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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의 산딸기가 주는 기쁨과 유혹
이대희 목사·강릉선교감리교회 담임

입력 Jun 28, 2014 09:10 AM KST
까미노 데 산티아고(29)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탐스럽고 풍성한 산딸기.
▲산딸기의 달콤한 즐거움에 마음 빼앗긴 나그네.

까미노 길 가에 늘어선 검은색 산딸기(Ronce)를 몇 개씩 따먹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어릴적 간식거리가 많지 않던 때, 한 여름철 동무들과 마을을 온통 헤집으며 뛰어놀다가 산딸기를 따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우리의 산딸기는 속살이 들여다 보일만큼 빨갛고 앙증맞다. 어떤 것은 잘 익어서 거무스름한 빛깔을 나타내는 것도 있지만, 산딸기를 한움큼 따면 손바닥은 빨갛게 물이 든다. 그마저 철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사람들의 손길에 남아나지 않는다. 땀이 바짝 난 더위에 산딸기 고것 몇 개만 입에 넣고 오물거려도, 그 시큼하고 달콤한 청량감은 한량없는 것이어서 어느덧 등줄기 흘러내린 땀을 말리기에 충분하다. 누가 그렇게 열매를 따갔는지 우리가 그것을 찾을 때면 넉넉한 수확을 거둘 수가 없었다.
해마다 유월이 되면 마음 선한 성도들의 사랑스러운 손길로 수확한 거룩한 산딸기 열매를 맛본다. 한 바구니 따기 위해 거친 가시에도 찔려 생채기도 났을 터이다. 잘 익은 것, 소담한 것 여기저기 찾느라고 온통 마음을 집중했을 것이다. 가꾸고 살피고 재배하여 키운 것이 아니고, 그저 하늘이 주신 열매이다. 시간이 되면 거기에 언제나 있는 그런 열매이다. 하늘의 새들도 와서 이 놀라운 축복을 마음껏 즐기고 갈 것이다. 농사하지 않아도 곳간에 들이지 않아도 새들은 그렇게 풍성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개미엉덩이 같은 빨간 알갱이들이 서로 오밀조밀 맞대고 꽃다발을 이룬 듯 봉긋하게 솟아오른 들딸기가 기쁨이 되고 사랑이 되고 감사가 된다. 
▲미루나무 사이로 아케레타Akerreta 마을 교회가 보인다.
▲아케레타Akerreta 호텔 옆을 걸어오는 노년의 순례자.

그런데 여기 까미노에서 알이 실하고 당도가 좋으며 수확량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풍성한 산딸기가 우리를 유혹한다. 그것은 분명 유혹이다. 나그네의 걸음걸이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장거리를 잘 걷기 위해서는 적당한 보폭과 속도, 그리고 규칙적인 호흡이 중요하다. 그런데 길 가 산딸기 ‘축제’에 참여하려다 보면 호흡은 흐트러지고, 걸음의 균형과 일정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언제나 우리의 탐욕이 문제이다. 무분별한 욕심과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연약함이 순례자의 길에 장애가 되고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절제와 적당함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산딸기는 그대로인데, 한 편으로 청량한 기쁨의 열매가 되기도 하고, 한 편으로 나의 내면 탐심이 일어나게 하는 유혹의 과실이 되기도 한다. 하나를 취하면 더 좋은 하나가 눈 앞에 나타난다. 한 손에 있는 열매가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눈이 다른 열매를 발견하고 마음엔 욕심이 작동하고 손길은 명령을 따라 움직인다. 열매를 탐하는 마음을 그만 두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면 썩어져 가는 구습의 ‘옛 사람’(에베소서4:22)을 만날 뿐이다. 유혹은 우리를 속이고 거짓으로 기만하여 우리 마음 가운데 헛된 욕망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그만 가던 길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산딸기의 잎사귀를 흔들어 댄다.
▲풍부한 물줄기가 짙은 수풀을 이루는 아르가 강Rio Arga.

어제 론세스바예스에서 라라소아냐 까지는 ‘극심한’ 장거리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팜플로나까지 가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줄어 15킬로미터 정도 예상이 된다. 어제 28킬로미터 생각하면, 오늘 15킬로미터 가는 것은 마음부터 가볍다. 잘 다져진 평평한 흙 자갈길이라 걷기에 더 없이 좋다. 오르고 내릴 경사도 많지 않다. 라라소아냐 마을 모습이 눈에서 사라질만큼 왔을 때, 조그마한 동산 위,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아케레타Akerreta 마을 한 복판을 지난다. 교회 종탑이 우리를 먼저 알아 본 듯 내려다 보고 있다.

마을은 언제나 푸근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농기구들이 아무렇게나 한가히 나뒹구는 헛간 옆으로 밀 수확을 마친 들판이 보인다. 덤프트럭 바퀴보다 더 큰 건초더미 묶음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다. 가래떡을 듬성듬성 썰어 놓은 것처럼 재미있는 풍경이다. 금세 길은 아르가 강 옆을 지나다가 다리를 건너고, 다시 건너고, 친구처럼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길동무가 된다. 아르가 강 주변은 언제나 푸르다. 나무가 우거지고, 새들이 노래한다. 무엇을 낚는지 모르지만, 머리 노란 강태공이 세월을 낚을 준비를 하고 있다. 비가 온지 얼마 안 되었는지, 물살이 제법 거세고 수량이 풍부하다.
▲N-135도로 옆 초지 오솔길을 걷는 나그네 뒤로 수리아인Zuriain 마을이 보인다.
▲이로츠Irotz 마을 전경.

수리아인Zuriain마을을 지날때는, 아르가 골짜기를 따라 쭉 뻗은 135번 국도 1킬로미터정도를 그늘없이 걷는다. 론세스바예스부터 함께 온 135번 국도이다. 이 도로는 팜플로나에 다다르면 사라진다. 우리는 나그네길을 걸어가며 만남과 이별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135번 도로 왼쪽으로 벗어나 다시 아르가 강을 건너서 약간 비탈길을 올라간다. 한 시간 남짓 걸은 모양이다.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모르는 순례자들이 배낭을 벗어 놓고 오르노트로츠HornoTrotz 바르에서 쉬고 있다. 이로츠Irotz 마을이다. 우리도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저 앞에 누군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사진제공=이대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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