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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칼럼] 역사는 희생을 요구 한다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불의한 폭력이다. 다수가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다. 모든 생명과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 하는 주체를 가졌다. 서로 주체이고 저마다 주체인데 누가 누구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 저답게 사는 것이 생의 큰 원칙이다.

그런데 저마다 저를 위해 살면 서로 이해관계가 어긋나고 충돌한다. 서로 이해관계가 어긋나고 충돌하면 서로 잘 살 수 있는 옳은 길은 사라지고 이기적이고 당파적인 주장과 목소리만 커진다. 서로 저와 제 집단만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면 제 욕심과 주장에 눈이 멀어 옳은 길을 볼 수 없고 옳은 길로 갈 수 없다.

그럴 때 전체의 자리에서 선의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옳은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심 없이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눈에는 옳은 길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심 없이 전체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개인이나 집단의 사사로운 욕심이나 주장을 버린 사람이다.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지 않고는 전체의 자리에서 선의를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전체의 자리에서 말한다고 해도 당파적인 이해관계와 주장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서로 싸우는 당사자들이 자기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갈등과 다툼에서 벗어나 전체가 사는 길로 갈 수 없다. 당파의 관점에서 전체의 관점으로 옮겨 가려면 버리고 희생하는 게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희생은 자연만물과 생명세계와 역사의 근본법칙이다. 모든 물질은 자신을 불태워서 힘과 빛을 낸다. 자기를 태우는 것이 희생이다. 생명세계는 서로 먹이가 됨으로써 서로 살린다. 모든 생명체는 먹이를 먹고 그것을 불태워서 나오는 힘과 열로 산다. 사람도 몸의 욕심과 사나운 감정과 편견을 불살라야 지성이 맑아지고 영성이 깊어진다.

부모의 희생 없이 자식이 옳게 자랄 수 없고 의인의 희생 없이 역사가 진보할 수 없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역사에서 희생의 원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새 나라를 향해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르도록 아들을 낳지 못했다. 100세 때 겨우 아들을 하나 얻었다. 외아들이 소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브라함이 외로운 침묵 속에서 외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외아들 대신으로 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새 나라를 향한 역사의 길에서 외아들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역사의 전진을 이룰 수 없음을 말해준다. 세상에서 외아들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목숨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소중한 외아들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 없으면 새 역사는 오지 않는다. 오늘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도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역사가 그만큼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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