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건강한 유산, 행복한 가정

정태기 목사 /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원장

▲정태기 목사
모든 인류 역사가 만남을 통해 이어져가듯이 한 사람의 역사도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가진 상처도 만남의 산물이요, 자신이 어떤 능력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 역시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만남의 그물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많은 만남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과의 만남입니다. 가족은 오늘의 자신을 형성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정 안에서 자라며 겪은 좋은 경험이나 아픈 경험은 자신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나무가 성장하면서 겪은 기후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 지금까지 성장해오는데 내 가정의 토양과 기후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의 깊게 성찰해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려면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계에 내려오는 만남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나 자신을 바로 알고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한 작업입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러저러한 분으로 어떻게 살아오셨고, 성품은 어떤 분이셨다. 그래서 그 분들은 나의 아버지에게 이러저러한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신 것 같다. 또 외조부모님은 이러저러한 성품을 갖고 계셨고, 나의 어머니에게 이런 성품과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신 것 같다. 그런 배경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러저러하게 만나서 결혼을 하고 나와 우리 형제들을 낳으셨는데, 그 분들의 삶의 자세가 나에게 이러저러한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저러한 성격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결혼 이후 받은 상처는 중간에 떠 있는 상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계기를 만나면 깨끗이 치유됩니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가정에서 부모에게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 그 뿌리는 대단히 깊기 때문에 뽑아내는 일도 무척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여러 단계의 치유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는지는 한 사람의 인생의 행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자녀된 입장으로서는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부모된 입장으로서는 자녀와의 만남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서로 물려받고 물려주는 유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부부가 되어 만난 남녀 또한 서로의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의 정도에 따라 부부 사이의 갈등과 화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정을 통해 물려받은 유산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좋은 유산은 계속해서 물려주고, 그렇지 못한 유산은 되물림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가령,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남성은 대개 폭력 가장이 됩니다. 부모로부터 주먹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생각할 여지도 없이 즉각적이고 반사적으로 주먹부터 휘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똑같은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이라도 폭력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훈련과 자기 노력으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자신의 폭력성과 대결합니다.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폭력을 쓰지 않는 부모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 갈등 없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폭력을 상속한 사람이 아무 갈등 없이 폭력성을 잠재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을 하면서 틀이 다른 두 사람, 즉 부모로부터 전혀 다른 유산을 물려받은 두 사람이 결합했을 경우, 당연히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남녀가 만나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이 경우 부부는 서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함께 잘 살아보려고,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그들의 자녀들은 좋은 유산을 물려받아서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부모 대에서 노력하게 잘못된 유산을 끊고 좋은 전통을 세운다면 그 부모를 보면서 자란 자식들은 자연스레 건강하고 큰그릇을 갖게 되어 물 흐르듯 평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대하시는 것을 보았으나 깊은 정을 주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행위는 곧 교과서입니다.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과목을 배우지 못한 내가 아내를 깊이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 해야 깊이 사랑하는 것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왔지만 우리 부부는 자식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배우지 않은 것을 개발하여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폭력성과 무감각증과 같은 자연스런 본성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향하려고 할 때마다 분노의 감정이 몰아쳤습니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본성의 욕구를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는 더 이상 우리가 겪은 고통과 갈등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굳은 인상을 펴고, 아내와 아이들을 안아 주는 일, 손을 잡고 걷는 일은 내게 어색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딴 살림을 차리고도 위세가 당당하던 아버지라는 교과서를 제쳐두고라도, 가정 내에서 이루어야 할 평등과 사랑과 화목이라는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욕구와 폭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구, 상대를 미워하고 싶은 욕구 앞에서 나를 추스르고 통제하는 일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노력이 위선이 되지 않기 위해 진심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딸아이들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인 줄로 생각합니다.

부부애가 각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결혼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압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손을 잡거나 안아주거나 살을 비비는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서로 돕는다고 해서 자존심이 다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성장하면서 익숙하게 보아온 사랑의 행위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결혼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응용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대에서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는 사람과 좋은 유산을 물려받은 차이는 엄청납니다. 전자는 아주 작은 사랑의 행위도 생각을 모으고, 용기를 내어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후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전자는 분노의 감정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억눌러야 하는 데 반해, 후자는 노력하지 않아도 분노의 감정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는 외로운 투사와 같습니다. 이런 한 사람의 외로운 투쟁으로 후손에게 대대로 좋은 유산을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어 OECD 가입 국가 중 2위를 기록할 정도입니다. 빠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나라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달리 국민 개개인의 가정은 갈수록 병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위기에 처한 원인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지고 치유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상처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또한 흔들리는 가정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청소년 세계는 문제로 가득한 세계가 되고, 문제 청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어 머무는 곳이면 그곳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단체든 거기에는 분노와 분쟁과 분열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가정에서 시작된 문제가 사회문제, 정치문제, 교육문제 더 나아가서 종교문제에까지 파고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미국교회의 쇠퇴의 원인은 가정의 파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부모의 슬하에서 부모의 냉담 가운데 성장한 아이는 상처를 입게 되고, 청소년이 되어 탈선하여 마약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기 마련이며, 어른이 되어서는 각종 사회 문제의 주범이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영향은 교회에까지 미치게 되어 자연히 교회를 찾는 사람이 적어지게 되고 교회는 텅비게 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가정을 통해 어떠한 유산을 물려받느냐가 한 개인의 전체적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머물러 있는 모든 삶의 자리에까지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모두 합한다 해도 고작 2천만 밖에 안 되는 소수민족이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이 민족의 정신과 영이 그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건강한 정신과 영을 지닐 수 있는 이유를 이들 가정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건강한 가정생활과 가정교육이 그 배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의 역할을 무척 중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하십니까? 부모로부터 어떠한 유산을 받으셨습니까? 또한 자녀에게 어떠한 유산을 물려주셨습니까? 건강한 가정 유산을 물려주는 일, 이것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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