경제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문제인 이른바 한미자유무역협정(US-Korea Free Trade Agreement)을 체결하고 국회의 비준을 받아 대통령이 서명하고 이제는 미국과 그 발효일자의 합의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원래 노무현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이미 미국과 합의했다. 이 때도 이 자유무역협정체결을 놓고 여야는 물론 정부 안에서조차 의견이 나뉘었었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찬반논쟁이 심했었다. 왜냐하면 이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무역상대국인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나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그 반대로 한국과 같은 후진국이나 경제력이 약한 나라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이란 사실상 헤비급선수와 플라이급 선수가 체급을 무시하고 권투시합을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협정을 체결하는 개개 나라 안에서도 불리한 집단과 유리한 집단이 생기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자동차나 반도체 등 수출품목들을 주로 생산하는 거대기업들에게는 관세를 철폐하는 자유무역협정은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농업분야나 중소기업과 같은 별로 수출품목들을 생산하지 못하는 기업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한미자유협정은 수출을 위주로 하는 대기업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약이지만 중소기업들이나 농어민들이나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은 1995년 WTO 체제출범이후 구체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발전과정에서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추동하는 제도로서 오늘날 선진국들의 자본주의 체제의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미자유무역을 체결한 당시 미국의 부시 정부는 민주당의 반대로 더 이상 그것을 추진하지 못했다. 그 후에 들어선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은 특히 자동차 분야 등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체결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의회에서 비준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한국 정부에게 재협상을 요구했었다. 이명박정부와의 재협상을 통해서 미국에 유리한 조건이 성립되자 비로소 미국의회는 이 협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나서 미국은 다양한 수단들을 총동원해서 한국정부와 한나라 등을 압박하여 의회통과를 촉구했다. 그들은 이명박대통령을 미국에 초청하여 의회에서 연설하는 기회도 주고 45회의 기립박수로 호의를 보임으로써 자유무역협정의 조속한 한국의회 통과를 추동했던 것이다. 그 후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미국과의 재협상을 포기한채 야당들은 물론 시민단체들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날치기 수법까지 써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과시켰다.

친기업적이며 동시에 친부유층 정책을 써온 한국의 이명박정부에게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은 그들에게는 매우 유리한 정책적 목표이자 수단이며 그것을 통해서 수출대기업들에게 자본증대와 투자의 유리한 조건들을 만들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들에게는 거대 자본들과 기업들의 자본증대와 자본투자는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더 많은 수출효과들(매년 5천 내지 6천억)을 거둘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들의 밥상에 더 많은 음식들이 차려지면 더 많은 부스러기들이 떨어지고 가난한 나사로는 더 많은 부스러기들을 얻어먹게 된다는 것이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의 수단이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6장 20-21).

그런데 야당들과 반대자들이 이 협정을 강력하게 반대한 것은 그 안에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 독소조항들이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 가운데는 1. 자유무역상대국의 공공정책의 침해가능성 2. 분쟁해결절차의 편파판정 가능성, 3. 사법주권의 훼손 등을 들 수 있다.

첫째 공공정책의 침해가능성의 예로서는 미국의 영리병원기업인 Centurion의 캐나다 정부에 대한 소송제기와 멕시코의 메탈클래드 사건 등을 들고 있다. 특히 메탈클래드사건은 멕시코 정부가 미국 투자자에게 쓰레기 매립장 사업을 허가해주고는 후에 그 곳을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함으로써 투자가치를 박탈해버렸다는 이류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둘째 분쟁해결절차의 편파성의 문제는 국제투자분쟁(ISD)의 중재자가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는 세계은행 산하 기관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이뤄져서 공정성을 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투자분쟁해결센터의 중재재판의 구성은 분쟁 당사국이 각각 1명씩을 지정하고 나머지 한명은 양측이 합의해서 지명한다. 합의가 안 되는 경우 사무총장에게 임명권을 주는데 여기서 미국이 개입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셋째 사법주권의 훼손가능성의 문제는 법원의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국제투자분쟁의 대상이 되면서 한국의 사법주권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이나 지방법이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제약을 받지 않지만 한국의 경우 자유무역협정이 국내법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여기에 대해서는 현역 판사들까지 집단적으로 나서서 비판하면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그것의 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넷째 의료서비스 문제인데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로 병원의 민영화, 건강보험료와 의료비의 상승, 의약품시판허가 특허 연계제도 도입으로 약값 상승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의료공공 서비스가 약화되거나 무너지고 저소득층의 의료서비스에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다섯째 지적재산권 문제로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지적 재산권보호가 강화되어 인터넷 활동이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허가 없이 저작물을 퍼가는 사이트는 폐쇄되고 처벌이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체제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성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1520년 11월에 쓴 종교개혁 문서들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에서 자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내적 인간에 따르면 즉 신앙 안에서) 모든 것에 대해서 자유로운 주인이며 따라서 누구에게도 굴복당하지 않으며, 또 그리스도인은 (외적 인간에 따르면 즉 행동에서는) 모든 것의 충실한 종이며 누구에게나 예속된다.” 이 개념의 사회정치적 의미영역은 주인과 종의 존재를 자명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으며 봉건사회에서는 주인과 종의 상하관계는 명백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설파했었다. “주인이 존재하면 종이 존재하고 종이 존재하면 주인이 존재한다.” 루터의 주인과 종의 개념은 이렇게 봉건 사회적 사고방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일까?

사회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개념이 부르주아적 자유개념의 구성과 특별히 부르주아적 권위형성의 기초를 놓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자유를 인간의 내면 영역에 배속시키는 것은 그리고 외적 인간을 세상의 정치적 권력에 예속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한다. 그리고 세상적 권위들의 체제를 사적 자율성과 이성을 통해서 초월시키는 것, 이중적 도덕을 가지고 인격과 행위를 갈라놓는 것, 실재하는 부자유와 불평등을 내적 자유와 평등의 결과로서 정당화 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상 루터는 중세적 인간이며 봉건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봉건영주들의 지원을 받아서 종교개혁을 수행해 나간 것도 사실이어서 그의 사상세계는 어느 면에서는 부르주아적 자유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 훨씬 이전 사람으로서 바울의 인간학적 모티브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주인과 종으로 규정할 때는 전혀 다른 차원 즉 그리스도인은 주인인 동시에 종이라는 변증법적 상관관계의 차원에서 말하고 있다. 이 문장에서 마르틴 루터는 자유와 섬김이라는 개념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내용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타자로부터(von anderen) 자유와 해방을 전제로 하지만 동시에 타자들에 대한(für) 봉사라고 하는 양면성을 갖는다는 것을 그는 밝혀주고 있다. 따라서 자유는 이기적으로 제멋대로 사용하면 방종이 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인간들의 공동체성을 해치지만 동시에 그것이 이타적으로 사용하면 타인에 대한 봉사와 더불어 공동체성을 함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터에게서 자유는 섬김 없이 사용될 수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자유는 공공성의 테두리 안에서 사용될 때만 그 본래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도 자유라는 개념도 사적 성격이 아니라 공적 성격의 범주 안에서 다루어져야 할 초월적 원리고 보았다. 그는 모든 초월적 개념들 예를 들면 자유나 평등과 같은 개념들이 공공성의 테두리 안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을 다음과 같이 논한다.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관련된 행위들, 공공성과 합치되지 않는 것들의 모든 원리(자유건 정의건)는 부당하다.”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와 같은 인간의 초월적 원리들은 어떤 사적인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이라는 공적 범주 안에서 논의 되어야 한다. 그래서 칸트는 또 이렇게 설파했다. “왜냐하면 그런 원리들이 단지 공공성에 의해서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대중의 보편적 목적(풍족한 행복)에 합치되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대중을 자기들의 처지에서 만족하게 만드는) 정치의 본래의 과제와도 일치한다.”

마치는 글

이렇게 볼 때 루터가 그의 신학적 진술에서 자유개념을 섬김의 개념과 연관성에서 다룬 것은 마르쿠제가 말하는 부르주아적이고 개인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칸트의 공공성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아진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체제에서 추구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들은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적 세계관들을 관철하고자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반 공동체적 목표들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과 체결하고자 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다음 몇 가지 점들을 고려하여 다시 논의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이른바 자본주의적 자유경제체제를 기초로 한 “미국의 세기”(American Century)는 2010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더불어 그 종말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왔으나 미국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전쟁들을 수행하고 있다. 60년대 월남전쟁, 그 후에 두 번에 걸친 이라크 전쟁, 그리고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이란과 북한을 위협하면서 다시금 전쟁할 국가들을 찾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자유주의를 찬양하며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이식한 나라들에서는 (군사)독재체제가 지배했었고 그 자유주의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무고하게 죽어갔었다.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통치했던 군사독재자들은 모두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이었고 미국의 정치적 지원을 받아서 정권을 잡고 유지했었다.

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한 나라들에서는 예외 없이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다.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따른 제3세계의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억압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정책으로 인해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그들은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다. 이렇게 하여 부유한 자들은 부를 더 축적하기 위해서 타락하고 가난한 자들은 그들을 적대시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늘 정치적 불안이 지배하고 있다. 미국 안에서도 1%의 가진 자들은 자유와 부를 누리지만 99%의 사회적 약자들은 빈곤의 노예가 되었다. 따라서 1995년 세계무역기구 창설이후 미국은 전 세계의 시장들의 문을 열어젖히고 자유무역협정체결이라는 수단을 써서 경제적으로 지배함으로써 미국이 처한 경제적 딜레마를 과거의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따라서 빈곤한 나라들에서 가난한 자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일을 미국은 그만 두어야 한다.

3. 미국은 1930년대 이전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임했던 세계의 카우보이의 역할을 그만두거나 약소국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실시했던 Marshall Plan 즉 재건원조를 다시 시작함으로써 미국의 경제도 살리고 실업자들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독일과 같이 제조업에 집중함으로써 월가의 금융자본의 횡포에서 국민들을 구출하여 거품 낀 경제를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수익을 능가함으로써 경제적 약자들에게 부렸던 횡포들을 이제 그만 두고 제조업에 진력함으로써 국민들의 경제적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4.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은 앞서 지적한바와 같이 다수의 독소조항들을 담고 있다. 이런 독소조항들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그것들의 실체를 국민들이 바르게 이해할 때까지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 발효일자를 늦추고 미국과 재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이명박정부가 재협상의 의지가 없다면 그 문제를 다음 정권에게 미루어 놓아야 한다. 미국도 그 문제를 부시정권에서 오바마 정부로 넘기지 않았든가. 왜냐하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특정집단의 이해관계가 달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 전체와 미래 세대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칠 중차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5. 우리는 차제에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마지해서 우리가 추구해온 정치적 경제적 체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해 왔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없고 노년들에게는 사회적 보장이 없는 불안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세상에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유시장 경제체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는 국민들의 삶을 더욱 한전하게 보장해 주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나 스웨덴의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도 존재한다. 오늘날 미국식의 자유주의적 정치 및 경제체제가 그 뿌리로부터 흔들리는 반면에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나 스웨덴의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는 비교적 흔들림 없이 지내오고 있다.

이들 나라들에서는 많이 버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서 국가의 재정을 튼튼히 하고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들을 잘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월가의 금융업과 같은 거품경제를 추구하지 않고 제조업에 집중함으로써 실업자를 없애고 빈부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추구하는 무제약적 자유 대신 공동체주의를 도입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공공성을 강화하여 사회적 평화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루터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봉사하는 자유를 실천함으로써 정치와 도덕이 일치하는 복된 사회 즉 복지국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절제된 자유는 더욱 좋은 것이다. 절제된 자유가 사람들에게 참된 자유를 허락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내적 인간에 따르면 즉 신앙 안에서) 모든 것에 대해서 자유로운 주인이며 따라서 누구에게도 굴복당하지 않으며, 또 그리스도인은 (외적 인간에 따르면 즉 행동에서는) 모든 것의 충실한 종이며 누구에게나 예속된다.”(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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