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9)

마. 소래교회의 설립

1. 소래 마을에 복음이
 
의주에서의 체포령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게 된 서상륜, 서경조 형제는 그들의 당숙이 살고 있는 남쪽 지방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로 남하하게 되었다. 그들의 당숙은 아마 옛날 해적의 침입로에 세운 봉화대가 있었는데 그 근처에 살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서씨의 후손들은 그를 봉대(烽臺)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우선 그곳에서 초가삼간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차츰 상황을 살펴보니 그 곳은 야소교에 대한 관의 감시가 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차츰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성경을 나누며 기독교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영향력은 봉대 마을과 송천리로 확장되었다. 송천리는 솔샘(松泉), 또는 솔내(松川) 등으로 혼용되었는데, 지역민들은 [소래]라고 쉽게 발음하였다.
 
서씨 형제는 1885년 5월 16일에 우선 자기 집에 신자들을 모이게 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7,8명 정도의 인척들이 모였다. 서상륜은 로쓰 목사에게 서양 학문을 배울 때에 아침마다 기도회를 드렸고, 주일이면 정식 예배를 드리기를 여러 해 훈련 받은 대로 여기서도 예배를 드렸다.  

 

서씨 형제가 소래로 드나들며, 그 지역은 이미 광산김씨 김판서와 그의 아들 김좌수 집안이 마을의 어른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당골]이라는 곳에 서낭당과 무당 집이 있어 우매한 백성들을 미신으로 혹세무민하는 악습이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큰 굿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는 곳에 서씨 형제가 지나다가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덩덩 덩더쿵 덩덩 덩더쿵
  칭 칭 칭나칭 칭 칭칭나칭

당산에서 굿거리가 한창이었다. 그 옛날 구경거리라고는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서 굿판이 벌어지니 그나마 볼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경을 한다. 큰 무당, 작은 무당이 어울려서 북을 치고 꽹과리를 두드리며 춤을 추고 있다.

  예_____잇 물러가라.
  예_____잇 물러가라.
  영험하고 영험하신 최영장군이 임하셨느니라.
  이서방네 염병 귀신 써억 써억 물러가라.
  어린 딸의 가슴알이 깨-끗하게 사라져라.
  어허-- 무얼 하는고? 장군님이 기다리신다.
  쌀 서 말 얼른 지고 제단 앞에 바치지 않고
  무얼 하는고--?

  그러자 옆에서 두 손을 싹싹 빌고 있던 아낙네가 황급하게 남편을 윽박질렀다.
“아 무얼 하는 게유? 빨리 가서 쌀 서 말 지고 오라시잖어유.”
“우리가 쌀 서 말이 어디 있어?”

  어허--- 이놈들 말이 많다. 장군님 노하시면 그 양화를 어찌 하랴--?“

그들 부부는 두려워 떨며 마을로 돌아가서 어떻게 했는지 쌀 서 말을 구해가지고 올라왔다. 이 광경을 보던 서씨 형제의 가슴에는 분노가 치솟았다. 순진한 민초를, 그리고 가난에 찌들은 농민들을 저런 식으로 착취하다니! 그리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모르는 무리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무리를 헤치고 그들 앞으로 가까이 파고들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주여 어리석은 무리들의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자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그런데 갑자기 큰 무당이 횡설수설하며 주저앉는 것이었다.
“어허-- 큰 귀신이 들어오네. 이를 어찌한다? 어찌한다?”
 
그러더니 주섬주섬 쌀 서 말을 챙겨 넣고 슬금슬금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모여든 사람들도 흥이 깨지면서 흩어지려고 하였다. 그러자 서상륜은 그들 앞에 나서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여러분, 저는 하나님을 믿는 야소교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과 우리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신(神) 저 신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참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십니다. 이것은 성경이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바로 인도하시려는 귀한 뜻이 이 책 가운데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내일은 주일입니다. 저 아래 있는 저희 집으로 오셔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마을 사람들은 혹은 고개를 끄덕이고, 혹은 의심하면서 흩어져 돌아가는 것이었다. 저녁때였다. 몇 사람이 이들 형제 앞으로 와서 말한다. 그런데 그 박수 무당들은 자기들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게 되자 다른 지방의 영험하다는 큰 무당의 응원을 청하였다. 한 떼의 박수 부당들이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나름대로의 큰 굿을 벌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큰무당이 벌러덩 넘어지며 입에 거품을 물고 버둥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들 무리는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이 마을의 무당도 별 수 없이 짐을 싸들고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 유지들이 서씨 형제를 찾아왔다. 

“선생님, 이 마을 김좌수 댁 어른께서 만나 뵙자고 하십니다.”
“아, 예 그러지요. 당연히 찾아가 뵈어야지요.”
 
이 마을의 개척자 김판서라는 분의 아들, 제 일대 김성섬이 바로 김좌수이고 이로써 이 집안을 [좌수댁]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김성섬의 아들 제 2대 김윤방이 그 집안의 장남이요, 가장이었다. 상륜 형제는 곧 그 집으로 찾아갔다. 김윤방은 그들은 안방으로 반가이 맞아들여 차와 다과를 대접하며 말하였다.

“선생님들의 선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희 할아버님께서 이 마을을 개척하시고 백성들이 다른 지방보다 더 마음 놓고 잘 살도록 보살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는 서당이 없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이 곳 젊은이들을 잘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저희들은 아직 미숙하고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선교사인 목사님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서구 사회는 기독교를 받아드린 후에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격이 존중되며 인간 생활과 사회 구조가 과학적이어서 사람들이 살기에 참으로 편리하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그 기독교를 받아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면 모든 백성들이 복 받고 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손들이 대대로 마음으로나 몸으로 복 받고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아 참으로 반가운 말씀입니다. 제가 어두움 속에서 밝은 빛을 보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을 선생님들에게 맡겨드릴 터이니 이 마을에서 그 교회라는 것을 세우고 우리를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좌장 김윤방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이제부터 나와 우리 집안은 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서 야소를 믿고 기독교인이 되겠소.”
 
이 선언은 곧 이 마을 전체의 삶의 방향의 결정이었다. 이렇게 되니 원래 이마을 토박이 이던 무장김씨 일족도 야소를 믿기로 결단하는 것이었다. 서상륜 형제는 용기가 치솟아 교회 확장 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들의 영혼의 눈에는 성령께서 그들을 이끌어 주시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날마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
 
처음 서경조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으나 교인들이 차츰 늘어가서 80여명에 이르니 장소가 좁아서 어렵게 되었다. 어느 날 서경조는 예배 후에 교인들을 모이게 하여 교회 증축에 관한 회의를 열었다. 먼저 좌장인 김윤방이 건축비의 큰 몫을 담당하였다. 일반 교인들도 뒷산인 불타산의 울창한 원시림으로 가서 좋은 재목을 베어오기도 하고, 아낙네들은 열심히 음식을 마련하여 일꾼들에게 보급하였다. 교회는 무당들이 쫓겨 간 당골 위에 세웠다.
 
기독교는 서양 선교사들에 의하여 전래되었고, 당연히 교회도 선교사들의 주도로 건립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소래교회는 온전히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힘과 노력으로 지어졌다. 훗날 한양의 언더우드가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선교부에서 이 교회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서상륜 형제는 그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것은 반감이 아니고 순전한 독립의지의 선의였다.

“아닙니다. 목사님, 감사하지만 이 교회는 우리 민족의 힘으로 세워졌으니 우리 민족의 힘으로 운영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언더우드는 교회 정원을 밝히는 양쪽 기둥의 전등만을 기념품으로 선사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글: 박종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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