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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법의 근본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한 나라의 헌법은 그 나라의 정치체제 및 정치이념과 함께 나라의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모든 기능이 따라야 할 모법이다. 그런데 그 힘이 올바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법에 일치해야 하는데 그것을 양심의 법, 혹은 이성의 법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자연법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주신 것이어서 그것을 토대로 하는 헌법이나 모든 법은 만민에게 평등한 ‘만민의 법’이 되어야 하므로 법을 만드는 사람이나 법을 다스리는 사람은 모름지기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입법부의 국회도 입법하는 일로 여야 간에 또 정당들 간에 의견충돌로 인하여 필요하고 시급한 법도 제정 지연되고 있고 사법부의 경찰국이나 검찰국이나 재판부의 판결도 일치가 어려워 충돌하고 있고, 배심원 판결도 지방감정이나 정당성의 차이 등으로 일치를 보지 못하여 비판이 많다. 이렇게 법 문제로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법을 만들거나 법을 취급하고 판단하는 것이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법 자체보다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법을 만드는 것도 어떤 제도나 시설이나 조직 등을 위하여 만든다기 보다 그 모든 것을 취급하는 사람의 행동을 다스리기 위하여 만드는 것이고 법을 어길 때 벌을 받는 것도 사람이다. 올바른 법이라도 법을 어기는 것은 사람이고 법을 만들거나 다스리는 사람 또 법을 지켜야 할 존재는 모두 사람이므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을 만드는 사람이나 법을 지켜야 할 사람이 다 올바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 우리 기독교는 올바른 사람을 거듭난 사람이라고 부른다. 
 
자연법은 하나님이 주신 법으로 생각하므로 그 자체 온전한 법으로 생각하지만 사람의 양심의 판단이나 이성의 판단이 민족이나 인종 또는 지방에 따라 다를 수 있어서 의견충돌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싸우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인 조건에 의한 양심의 차이나 이성의 판단의 차이는 별도 문제로 치고라도, 사람이 자기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법을 어기는 경우도 있고 또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법을 어기는 경우에 법을 무서워하게 마련이지만 자기 양심이나 자기 이성이 무서워 범법행위를 자제하기 어렵고, 다만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범법행위를 자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현대인들 사회에서 날로 신악(新惡)들이 번성해 가서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병세는 현대인이 무신론적이고 무종교적으로 되어가는 데 원인이 있다. 종교는 인간의 도덕적 양심의 선도와 감화로써 양심과 이성을 바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므로 국가가 즉 행정부나 입법부나 사법부 어느 것도 종교 자체를 다스리기 위한 어떤 법을 만들 수 없다고 못박은 미국의 헌법은 지당한 것이다. 종교는 국가가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행정자나 입법자나 사법자를 위시하여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을 다 종교가 교훈으로 선도하여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거듭나지 못한 사람, 혹은 해탈하지 못한 사람)이 만들거나 취급하거나 재판하는 일에는 실수와 과오가 있을 수 있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법도 고쳐나가야 하고 재판도 달라져 가야 한다. 법은 지켜야 할 사람도 자기의 자유의지로 어떤 법을 지키기도 하고 어기기도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적한 것과 같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양심에도 어긋나고 죄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전쟁터에서 어떤 군인은 양심의 가책으로 적군을 죽이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어떤 군인은 적군을 죽여야 자기 나라와 국민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죽이게 된다. 많은 기독교신자 군인들도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데 어떤 기독교 군인은 적을 죽이지 않기 위해 ‘집총 거절’, 즉 아예 전쟁에 안 나가기로 작심한다. 이 두 가지 군인들은 다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자들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우리가 가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옛날부터 인간의 양심이나 법의 절대무성을 말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도 바울이 제사음식(고기)을 먹는 문제를 논의하면서 믿음의 강하고 약함에 따라 각자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개인의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말로 개인행동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풍조가 조성되어 있다. 또는 다수의 의견이니 국민의 선택이니 하는 말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들이 많이 생겨서 인간사회는 혼란과 충돌과 시비를 면하지 못하게 되어 간다. 
 
요컨대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양심의 소리’니 ‘이성의 명령’이니 하는 말의 신빙성이 추락되었다. 오히려 개인의 양심이나 이성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로 보편적인 가치 판단의 잣대나 저울대는 찾기 힘들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은 자기 양심이나 이성의 판단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정말 스스로 가책감이 전혀 없거나 스스로 선인이나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할까? 세상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까?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때론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자기를 초인간이나 성자로 생각하는 것인데 그럴 수가 있을까? 법으로 범법자를 유죄 판결하고 사형이나 장기간의 옥고생활을 선언하는 판사들은 자신들을 의인으로 생각할까? 자기들에게는 심판을 받아야 할 숨은 죄가 없을까?
 
기독교는 사람의 양심이나 이성이나 도덕성이 다 타락해서 원상회복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말하는 양심이나 이성이나 정의감이 절대적이지 못하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법을 만들거나 다스리거나 취급해야 하고 법을 지켜야 할 사람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법을 지켜서 모름지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입법이나 사법이나 준법의 근본이 돼야 한다. ‘양심의 소리’나 ‘이성의 판단력’이란 말은 이제 낡아 신뢰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8세기에 한때 기세를 펴고 그 후로 현대 서양사회 사상을 계도해 온 인간의 ‘자연상태’론이나 ‘순수이성’ 사상은 이제 퇴색된 지 오래 되었다. 
 
기독교나 어느 종교나 간에 나라의 법의 무용을 말하거나 나라의 법의 준법정신을 격하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종교의 착실한 신자는 나라의 법이 없어도 바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의 말대로 법은 올바른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의 도덕심이나 정의감의 불완전성을 가상하고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를 받지 않게 법을 지키라고 가르쳤지만 법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할 것을 가르쳤다. 행한대로 갚는 분은 나라라기보다는 하나님이시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나라 법을 지키는 일에도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나라의 법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나라의 법에도 정의로운 법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이 정의로운 법의 근원이 되시며 모든 사람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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