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8)

5. 우리말 성서

로쓰 목사에게는 조선의 복음화가 지상명령이었다.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그 나라 말로 되어있는 성서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가 갖고 있는 성서는 영어와 그것을 번역한 한문 성경뿐이었다. 그는 조선의 북쪽 국경선 너머 청나라의 우장과 고려문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던 중 뜻있는 조선 청년들을 만나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성서 번역도 시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상륜]이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서상륜 자신은 자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나타난 그의 진술은 그 당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알기 어렵지만 남의 나라 말이 아님으로 차근차근 풀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괄호 안은 저자가 주를 단 것이다.

“일년젼에 마근태(매킨타이어) 목사가 객뎜(客店)에셔 죽을 인생을 그 갓치 구원하여 내셧기로 내가 아모리 무인정(無人情)하고 뮤념치(無廉恥)한 놈이라도 그때에 그 애쓴 은공과 약식갑(약값과 식비) 걱졍으로 말한즉 마근태 목사가 말삼하시기를 네 생각은 됴흔(좋은) 마음이나 재물이 업사니 할 수 업거니와 네가 진실로 고마온 마음이 나거든 하나님께 감샤하고 그 말삼대로 예수씨를 밋으면(믿으면) 이에셔 더 깃븜이 업겟다 하시더니 지금 로쓰 목사가 또 이갓치 참 사랑으로 권하시니 예수씨를 맛난 사람은 참 하날 나라(하늘나라) 백셩이로다. 이갓치 생각할 때에 내 마암이 감동하야고맙고 반가온 마암이 니러나거날(일어나거늘) 이에 로쓰 목사를 차져보고 내 마암이 반가옴과 이젼 불의를 행한 거시 매우 붓그럽고 절통하야 뉘웃난(뉘우치는) 말을 하니 로쓰 목사가 묵묵히 듯다가 갈아대 그려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샹관이(관계가) 매우 즁한지라 그리스도씨 압희(앞에) 나아와 그 명하신 대로 슌복(順服)하는 거시 맛당하다하고 이에 셰례를 베풀매 내가 쥬의 무리가(백성이) 되엿나이다.” 

서상륜의 합세는 로쓰 성서 번역 팀에 큰 활력이 되었다. 물론 그보다 먼저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이응찬 등이 로쓰 목사를 도와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납 활자를 나열하는 식자는 중국인들이 일했으나 그들은 우리말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식자공(植字工) 김청송(金靑松)이 동참하여 작업을 하였다. 김청송에 관하여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만주의 서쪽 지방을 서간도라고 하였는데 로쓰 목사의 선교활동으로 이미 그 지방에 결신자가 있었다. 그 교인들 중에 대표격인 인물이 김청송(金靑松)이다. 
 
 

 
 

서상륜은 다른 청년들에 비하여 가장 나이가 아래였으나 한학이 뛰어나고 특히 붓글씨체가 정통기법이어서 성서를 활자화 하는 과정에서 도장을 파는 것처럼 목각할 때에 그가 글씨체를 담당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목판을 일본으로 보내서 사만 개의 납 활자를 제작하는 거대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납 활자는 우장을 거쳐 심양으로 으로 옮겨졌고, 인쇄기도 상하이에서 구입하여 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1882년 3월 24일에 드디어 [예수 셩교 누가 복음전셔], 같은 해 5월 12일에 [예수 셩교 요안내 복음젼셔]가 [쪽복음]-심양 문광서원 발행-으로 각 3,000부씩 출판되었다. 그리고 1887년에 신약을 완역한 [예수셩경젼셔]까지 완간을 보게 된 것이다.

서상륜은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다. 그는 이 쪽복음 보따리를 싸 들고 먼저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 동북지방을 다니며, 전도하고 성서를 권했다. 그러다가 결국 조국과 동포를 위하여 선교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로쓰 목사와 상의하였다. 로쓰는 그의 이 모든 일이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그에게 권서(勸書)로써 전도하게 하였다. 권서란 오늘날의 교회에는 없는 제도로써 조선 기독교 초기에 전도대상자에게 성서를 권하며 예수를 전하는 직책이 있었다. 로쓰 목사 부부와 서상륜 세 사람은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제 이 형제가 예수를 모르는 그의 조국 조선으로 들어가서 전도하고 성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그의 앞길을 성령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조선 사람들의 영혼이 눈을 뜨고 깨어나서 주님을 만나 뵙게 되고, 성서를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형제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땅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를 모든 어려움에서 지켜 주시고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합심하여 기도를 드린 서상륜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무어라 표현할 구 없는 감동과 용기가 샘솟았다. 그리하여 그는 조국 전도의 장도를 떠나게 되었다. 우선 그는 자신을 약종상으로 꾸미고 얼마의 인삼과 비단을 꾸리고 그 안에 영어와 한문 성경 그리고 그들이 번역한 쪽복음 100여권을 감추어 챙겼다. 그리고 그 짐을 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당시에는 중국 청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에는 관문마다 세관이 설치되어 있어서 양국의 금수품을 검색하고 있었다. 서상륜이 거쳐야 할 관문은 고려문이었다. 그곳에는 청나라와 우리나라 관리가 합동으로 출입자를 감시하였다. 서상륜은 그들의 검색을 당하게 되었다.
“무슨 일로 가는 길이요?”

“저는 약종상입니다. 이와 같이 인삼과 비단을 교역합니다.”
“어디 내부를 좀 봅시다. 아니 이 책은 나라에서 금하는 야소교 문서가 아닌가! 여봐라. 이놈을 당장 묶어서 저 뇌옥에 가두고 짐은 관고에 넣어 두어라. 내일 조사하고 처리할 것이로다.”
 
이들의 명을 받은 관노들이 나와서 서상륜을 묶어서 데리고 갔다. 그 당시까지도 우리나라는 야소교를 천주교인과 함께 능지처참(陵遲處斬)까지 하였던 것이다. 잡혀가는 상륜은 어쩐지 두려움이 없었다. 전에 목사님들께 배우기로는 로마라는 나라에서 예수를 믿거나 전하다가 체포되어 혹독하고 처참한 고문과 희생을 당한 역사를 많이 들었다. 그러한 순교의 터전 위에 교회가 설립되고 만백성이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가 옥에 갇힌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누구인가 밖에서 찾는 소리가 들렸다.

“서방님, 서방님, 일어나유.”
“누구신가요?”
“저 김효순이에유. 전에 서방님 집에 종으로 있었시유.”
“아니, 자네가 어떻게?”
“긴 말씸을 디릴 수 없구유. 그냥 쇤네를 따라와유.”
쇤네란 말은 옛날 종들이 [소인]이라는 표현으로 쓰던 속어이다. 상륜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를 따라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또 한 사람이 말 두 마리를 붙잡고 서 있었다가 어두움 속에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이구 서방님, 놀래셨지유? 지는 김천년이에유.”
“아이구 이 사람들아 어찌된 일인구? 이것 마치 저승에서 부처님 만난 격이구만.”
김효순이라는 관노가 말한다.
“예, 긴 말은 할 수 없구유. 여기 말이 두 필 있는디유. 저 사람과 함께 타구 도망가시유.  여기서 잡힌 야소교인들은 다 의주로 가서 죽여버려유. 어제 쇤네들이 서방님 잽혀오는 것을 보구 둘이 의논해서 서방님 도망 보내구 우리들두 멀리 떠나자구 했시유. 쇤네들은 전에 서방님 댁 어른들에게 큰 은혜를 입은 놈들이래유.”
 
그렇다. 김효순(金孝淳) 김천년(金天蓮) 이 두 사람은 서상륜 집안이 부유하게 지낼 때에 가노(家奴)들이었다. 서상륜의 부모가 죽고 가세가 기울고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되자 모두 다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절대절명의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은 어떠한 조화인가! 이 상황에서 서상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보게, 내 짐 중에서 다른 것은 다포기하더라도 그 성서만은 찾아야 하겠네. 자네들이 수고를 해 줄 수 없겠나?”
“아이구, 서방님 무신 말씸이에유. 조금 있으면 날이 밝아 오는디 언지 그럴 시간이 있시유!”
“아니, 그러면 나는 나가지 않겠네. 그 성서는 나의 생명만큼이나 귀중한 것들일세.”
  효순은 할 수 없이 압수품 창고를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돌아왔다.
“서방님, 이것을 꺼내는디 창고직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요만큼 밖에는 못 가져왔구만유.”
 
그의 손에는 10여권의 쪽복음 만이 들려 있었다. 다급해진 상륜은 우선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받아 챙겼다. 상륜은 김효순과 만나자 이별을 하고 김천년과 함께 그 관문을 탈출하였다. 상식적으로는 이렇게 위기를 벗어났으면 우선 안전한 로쓰 목사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초지일관 사명감에 투철한 상륜은 여전히 남쪽 고향 땅을 향하려 하는 것이었다. 가노는 질겁하여 그를 말렸다. 그러나 상륜의 집념은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의주 방향 지리를 잘 아는 가노의 안내로 10년 만에 무사히 고향 마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동생 서경조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상륜은 고향 집에 머물면서 당장 다음 날부터 동생을 위시 친척과 친지들에게 야소를 전하기 시작했다. 동생 경조는 전부터 야소교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으나 형을 통하여 바른 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성서를 보고 반가워하며 읽기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의주의 사정에 밝은 동생 경조는 의주 부윤(오늘날의 시장)이 이미 서상륜이 야소교의 문서를 갖고 들어와서 전교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배령을 내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급히 형에게 권하였다.

“형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얼마 아니하여 형님을 잡으려고 나졸들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아, 그런가. 그러나 동생, 잘 듣게. 이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기일세. 나는 일단 우리의 당숙이 있다고 하는 저 황해도 소래에 가까운 봉대로 가겠네. 자네도 집안을 정리하여 그곳으로 오게. 우리는 영생의 주 야소와 함께 새 하늘, 새 땅을 이루어 보세.”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치 민들레 꽃씨가 날려서, 연고가 먼 어느 터에 이르러 새 생명을 시작하는 것처럼 서상륜을 통한 복음의 씨앗이 성령의 바람을 타고 날라가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한 마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글: 박종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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