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인문학적 성찰,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샘물 될 것”

[특집대담] 연세대 ‘종교철학’ 개설 진두지휘한 정재현 교수(2)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은 다음 학기부터 “종교철학” 전공을 개설한다. 신학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며 그 방법과 실제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개설 이유이다. 본지는 인문학의 죽음이 거론되고 있는 현 시점에 철학적 방법론을 신학 연구에 도입하려는 그와 같은 시도가 현재의 학문적 판도를 거스를 만한 타당성을 담보하고 있을 것이라 평가하고 그 타당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본지는 그 전공을 담당하게 될 신과대학의 정재현 교수와 대담함으로써 그 전공의 ‘철학적’ 타당성과 기대효과 등에 대한 정 교수의 견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담의 내용은 질문에 대해 정 교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분량상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종교철학, 무신론에 대한 대응(3-2)
 
▲정재현 교수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의 새로 신설된 전공 종교철학의 정체성에 대해 " 학생들이 신학을 공부해서 일차적으로 목회를 목표로 하더라도 예수의 말씀을 이 땅에 의미 있게 재현하고 재구성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리타스 DB

문: 철학은 모든 학문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는 학문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신학에서 이 철학의 학문적 방법론을 도입한다면 앞으로의 신학연구가 학제 간 연구를 가능하게 하여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인문학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것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문과대학에 가서 홍보도 하고, 교수들과 함께 논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식의 돌파구를 당신네들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 보라 이렇게요. 
문: 아주 중요한 이니셔티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현재 종교철학 전공이 개설되어 있는 것입니까?  
네. 이번 1학기에 저희가 교수회의를 통해서 전공 개설을 확정하고, 2학기부터 공식적으로 개설합니다. 지금 신입생을 모집 중이지요. 아울러 조직신학 전공으로 입학했던 기존 재학생들도 원하는 경우 종교철학 전공으로 진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재학생들도 여기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세부적 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4월말로 신청서를 다 받아서 재학생들도 전부 분류를 했습니다. 참고로, 기존 조직신학 전공 안에 교수가 세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임이고 그 다음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이 조직신학 담당, 또 한 분이 문화신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조직-문화신학’으로 전공분류를 했고, 저는 이제 ‘종교철학’으로 분립하게 된 것입니다. 
문: 그럼 지금 현재 어느 정도 호응이 있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호응이라고 하면 먼저 재학생부터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재학생들 중에는 종교철학 개설의 의미와 뜻을 잘 알고 거기에 관심하는 재학생들이 지원했습니다. 교수의 비율과 학생들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게 되었지요. 논문을 쓰는 박사과정생들 중 여러 학생들이 저희 종교철학전공으로 지원했는데, 이런 사실 자체가 종교철학전공의 신설이 주는 시대적 의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학기에는 본격적으로 신입생을 받게 되는데, 대학원 신학과에는 정원이 없고, 연합신학대학원은 정원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연합신학대학원에 종교철학 소개자료, 홍보자료를 올려놓았더니 문의가 많이 옵니다. 연합신학대학원의 세부전공 분야별 지원 상황과 비교했을 때 시작 단계의 전공치고는 매우 획기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홍보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또 저에게 개인적으로 이메일로나 전화로 문의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내 종교철학 개설이라는 새로운 기획을 한 정재현 교수는 인접 학문 뿐 아니라 타 학문 간에도 교류의 폭을 넓혀 융복합적 성격을 띄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베리타스 DB  
한편으로는 정말 새로운 기획이기 때문에 걱정도 있습니다. 기존의 종교철학이라는 전공은 교단 신학대학 안에 있었고, 교단 신학대학 안의 종교철학 전공들은 신학과나 다른 과에 비해 관심이 덜 한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고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하지만 저희는 종합대학으로서 신학과 관련된 인접학문들, 즉,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하나의 전공 분야로 묶는 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좀 더 사명감을 갖고 이 기획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메일로 저한테 문의하신 분들이 타학문과 교류하며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이번에 연세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개설하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아직은 미미하더라도, 참 뜻있고 감사한 일이지요. 그래서 이런 것을 찾는 분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만 하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일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문: 그러면 앞으로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이 전공의 교육과정이 지닌 정체성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신학을 공부해서 일차적으로 목회를 목표로 하더라도 예수의 말씀을 이 땅에 의미 있게 재현하고 재구성하도록 돕는 것이 이 전공의 정체성입니다. 물론, 이런 정체성이 아카데미즘의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아카데미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목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신학에 못지않게 바로 목회에 적용될 수 있는, 상아탑의 탁상공론이 아니라, 목회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것입니다. 
이번 학기는 제가 학생들과 함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등을 읽고 있어요. 이걸 읽으면 “야, 이게 교회현장에 직접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겠지만, 목회자들이나 기독교의 리더들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토대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칸트의 저서들은 사실 모두 종교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 존재 증명이나, 요청으로서의 신 이야기가 나오고요. 이성의 한계 내에서 종교가 어때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어제 수업에서 다뤘던 부분은 기독론이었지요. 칸트는 인간론과 기독론을 모두 다 다루고 있지요. 그러니까 칸트를 읽다 보면 교회 바깥의 사람들과 교회의 종교 언어를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어제도 한참 그 논의를 했었어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서. 물론 칸트 버전을 우리가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칸트 없이는 현대 철학사조를 말할 수 없잖아요? 서구 철학사 전체를 반으로 자른다면 칸트가 그 분기점에 서 있는데, 칸트 이후의 사조는 칸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다 공유하고 있는 역사적 판단입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칸트는 소통을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됩니다. 참고자료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자료입니다.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을 원전 강독을 통해서 우리가 한 번 모색해보자! 그래서 그 다음 당신들의 버전을 만들어라! 이런 것들이 종교철학 전공의 현실적 적용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제가 다음 학기에 개설하려고 하는 과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강의 제목은 “신앙 성찰과 한국 기독교 분석” 입니다. 칸트를 읽는 과목이 매우 학문적이고 이론적이라고 한다면, 다음 학기에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종교철학이 밀접하게 현장과 닿을 수 있기 위한 실천적인 수행에 해당합니다. 한국 기독교 안에서 기독교 자체를 비판하는 반성 담론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것들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분석을 하게 되면 메타 비판의 담론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것까지를 목표로 합니다. 비판할 때도 비판하는 나름의 의도나 이념 또는 이데올로기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서도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통해서 결국은 원래의 비판과 저희가 새롭게 작업하는 메타 비판이 다 합쳐져서 기독교를 건강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문학적 성찰이라고 하는 큰 용광로 안에 그러한 비판과 메타 비판을 담는다면, 학생들은 철학적인 분석과 비판의 작업이 이렇게 현장에 실제로 실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게 그냥 공허한 테이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제가 연세신학 문고를 통해 책을 냈는데 그 제목이 『묻지마 믿음 그리고 물음』이고 부제는 “아주 열심히 믿는 분과 도저히 못 믿겠다는 분을 위하여”입니다. 양극을 전제로 한 부제를 보고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의 부제인 “종교를 경멸하는 교양인들을 위하여”의 발상과 비슷하다고들 말합니다만,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발상을 좀 했습니다. 하나의 원인이 양 극단을 다 만들어 냈다는 취지인데, 이 대중교양서에는 철학이라는 글자는 단 한 번도 안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철학적인 분석과 비판에 근거한 것입니다. 철학적 분석과 비판을 통한 신앙의 인문학적 성찰은 교회 현장과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샘물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정재현 교수는 고전적 무신론과 현대 무신론을 비교, 평가하며 "현대 무신론은 신론이 아니라 인간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칸트 이후로]인간과의 관계 안에 들어온 신을 알 뿐"이라며 현대 무신론에서 터져 나온 종교적 성찰을 기독교가 외면만 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베리타스 DB

문: 그러면 신학대학에서 철학을 다룰 때 철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이 신학의 영역을 어떻게 다루게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신학은 어떤 절대 가치를 전제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신의 존재” 등을 전제하고 있는데 철학을 한다고 해서 신이 죽었다는 주장까지 포용하게 된다면 신학의 본질적 영역을 폐쇄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신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다고 보이는데, 종교철학이 그런 정도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네. 당연히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신신학(‘God Is Dead’)을 언급하셨지만, 그건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사조입니다. 그런데 그 사신신학 같은 하나의 사조, 말하자면 그것을 포함하여 무신론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영역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무신론도 중세시대에 신 존재 증명을 주요 과제로 삼았던 스콜라 철학과 신학의 시대에 있어서의 무신론, 즉 고전적인 무신론과, 근세 이후에, 과학이 이끄는 시대인 근세, 과학주의까지 치달아 갔던 그 시대의 무신론과, 또 이제 현대는 또 다른 시대로서, 근대와는 또 구별되는 시대로서 과학은 더욱 발달하지만, 과학이 스스로 한계를 고발하고, 자폭선언을 하는 시대의 무신론은 그 지향점이 각각 다릅니다. 즉 같은 무신론이라는 이름을 써도 시대별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과학이 더 발달하지만, 과학주의는 과학 스스로를 붕괴시키고 맙니다. 과학이 스스로 과학주의를 붕괴시켰다고 문명사가들이 다 평가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 마당에 다시 인간으로, 인간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그 지점, 그 시작의 자리에 소위 그 현대를 시작해 준 기라성 같은 예언자들인 포이어바흐, 맑스, 니체, 프로이트 등에 대해서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으로 무신론자, 점잖게 말하자면 무신론자, 좀 더 세게 말하자면 시대의 마귀들이라고까지 칭했습니다만, 그들의 주장을 외면한 결과가 결국은 서구에서, 미국에서, 이제는 한국에서까지 교회의 왜소화, 축소화로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대정신과 소통하면서 종교가 그러한 시대정신을 선도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외면하며 빗장을 걸어 잠그다 보니, 세속사회는 점점 더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결국 교회마저 그 영향을 받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무신론이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다면 신학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 조금 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무신론의 양태가 고전적 무신론과 근대적 무신론과 현대적 무신론 등으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에 대해 말해봅시다. 그 시대의 종교가 표방했던 신 이미지와 관련해서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계속 무신론이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고전적 무신론은 진짜 신 존재 여부를 놓고 따졌던, 형이상학적인 논의에서의 무신론이에요. 근대적 무신론은 인식론적으로 양상이 달라지죠. 현대의 무신론은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포이어바흐, 맑스, 니체, 프로이트 등과 관련 있는데, 이들의 무신론은 적어도 저 고전적인 무신론과 전혀 다른 형태의 무신론이에요. 이들은 신 존재 여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 말은 신 존재를 부정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에요. 
왜냐하면 신 존재 여부를 판정한다는 것 자체가 고전시대의 형이상학에서는 가능하고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근대의 인식론적인 성찰을 거치고 난 뒤에는 인간의 앎 자체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있음 자체를 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던 형이상학적 시대에는 존재 여부가 관건이었는데, 인식론, 즉, 앎의 문제에 봉착해서는, “아! 인간이라고 하는 게 있음을 있음 그대로 읊을 수 있거나, 그걸 생각해서 그 다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형태로 나름대로의 앎의 틀 안에 있음을 담는구나! 앎의 틀 안에 담겨진 있음이구나! 앎 이전의 있음이 아니라, 앎에 담겨진 있음이구나! 담겨질 때 그냥 담겨지는 것이 아니라, 앎의 틀과 모양과 꼴대로, 앎의 색깔대로 취향대로 담겨지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형이상학적 앎의 틀로는 회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대담에 참여하고 있는 이인기 편집국장(위)과 정재현 교수(아래). ⓒ베리타스 DB
이것에 대해서는 칸트가 결정적으로 경계선을 그어줬지요. 물 자체가 불가지론적이라는 것도 그렇고요. 이러한 인식론적 변화가 종교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근대의 기독교는 고전적인 교리의 방식에서 근대적인 윤리의 방식으로 계속 변모하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교리라는 것이 고전 이성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것이고, 윤리라고 하면 세속 윤리면 되지 종교가 따로 있어야 될 이유가 무엇이냐는 이의가 제기되었던 것이지요. 예를 들면 칸트가 그런 공격을 하는 데에 대해서 교회가 대책이 없었어요. 그렇게 흘러가는 마당에, 그냥 점점 더 왜소해진 가운데, 남아있던 신 이미지, 신관, 신론, 이런 것들이 결국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니체도 그런 식의 공격, 포이어바흐도 그런 식의 공격을 가하게 된 거지요. 뭐 그들이 말하는 투사다, 아편이다, 환상이다, 우상이다, 이런 표현들이 사실 인간의 삶에서 새겨지는 모습들이지 않습니까?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투사, 맑스가 말하는 아편, 프로이트가 말하는 환상, 니체가 말하는 우상. 이런 것들이 결국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한 것들이잖아요? 신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현대 무신론의 장르가 고전적인 그것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사신신학도 그런 경향 속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신신학이란 이름이 붙은 그 무신론은 한 백 년 앞서서 나왔던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의 후예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무신론을 고전적인 무신론이라고 생각하고 모두가 신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고 치부할 일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현대의 무신론은 인간의 체험 속에서 벌어지는 신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이든 신 자체가 어떻든지 상관없이 인간이 신의 존재를 직접 다룰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과의 관계 안에 들어온 신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취합니다. 그랬을 때 그 관계 안에 들어온 신의 모습은 아편이고 투사고 환상이고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문: 그러니까 현대의 무신론은 인간의 인식 안에 들어온 신의 문제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군요.   
그렇죠. 이건 신론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론이죠. 그러니까 현대 무신론은 인간론인 셈입니다. 이걸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면 기독교가 뒤집어쓰고 있던 종교적 인간의 껍질을 벗기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투사하는지도 모르고 투사하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냐? 껍질을 벗겨야 해요. 평생 벗겨도 다 못 벗기지요. 바울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열심히 하지만 다만 앞을 향해 달려갈 뿐이지 언제 그것을 다 이루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할 일이 나오잖아요? 이것을 벗겨야겠구나! 우상을 파괴해야겠구나!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 그것도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 하나님이 하나님 그대로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믿으면서 그것이 절대적인 양 주장하게 되죠. 하나님이 절대적이지 신앙이 절대적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3부에서 계속.
[대담= 이인기 편집국장, 정리= 이가람·백결·최웅재 객원기자(연세대 신과대 재학), 사진= 지유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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