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도가니 열풍, 정의 세우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

영화 ‘도가니’ 열풍이다. 광주 인화학교 장애학생 성폭력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공지영 씨의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장애학생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권력과 반인륜적 죄를 범하고도 면죄부를 받은 황당한 법원 판결에 공분했다. 이에 시민들은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고, 4일 만에 서명인은 5만 명을 넘어섰다. 경찰은 영화 개봉 7일 만에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정치권도 도가니 열풍에 가세했다. 지난 달 28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대정부질문 대책회의에서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련 법규 정비가 시급하다”며 관련 법 정비를 피력했다. 민주당은 아예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로 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최고 위원회의에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차별과 억압을 받지 않게 할 의무가 있다”면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추진 의사를 밝혔다.
 
유력 일간지를 비롯한 인터넷 언론매체, 방송 3사 등 국내 언론들은 매일 같이 도가니 열풍을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다. 성폭력을 행한 광주 인화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이들을 재심하여 강력히 응징하여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등이 주 내용이다.
 
국민들과 정치인, 언론인들의 말대로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것이어야 한다. 피해 학생들의 심리상담 결과를 보면 방어적 경향과 자아에 대한 불안정성이 짙다. 이러한 정신적 상흔 때문에 취직도,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 한다. 지난 8월 모 방송사에서 주최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도가니 예고편을 본 한 피해 여학생은 “주인공이 나 같다”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사건 발생 후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공포에 떨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다시 웃게 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환자부터 치료하는 것이 상식이다. 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피해 장애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홀더공동체 김혜옥 원장의 말처럼 이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취업을 보장해줘도 좋고, 복지단체에 운영 예산을 지원해줘도 좋다. 어떤 방법이든 아이들이 과거의 기억을 떨쳐 버리고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이 사회에 정의를 세우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대하다.

한국교회 역시 교회 밖에서 터진 일이라고 나몰라라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피해 장애우들을, 아니 더 나아가 같은 처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일에 장애인 권익 확보를 위한 인권단체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연대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교회의 기능적 측면을 놓고 볼때 케리그마(말씀)와 코이노니아(교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디아코니아(섬김)이기에 더욱 그렇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상처입은 약자들을 치료하고, 싸매주는 돌봄 사역에서 비롯된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