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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상)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입력 Aug 12, 2013 09:07 AM KST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거나 갑작스러운 불행을 당할 때 어떤 신을 믿고 섬기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운명이라든가 팔자라고 생각하고 그 원인을 물으려고 하지 않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슨 길이 있는지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운명을 설명하는 책을 가지고 연구하기도 한다. 불교는 전생의 연고(缘故)로 설명하거나 자업자득이라고 가르치기도 하고, 도덕을 강조하는 유교는 악행에 대한 천벌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어떤 신을 섬기고 믿는 사람들은 신과의 신앙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난과 불행을 신의 결정이나 신의 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구약 성경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일찍부터 섬기고 믿어온 야훼 하나님의 전능과 전지와 함께 그의 공의와 정의와 그의 자비와 긍휼과 용서와 축복에 대한 고백이 수없이 많이 나오고 동시에 민족적으로나 여러가지 속성과 관련되는 질문과 항변과 의심과 함께 낙망과 좌절을 토로한 것이 많다.
 
그리하여 이방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나 개인을 보고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하는 말을 듣고는 뼈를 깎는 듯 해서 울분을 터뜨린 시편 시인들도 있었다.(시편 42:10)
 
아프리카는 현대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선교사들의 무덤이라고 말할 만큼 그곳의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에 걸려서 선교자에 부임한지 한달도 안 되어 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나 그 때는 그 병이 어떤 병인지 잘몰랐고, 따라서 치료할 약도 없었다. 그러나 죽어간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계속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의 신앙은 그들의 급사나 고난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케냐에 와서 20년 이상 선교하고 귀국한 스코틀랜드의 어느 선교사는 자기 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자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말도 있었다. 케냐의 한 한국 여선교사는 교통 사고로 부상을 입고 입원한 병원 병상머리 맡에 글을 써 붙이기를 "머리가 상한 것은 머리를 명철하게, 입술이 상한 것은 말을 진실하게, 가슴이 상한 것은 충성된 마음으로, 그리고 무릎이 상한 것은 겸손하게 무릎 끓는 생활을 하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과 불행을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의 속성(정의, 공평, 자비, 용서, 보호 등등)과 관련 시켜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옛날 고대 시대부터 있었고 또 철학도 그 문제를 다루었지만 기독교 신학도 그 문제를 다루어왔다. 18세기 초의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치가 처음으로 ‘theodicy’라는 말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 말은 "하나님의 정의"라는 말로 해석되고 있다.(神正論) 그리하여 하나님의 정의 또는 공평성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악(evil). 즉 사람을 괴롭히는 갖가지 고통들의 문제, 즉 하나님은 이러 이러한 분인데 왜 이런 저런 악이 생겨서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느냐의 질문을 일삼고 대답을 얻어보려고 하였다. 
 
악을 두가지 개념으로 나누어서 도덕적 악, 즉 사람의 죄나 악행이 빚거나 야기시키는 불행과 고통, 그리고 자연적인 것, 즉 지진, 홍수, 화재, 질병, 폭풍, 가뭄 등등을 거론하였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 대부터 야훼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과 불행을 당할 때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 위반처럼 생각하여 침략을 당할 때나 흉년이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같은 불행과 고난의 때에 대한 항변이 많았고 호소도 많았다. 그런데 구약의 하나님에 예언자나 시인들이나 지혜자들의 반응은 다양하였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때로 교육의 목적으로 고난을 또는 벌을 주시는 스승이라고 이사야는 말하기를(사30: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과 고생을 주시는데 그것을 너희에게 떡과 물을 주시는 것이니 너희 스승(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을 참고 이기라"고 말하였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믿는 사람이 힘든 시련을 당할 때 그것이 자기에게 인내력을 키워주며 연단시켜서 좋은 성격을 만들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주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권고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시련은 하나님의 채찍이라고 생각하라는 말도 된다. 또 그는 자기 몸에 평생 고침을 받지 못한 병(가시)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유익한 것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어떤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범죄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천재지변의 환난이 있을 때 인간에 대한 하늘 또는 하나님의 진노와 천벌 또는 보응이라고 생각하고 천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종의 종교행위가 많았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이스라엘인의 불신이나 악덕이나 죄악에 대해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라는 교훈을 많이 하고, 회개를 촉구했는데 이럴 때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조롱을 받고 하나님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도 생길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불행을 당할 때 하나님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로우신 분으로만 알고 그를 믿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축복만 하는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때론 하나님을 자기를 믿는 사람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거나 고통을 주신다는 생각이 있다. 아브라함이 연로해서 낳은 독자이며, 또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아들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신 사건이 있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는데 그것을 단순히 악마의 시험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마귀를 시켜 시험하신 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사도가 되려고 할 때 또는 된 후에도 이러한 시험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욥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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