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심광섭의 미술산책] 나의 성탄절

심광섭·감신대 교수(조직신학)

▲프라 안젤리코, <예수 탄생>, 1441, 177x148cm, 산 마르코 수도원 박물관, 피렌체
▲산드로 보디첼리, <신비한 예수탄생>, 1500, 런던, 국립미술관
나에게 성탄절은 예수탄생의 신학적,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알기 이전에 교회의 성탄트리와 성탄장식의 이국적 분위기가 주는 설렘으로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어린 시절 조용하고 고요한 한 시골(부여군 내산면 율암리 성결교회)교회의 안팎으로 걸린 반짝이는 불빛과 성탄트리는 그 자체 큰 설렘이었고 깜깜한 시골마을의 밤길을 비추는 불빛이었다. 중고등, 신학생 시절의 성탄은 남녀학생들이 함께 모인 성탄전야의 선물나누기와 떡국을 먹고 밤 11시경부터 시작되는 새벽송이었다. 
 
군복무 중에는 부대의 내무반마다 새벽송을 돌면서 지원받은 과일(대개 사과) 한 상자씩을 50여 내무반에 전달하기도 했다. 나는 포병단 군종병이었는데 사병들이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지 저녁 먹고 모여 캐롤 연습을 하고 음식을 나눠먹고 밤 10시부터 새벽 2-3세시까지 추위도 잊은 채 내무반마다 천사의 노래를 대신해 성탄의 기쁜 소식을 알렸다. 사단장 관사에서는 떡국과 푸짐한 음식을 제공받기도 했다. 
 
잊을 수 없는 성탄의 경험은 독일 유학시절 첫해(1985년 12월)의 성탄이다. 나는 라빈더 살루야(Ravinder Salooja)라는 학생 집에 초대를 받아 3일 동안 머물렀다. 그의 집은 베를린으로 가는 동서독의 경계선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 있었다. 크지 않은 작은 정원이 있는 아담한 2층집이었다. 성탄 전야에 가정에서 진행된 기도회와 성탄선물나누기가 압권이었다. 거실의 구석에는 작은 촛불이 나뭇가지에 여기저기 달린 탄넨바움(Tannenbaum)이 놓여 있었고, 친구는 촛불에 불을 붙였다. 반짝이는 전깃불이 아니라 진짜 촛불을 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탄넨바움 밑에는 선물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12월 첫날부터 가족들이 서로를 생각하면서 쌓아놓은 것이란다. 누가복음 2장을 읽고 가장이 기도드린 다음 선물을 준비한 사람이 하나하나 나누어주면서 왜 이 선물을 준비했는지 얘기도 하고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받은 사람의 기쁨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첨에 나는 좀 과장된듯하게 느껴지는 몸 표정과 얼굴표정이 어색했지만 사는 동안 그러한 강렬하고 솔직한 감정적인 표현들이 좋아보였다. 우리는 얼마나 눌리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던가. 선물은 산 것들도 있었지만 대개 손수 만든 것들이었다. 가정에서 맞이하는 성탄절 축제(Weihnachtsfest)였다.
 
개신교에서는 성탄장식으로 예배실 앞에 성탄트리를 세워놓고 별로 장식한다. 예수 탄생지로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그 큰 별이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9~10)
 
성공회와 가톨릭교회에서는 대개 성당 앞마당에 예수께서 탄생하신 구유를 장식한다. 누가복음 2장 첫머리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묵상할 수 있어 좋다.
 
서양 미술에 그려진 예수탄생 장면은 어두운 밤, 희망으로 가득 찬 고요함이 마리아의 해산과 아기 예수의 첫 울음으로 깨지는 순간이다. 구유에서 천사들이 합창하고 목동들 소와 나귀와 함께 경배하며 마지막으로 동방박사들이 황금, 유향, 몰약을 들고 찾아와 예물을 드린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 bonæ voluntatis
 
이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셨을 때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불렀다는 노래다. 노랫말도 숭고하기 그지없지만 수많은 천사들의 합창이 천군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울려 퍼지는 합창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상상만 해도 마음에 감동이 전해지는 것 같다.
 
예수탄생의 그림을 보면 소와 나귀가 꼭 등장한다. 누가복음에 보면 마리아 묵을 여관이 없어 외양간을 찾아 아기를 낳고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소와 나귀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가축들은 예언자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못된 행실을 보고 따끔하게 훈계를 하면서 비유로 가지고 온 동물인데, 화가들이 6세기경부터 슬그머니 가지고 온 것이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3)
 
⑴수태고지 옆 방에 그려진 안젤리코의 그림에는 구유가 안 쪽에 있다. 한겨울 낯선 땅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차가운 맨땅에 알몸을 눕혔다. 아기 예수가 한겨울 밤 베들레헴의 한 외양간에서 태어나는 애처로운 장면은 그 자체로도 마음을 울리지만, 지극히 존귀한 신성이 낮고 천한 곳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구원의 신비를 다 보여주는 것만 같다. 구유의 지붕에서 천사들의 합창은 소규모이지만 구유와 강보(포대기) 대신 황금빛 광채가 어린 몸을 감싸 빛나고 있다. 마리아는 출산의 고통도 잊은 채 반듯하게 몸을 세우고 두 손을 모으고 경배하는 자세다. 미술사에선 이것을 ‘기도 출산’의 유형이라 한다. 
 
안젤리코는 아기가 막 품에서 나온 순간을 그렸다. 이제 보듬어서 포대기에 싸고 소들의 여물통인 구유에 눕힐 것이다. 그림의 좌우 바깥에서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순교자 베드로가 탄생하신 아기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⑵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은 역동적이며 화려하다. 보티첼리는 맨 위에왕권과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든 천사들이 지상과 황금 돔으로 상징화된 천상의 공간 사이에서 조화로운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장면을 그렸다. 그 밑에 차양이 있는 동굴과 같은 마굿간에서 두 마리 소가 탄생하신 아기예수를 다른 이들과 함께 경배한다. 별 대신 천사들이 동방박사와 목동들에게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평화의 올리브 나무가 도처에 그려져 있다. 맨 밑에는 지붕 위의 세 천사처럼 세 가지 신학적 덕을 상징하는 색을 입고 있다. 흰색은 믿음을, 초록색은 희망을, 붉은 색은 사랑을 상징한다. 맨 위의 그리어 문자는 1500년에 이 작품을 그렸다고 적었으며 그때는 사보나롤라와 그이 묵시록적 신학 이론에 따라 종교적 정치적 격동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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