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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에덴의 회복: 새해의 소망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입력 Jan 01, 2014 04:36 PM KST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2014년 새해가 밝아왔다. 우리들의 새해의 소망이 갖가지 그리고 많겠지만 우리나라와 이 지구촌의 질서가 올바로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창세기 첫장에는 하나님이 우주공간에 만물을 지으신 피조물들을 축복하시고 소개하고 있는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차이는 있지만 다 자기 형상대로 평등하게 지으셨고 그 밖의 모든 피조물들이 종류의 차이와 대소(大小)와 강약(强弱)과 색깔과 모양이 각각 다르고 먹고 입고 사는 존재 양식도 차이가 있게 만드셨지만 그 모든 것 사이에 귀천(貴賤)의 차이나 우열의 차이가 있게 만드시지 않고 다 평등한 존재 가치가 있는 존재로 만드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의 차이(difference)가 차별(discrimination)의 이유가 될 수 없으니 이것은 지상의 어떤 나라나 공동체에서도 있어야 할 선천적 자연상태이다. 이것을 어기고 차이를 차별의 구실이나 원인으로 삼는 것은 창조자의 뜻에 배반되는 것이므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
 
다음으로 창세기 2장에서도 하나님의 피조물 사이의 기본적인 질서를 설명하고 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말하기를 에덴 동산에도 나라(state)가 있었다고 했는데 나라, 즉 국가 개념의 삼대 요건은 통치자와 시민과 그리고 국토인데 에덴 동산에서는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고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시민이 될 것이고 그리고 에덴이라는 땅(국토)이 있고 거기에는 온갖 필요한 자연의 피조물들이 살고 있으니 에덴에 국가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루터가 국가라고 말한 것은 질서 개념으로 국가를 말한 것이다. 
 
즉 에덴 동산의 이상적인 질서를 그가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인데 질서는 한 나라의 평화의 토대가 된다. 창세기 첫장에서는 질서 이전의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평등한 자연 상태가 평화의 근본토대가 되지만 나라의 주권자가 세운 질서 또한 평화의 기초가 된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에덴 동산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셨다고 말했는데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삼위의 차이는 있었도 다 하나님으로서 그 신성이 평등하다. 그리하여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평화와 일치의 원형이기도 하다. 
 
창세기 2장은 창조 설화의 제2부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2장에서는 주로 피조물 사이의 질서를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질서는 에덴 동산이라는 나라의 주권자인 하나님이 세우고 그리고 감독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그는 질서를 만들어 인간들 사이에서 또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서 지켜져서 평화와 고존과 공영(共榮)이 실현되게 하시려던 것이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남녀간 또는 부부간의 질서이다. 남편(남자)과 아내(여자)와의 관계는 같은 갈비뼈를 가진 존재들로서 평등하다. 남자의 갈비 뼈 하나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은 창조자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남자와 여자는 다면 뼈를 공유한 존재가 되는 것이니 양자 사이의 위치의 우열이나 종속관계가 아니고 어느 편이 사랑을 주고 어느 편은 사랑을 받을 것이 아니고 서로 같이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해야 하는 피조물이라는 말이다. 두 사람이 같은 뼈를 가지고 결합되었으므로 운명을 같이 해야 하고 평화유지에 공동책임이 있는데 이것은 한 가정의 질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공동사회에서도 같은 질서개념이 된다. 남존여비니 가부장제도니 하는 것은 다 사람들이 만든 질서이어서 우리 인간사회에 평화가 없게 된 것이다. 남성우위니 여성우위니 하는 것은 다 에덴 동산의 국가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아니다. 
 
다음으로 에덴 나라에서 하나님 곧 주권자가 사람에게 동산 안에 모든 나무 과실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따먹어라는 자유를 주시면서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금지된 그 나무 열매가 어떤 열매인지 알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은 아담과 하와 곧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면서 무제한의, 무제약적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먹고 싶고 갖고 싶다 해서 무엇이든지 갖지 말고 악이될 수 있는 것은 먹지도 갖지도 말라는 뜻이다. 자유에는 자제력과 억제력이 필요하다. 자제와 억제는 자유 개념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고 자유 헌장의 부칙이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믿고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아는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했다. 지상의 모든 물질은 사람이 먹고 입고 거주하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그 피조물 속에는 원소들이 있어서 수소, 산소, 탄소, 질소 등등이 있는데 이것들이 유용하지만 또 그것들이 독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이 밝아져서 수소를 가지고 수소폭탄을 만들고, 질식하는 독가스를 만들고 여러가지 살생적인 화학무기 및 생화학무기를 만들어 죽이고 파괴하게 되어 지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하나님을 없다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는 제약과 억제를 모르는 절대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데 이런 자유가 평화와 공존을 해치고 있고 민주주의를 오도하고 있다. 
 
다음에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지켜져야 할 질서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땅 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창세기 1장에서는 말씀하시고, 2장에서는 "정복하라"고 말씀하였다고 성경에 번역되어 있는데 정복이란 말은 제1장의 "다스리라"는 말과 조화있게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 "정복"이란 말을 "억제" 또는 "복종"시키라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을 다스리고 복종시킨다는 것은 폭우로 홍수가 나면 그것을 억제하는 길을 찾아 댐이나 운하나 뚝을 쌓아 폭우의 많은 물이 그리로 모여들어 고이거나 흘러가게 복종시켜서 폭우와 홍수를 막으라는 뜻이다. 바다의 심한 파도가 밀려오면 그것을 막아서 피해를 주지 않게 복종시켜야 하는 것이다. 자연을 제압하거나 복종시키면서 다스리는 일이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것처럼 자연을 정복한다는 말이 자연을 사람이 모든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구 부수거나 허물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문명은 주로 과학 문명이다. 과학 문명은 물질을 재료로 하면서 물질들의 원소를 연구하여 그 이용도를 찾았고 인간에게 선이되는 열매도 맺히게 하였으나 독이되고 해가 되는 악한 열매도 맺었다. 이 악한 열매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일러주신 말씀대로 먹으면 죽게 되는 열매인데 오늘날 과학자들이 자국의 유익을 위하여 악한 과학 무기를 발명하고 발달시키는데 뱀이 말한대로 이 방면에 눈이 밝아져서 살생과 파괴의 새 무기를 만들기를 경쟁하고 있다. 그리하여 국제사회 곧 인류공동체의 평화는 점점 위태롭게 되고 있고 이미 지난 세계대전과 그 밖의 지역적인 전쟁으로 평화가 상실되었다. 
 
에덴 동산에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는 평등과 평화와 공존의 질서인데 인간의 긴 역사는 이 질서를 파괴하는 역사 곧 서로 죽이고 파괴하는 정쟁의 역사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하신 하나님 나라는 에덴 동산의 하나님의 주권과 그가 세우신 평화와 평등과 공존의 질서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한 때 꿈꾸고 바랐던 이사야서 11장의 이상향은 에덴의 상상이겠지만 이 세상에 아무데도 없는 유토피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타락 이전의 에덴 동산의 평화와 질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는 우선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기를 소망하며 나아가 우리 교회가 그 나라의 그림자 역할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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