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병학] 유대 묵시문학과 신약성서: 에녹과 예수(2)

이병학·한신대 신약학 교수

II.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의 메시아론

1.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의 도래에 대한 희망

▲한신대 이병학 교수(한국신약회장)

폭력의 역사를 심판하고 끝장낼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에 대한 억눌린 약자들의 희망이 비유들의 책에 표출되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는 상이한 호칭들을 가진 네 가지 형태의 메시아적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의인(38:2,3; 53:6), 택한 자(39:6; 40;5; 45: 3, 4; 49:2, 4; 51:3, 5; 52:6, 9;55:4; 61:5, 8, 10; 62:1), 인자(46:2, 3, 4; 48,2; 62,5, 7, 9, 14; 63:11; 69:26, 27, 29; 70:1; 71:14, 17), 그리고 메시아(48:10; 52:4). 그러나 이러한 네 메시아적 인물들 사이에는 연대기적 발전이 없으며, 기능적인 측면에서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이러한 네 인물들은 각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과 고난당하는 약자들과 연대하고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메시아적 인물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로가 아니라, 항상 하늘에 있는 의인들과 성인들과 택한 자들의 공동체와 더불어 존재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는 희생자들과 약자들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이고, 현재 감추어져 있고(48:6; 62:7), 그리고 마침내 종말의 날에 심판의 권세를 가진 왕으로 세워질 것이다(61:8). 이러한 맥락에서 메시아적 인물의 선재적, 현재적, 그리고 종말론적 차원이 인식될 수 있다. 
 
왜 비유들의 책의 저자는 이처럼 상이한 네 인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를 나타내는가?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이러한 네 인물들은 하나님의 적으로서 네 부류의 사회적 계층들과 대립관계에 있다. 그들은 땅의 왕들, 권력자들, 고급 관리들, 그리고 대지주들이다(참조, 62:3, 12: 63:1). 이러한 네 사회적 계층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억압하고 학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적들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비유의 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네 메시아적 인물들이 이러한 네 부류의 사회적 계층들과 도식적으로 대칭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이한 네 가지 유형의 메시아적 인물들의 상호 관계는 무엇인가? 약자들과 희생자들의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그러한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과 기능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 네 가지 유형의 메시아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문맥을 약자들과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비유들의 책의 메시아적 인물들의 네 가지 유형과 기능

(1) 의인

의인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를 지칭한다. 의인은 38:1-6에서  “성인들, 의인들 그리고 택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대리자로 묘사되고 있다:

“첫째 비유의 책. 만약 의인들의 공동체가 나타난다면, 죄인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은 땅의 표면 위에서 추방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의인이 의인들, 즉 택한 자들의 면전에 나타날 때, 그들의 행동은 영혼들의 주님(=하나님)에 의해서 무게를 달게 된다. 그는 의인들과 택한 자들에게 빛을 비출 것이다. 그러면 어디가 죄인들의 처소가 될 것이며, 그리고 어디가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을 부인한 자들의 처소가 될 것인가? 그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 의인의 비밀들이 계시될 때 그는 죄인들을 심판할 것이다. 악인들은 의인들과 택한 자들의 면전으로부터 추방될 것이며, 그 시간부터 땅을 장악한 사람들이 지배자들이나 왕자들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성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들의 주님의 빛이 성인들, 의인들 그리고 택한 자들의 얼굴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왕들과 지배자들은 파멸할 것이며, 그들은 의인들과 성인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며, 그리고 거기서부터 아무도 영혼들의 주님에게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도록 간청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명이 멸절되었기 때문이다”(38:1-6).

죄인들의 희생자들인 의인들은 선택된 자들과 성인들과 대등하다. “의인들의 공동체”가 나타났을 때 그 의인이 “의인들의 면전에” 나타나는 것과 그 의인의 비밀들이 “의인들”에게 계시되는 것이 돋보인다(38:3). 여기서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의 의인과 믿음이 깊은 의인들 사이의 동일화가 관찰될 수 있다. 그러한 동일화를 통해서 의인의 중요한 기능이 억눌린 자들과 고난당하는 자들의 해방자라는 것이 강조된다.
 
하나님이 그들의 얼굴에 비춘 빛은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과 해방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38:2, 4). 생명을 주고 생명을 보존하는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이 의인들의 얼굴을 비춘 빛을 통해서 상징화된다. 빛의 표상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해방자로서의 하나님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이제 억눌린 민족에게 정의가 임하고, 그 민족은 억압의 상황에서부터 해방된다.
 
이와 반대로 죄인들, 즉 억압자들은 그들 자신이 전에 억압하고 착취하고 배제하였던 “성인들, 의인들, 그리고 택한 자들”의 얼굴을 처다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빛을 그 희생자들에게 비추었기 때문이다. 그 의인은 심판자로서 죄인들을 심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혼들의 주님을 부인하였기 때문이다(38:2).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가난한 자들과 눌린 자들의 생명, 곧 생명 자체를 멸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악인들이 생명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종말의 날에 그러한 악인들은 피억압자들의 면전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들이 땅에서 추방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어떤 죄인들도 즉, 억압자들이 땅을 소유할 수 없다(38:4). 이러한 방식으로 생명의 하나님은 불의한 권력자들과 살인자들로 하여금 더 이상 무력한 자들과 희생자들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한다. 어디서 죄인들이 거할 곳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에녹의 질문은 풍자적 의미에서 수사학적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땅이나 하늘에서 거처를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녹은 그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그들을 비판한다(38:2). 억눌린 자들이 자신들을 학대한 권력자들에게 하나님이 벌을 내리기를 바라고 또 그들에게 보복하고자 하는 감정이 38:5-6에 표현되어 있다:

“그 순간에 왕들과 지배자들은 파멸할 것이며, 그들은 의인들과 성인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며, 그리고 거기서부터 아무도 영혼들의 주님에게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도록 권유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명이 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38:5-6).

  여기서 복수하고자 하는 억눌린 자들의 감정은 복수하는 하나님에 대한 희망으로 그리고 억압자들에 대한 무력한 자들의 마지막 가능한 형태의 저항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약자들을 착취하는 악인들의 탐욕이 53:1-2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나의 눈은 거기서 큰 입을 가진 깊은 계곡을 보았다. 땅과 바다와 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선물들과 조공을 거기로(=계곡) 가져 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 깊은 계곡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은 악행을 저지르고, 의인들이 생산하는 것 모두를 죄인들이 범죄적 방식으로 삼킨다”(53:1-2).

열린 입을 가진 깊은 계곡은 모든 사람들이 끝없이 선물과 조공을 가져오지만 채워지지 않는  억압자들의 야수 같은 착취와 그들의 탐욕을 상징한다.
 
비유들의 책에 나타나는 의인은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이다. 메시아적 인물인 의인은 어디서 전승된 것인가? 의인은 비유들의 책 보다 더 오래된 문서인 에녹의 서신(91-108장)에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의인은 그의 잠으로부터 일어날 것이며, 현명한 자는 일어날 것이며,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다.”(91:10). 의인은 감추어진 상태로부터(...그의 잠에서 일어날 것이며...)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 나타난다. 의인은 에녹이 용기를 주고자 시도하는(참조, 95:3) 고난당하는 의인들을 대표한다. 한 예를 들면, 시편 37:28-29에서 의인들은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비유들의 책에 나타나는 의인은 제2 이사야서를 통해서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인에 대한 언급이 이사야 53:11에서 발견되며, 그리고  택한 자에 대한 언급이 다음과 같은 곳에서 역시 발견된다: 이사야 42:6, 21; 48:8, 13, 21, 23, 24; 48: 18; 51:7, 53:11; 54:14. 여기서 의인과 택한 자는 동일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대표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비유들의 책의 저자는 의인과 택한 자의 인물을 제2 이사야서로부터 전승하였으며, 그리고 그 인물을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대리자로 창조적으로 변형시켰다.

2) 택한 자

비유의 책에 나타나는 택한 자는 주로 폭력의 역사의 희생자들인 죽은 자들의 영혼들의 공동체의 맥락에서 그리고 죄인들에 대한 심판의 맥락에서 등장한다. 그의 환상 속에서 에녹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 곁에 있는 성인들과 의인들의 영혼들의 체류 장소를 본다. 그곳에는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자비가 땅위에 이슬처럼 내린다.

“그 날들에 돌풍이 나를 땅으로부터 휘감아갔으며, 그리고 하늘들의 맨 위에 나(=에녹)를 앉혀놓았다. 거기서 나는 성인들의 다른 체류 장소와 휴식처를 역시 보았다. 그래서 나의 눈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있는 그들의 처소들과 성인들과 함께 하는 그들의 휴식처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중보하고 간구하고 그리고 기도하였다. 정의가 그들 앞에서 물처럼 흘렀다. 그리고 자비가 이슬처럼 땅 위에 그리고 영원히 내렸다. 그리고 그 날들에 나의 눈은 정의와 신앙의 택한 자를 보았다. 정의가 그의 날들을 지배할 것이고 의인들과 택한 자들은 그이 앞에 영원하도록 수없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영혼들의 주님의 날개 아래에 있는 한 처소를 보았다. 그리고 그이 앞에 있는 모든 의인들과 택한 자들이 불빛처럼 강렬해질 것이다. 그들의 입은 축복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은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것이다. 그리고 정의는 영혼들의 주님 앞에서 끝이 없을 것이다. 올바름은 그이 앞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날개 아래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영은 저 처소를 갈망하였다. 이미 나의 몫이 거기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영혼들의 주님의 팔에서 나를 위하여 예비 되어 있기 때문이다”(39:1-8).

하늘로 올라간 에녹은 죽은 의인들의 처소를 방문하고 그들이 중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은 자들이 하늘에 살아 있다는 것과 그들이 아직 땅 위에서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산 자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된다.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천상적 처소에서 하는 주요한 일은 하나님 찬양과 산 자들을 위한 기도이다(39:5,9). 산 자들을 위한 죽은 자들의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녹은 내용적으로 무엇을 들었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죽은 의인들의 기도는 해방을 위한 산 자들의 투쟁을 위한 연대뿐만 아니라, 적들에 대한 항거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는 고난당하는 자들에게는 격려이지만, 죄인들에게는 위협이다. 에녹이 그들의 음성을 듣고 그들의 고난을 기억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공동의 희망 속에서 죽은 자들과 정신적으로 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택한 자의 기능은 여기서 해방자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죽은 의인들의 영혼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의인들이 천상적 주택에 즐기고 있는 것은 “종말에 모든 의인들이 나누게 될 것이다.” 
 
에녹 역시 그러한 곳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이 장소에 대해서 큰 인상을 받았다(39:8). 에녹은 태초에 그런 곳에 살도록 미리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을 위한 삶과 생명의 하나님을 위한 그의 선택과 결단 때문에 그의 몫이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졌다. 그러므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싸웠던 선배 투사들이 하늘에서 삶의 처소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정의를 갈망하면서 싸우는 비유들의 책의 저자와 그의 수신자들은 역시 이러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학살당한 순교자들과 의인들이 모두 하늘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기쁨이다. 그러므로 에녹의 환상은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하나님이 그의 메시아적 대리자로 택한 자가 의인들과 함께 살도록 예정된 것이 45:3-6에 서술되어 있다.

“그 날에 나의 택한 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며 그들의 행위들을 엄선할 것이다. 그들의 처소들은 수없이 많을 것이며, 그들이 나의 택한 자를 볼 때 그들의 혼들은 그 처소들 안에서 강건해질 것이다. 그들은 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찾은 자들이다. 그 날에 나는  나의 택한 자로 하여금 그들 가운데 살게 할 것이며, 나는 하늘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영원한 빛의 축복으로 만들 것이며, 또한 땅을 변화시켜서 그것을 축복으로 만들 것이고, 나의 택한 자로 하여금 거기서 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죄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거기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화 속에서 나는 나의 의인들을 돌보았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며,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내 앞에서 살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인들은 내가 심판으로 땅의 표면으로부터 그들을 파괴시킬 수 있도록 내 앞으로 왔다”(45:3-6).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하나님이 택한 자가 하나님의 자녀들과 공동의 처소에 함께 살도록 하나님에 의해서 위임되었다. 택한 자와 택한 자들, 즉 의인들 사이에 동일화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택한 자가 그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런데 택한 자가 억눌린 자들의 해방과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을 위한 택한 자의 해방 영성이 49:1-4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혜가 물처럼 흐르고 그리고 영광이 그 앞에 영원토록 무한하다. 왜냐하면 그의 권세가 정의의 모든 신비들 안에 있고, 억압이 아무런 기초가 없는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이다. 택한 자가 영혼들의 하주님 앞에 서 있다. 그의 영광이 영원하고, 그의 권력은 모든 세대에 미친다. 지혜의 혼, 통찰의 혼, 지식과 힘의 혼, 그리고 정의 속에서 잠든 자들의 영혼이 그에게 있다. 그는 비밀스러운 것들을 심판할 것이다. 아무도 그의 임재 앞에서 헛된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영혼들의 주님의 선한 즐거움에 따라서 그이 앞에 있는 택한 자이기 때문이다”(49:1-4).  

“정의 속에서 잠든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폭력의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에녹의 서신에도 정의 실천 때문에 폭력적으로 죽임을 당한 의인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거기서 그들은 “정의 속에서 죽었다”고 표현되었다(102:4; 103:4). 왜 택한 자는 그들을 기억하는가?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는 불의의 희생자들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정의를 대변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러므로 그는 살해당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택한 자는 자신 속에 “정의 속에서 잠든 자들의 혼”이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항상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대안적 세계를 희망하면서 폭력적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억압자들의 폭력과 불의에 저항한다. 택한 자, 즉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고난을 항상 기억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편에 서 있다.
 
61:1-13에는 타락한 천사들의 처벌과 죽은 의인들과 산 의인들의 해방이 우주적 차원에서 묘사되었다. 61:8에는 영혼들의 주님을 통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택한 자의 등극이 묘사되어 있다(참조, 시 110:1):

“이러한 조치들은 땅의 심연의 비밀들, 사막에서 파괴당한 자들, 들짐승의 먹이가 된 자들,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의 먹이가 된 자들의 진상을 모두 규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돌아오고 택한 자의 날에 희망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영혼들의 주님 앞에서 사라지는 자 혹은 사라져야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 그는(=영혼들의 주님) 택한 자를 영광의 보좌에 앉혔다. 그리고 그는 하늘 위에 있는 성인들의 행위들을 저울로 달면서 그들의 일들을 심판할 것이다”(61:5-8).

모든 형태의 억울한 죽음들의 진상 규명은 정의실천의 중요한 한 차원이다. 죽은 자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지막 날 “택한 자의 날”에, 즉 메시아의 날에 모두 돌아오게 되고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메시아적 대리자인 택한 자를 영광의 보좌에 앉혔다. 택한 자는 악인들을 또한 심판한다(참조,56:3).

“그러므로 주님은 왕들과 통치자들과 고관들과 지주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명령하였다: “혹시 그 택한 자를 알아볼 수 있는지 너희의 눈을 뜨고 눈썹을 올려라! 영혼들의 주님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았고, 정의의 영이 그에게 부어졌다. 그의 입의 말씀이 죄인들에게 훈계하고 모든 억압자들은 그의 면전에서 소멸될 것이다. 심판의 날에 모든 왕들과 통치자들과 고관들과 지주들이 그를 보고 알게 될 것이다 - 어떻게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아있는지, 그리고 정의가 그 앞에서 무게를 달게 되고, 어떤 임기웅변적인 말들도 그의 임재 앞에서 흘러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해산의 진통을 겪는 여자에게서처럼, 즉 여자가 자궁의 입에서 아이를 낳을 때 그리고 그녀가 산고로부터 진통을 겪을 때처럼 고통이 그들에게 올 것이다. 그들 중에 절반의 사람들이 다른 절반의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무서워지고 낙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저 인자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볼 때 고통이 그들에게 엄습할 것이다”(62:1-5).  
  
심판대 앞에 선 “왕들과 통치자들과 고관들과 지주들”은 약자들의 적들이다. 영혼들의 주님은 그들에게 혹시 재판장 자리에 앉아 있는 택한 자를 개인적으로 아는지 처다 보라고 명령한다(62:10). 왜 그들은 그를 처다 본 순간에 매우 당황하였고 얼굴은 수치심으로 가득하게 되었는가? 비유들의 책의 저자가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택한 자를 강자들에 의해서 짓밟힌 약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명백하다. 이것으로부터 그 당시의 독자들은 물론이고 오늘의 우리들이 역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경멸당하고 억압당하는 무력한 자들 중에서 현재적인 메시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해방하고 심판할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는 무력한 자들과 약자들 가운데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를 만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작은 자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인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심문 과정에서 비로소 이러한 인식을 하게 되고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재판관 자리에 앉아 있는 택한 자한테서 그들이 하찮은 존재로 여기면서 경멸하고 무시하였던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심판의 날에 모든 왕들과 통치자들과 고급 관리들과 지주들이 그를 보고 알게 될 것이다”(62:3).
 
마태복음 25;31-46에서 인자는 비유들의 책의 62:1-5에서처럼 자신을 가난하고 억눌린  작은 자들과 동일화한다. 예수가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경멸을 당하는 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요한복음 17장 14-17, 그리고 20-23에 분명히 나타난다. 택한 자와 인자의 동일화가 62:6-7에서 명백하게 확인된다. 둘 다 동일하게 감추어져 있었으며, 또 재판장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왕들과 통치자들과 모든 지주들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그를,(=택한 자), 즉 감추어져왔던 그를(=택한 자) 축복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찬양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자가 처음부터 감추어져 있었고, 그리고 가장 높은 자가 그를(=인자) 그의 능력의 임재 안에 보호해두었다. 그리고 그는 그를(=인자) 성인들과 택한 자들에게 계시하였다”(62:6-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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