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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물(膳物), 촌지(寸志), 뇌물(賂物)

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강석찬 전 초동교회 담임목사(예따람공동체 대표) ⓒ베리타스 DB
1960년대 말, 선친께서 목회하던 교회에서 부흥사경회가 있었다. 마지막 집회 때 부흥사는 “목사에게 양복을 선물하면서 자기 이름을 안주머니에 새기면, 목사가 그 양복 입을 때마다 선물한 사람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하면서, 양복을 선물할 사람이 있으면 손들라고 했다. 부흥강사는 세 벌을 선물받았고, 덕분에 가난하게 사셨던 선친도 새 양복 한 벌을 입으셨다. 선친께서 소매 끝이 닳을 때까지 입으셨는데, 양복을 입을 때마다 선물한 교인을 위해 기도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지금, 지난 번 교회를 사임할 때 권사님 한 분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15년 된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목사님 쓰세요”하며 보내온 봉투에 담긴 돈으로 산 의자였다. 나는 좋고 편안한 꽤 비싼 의자를 선물한 그분을 매일 잊지 않고 기억한다.  
나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온통 선물로 둘러싸였다. 사진 찍기를 즐긴다고 캐논 카메라를 선물한 고인(故人)이 된 교인, 그에게 세례를 주고 그의 신앙의 안내자로 살았던 오랜 세월을 생생히 기억한다. 자동차 사고로 카메라가 부서졌을 때, 나의 취미를 알고 있던 투병 중이던 집사님이 선물한 새 카메라, 그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던 일이 사진을 찍으러 카메라를 꺼낼 때마다 떠오른다. 생각해 보니, 구두도 내가 직접 지갑을 열어 사질 않았다. 명절이 되면 상품권을 보내어 새 구두를 마련하게 한 교인들이 있어, 은퇴 후에도 계속 신고 있다. 아들 혼인식 주례를 감사한다고 양복을 맞추어 준 장로님과 아들 딸 낳아 행복하게 살며 믿음생활을 성실히 하는 그 가정을 이제는 조금 낡아졌지만 양복을 입을 때마다 떠올린다. 넥타이는 일일이 다 기억하기가 쉽지 않지만, 선물한 그들을 생각하느라 유행이 지났지만 버리지 못하여 쌓인다. 외국에 다녀오는 교인들은 비타민 종류를 선물하여 이제껏 건강한 것 같다. 머플러, 장갑, 지갑, 손수건, 양말, 향수, 가방 등등 정말 다양하고 많다.  
나의 만년필에는 사연이 있다. 암 투병 중이던 선배 목사께서 세상 떠나기 얼마 전에 “아무래도 이 만년필은 강 목사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아”하며 떠맡기다시피 준 만년필이다. 늘 설교원고를 만년필로 노트에 쓰기에, 만년필에 대한 애착이 있던 나에게 선배가 남긴 몽블랑 만년필은 많은 마음이 담긴다. 나의 핸드폰 번호는 목회하던 교회의 권사님들이 모금하여 핸드폰을 선물하며 정한 교회 전화번호이다. 처음 핸드폰이 나올 때 무척 비쌌었다. 40년 된 화가들의 동인회가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매년 전시회에 참석했다. 화가 중에서 내게 자신의 작품을 선물한 이들이 있다. 벽에 걸어놓고는 그들과의 믿음의 우정을 잊지 못한다. 이 뿐이 아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출판했다. 목회기다. 가난한 목사가 출판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마련했을까? 교우들의 촌지(?)였다. 장례식, 혼인식 감사, 심방 감사 등을 모아 선교비로 나누기도 하고, 모아 두었다가 책을 내어 나누는데 사용했다. 
분명하게 나의 생활 속에는 선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일일이 기억하며 기도하기도 한다. 사랑의 빚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자, 목사에게 선물한 분들이 촌지(寸志)를 전할 때, 목사에게 바치는 뇌물(賂物)이라 생각했었을까? 뇌물이라고 생각하며 선물한 교인은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기도해 주셔요”라 부탁하기도 하지만, 근본이 목사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으로 전하는 촌지는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감사요, 존경이요, 사랑의 선물이다. 그런데도 목사는 그 사랑을 마음에 담고 위하여 기도한다. 이런 주고받음,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만약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뇌물성이라면, 난 뇌물을 선물(?)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사랑의 빚을 스스로 지지도 않는다. 물론 뇌물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온 나라가 자살한 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로 난리다. 현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정치인들의 이름과 ‘몇 억’이 적힌 쪽지가 만든 폭풍이요 해일이다. 국민은 쪽지에 적힌 억대의 돈을 무엇이라 볼까? 선물? 촌지? 아니다. 뇌물이라 생각한다. 뇌물에는 독(毒)이 들어있다. 선물이나 촌지에 담긴 사랑과는 전혀 다른 종류다. 사랑이 살림이라면, 뇌물의 독은 죽임이다. 국민들은 이 사회, 정치판에는 뇌물이 날라 다닌다고 생각한다. 독 가루가 날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세상이 안전할 리 없다. 일 년 전, 세월호가 침몰한 것이 그냥 된 일이 아님을 국민은 안다. 적폐(積幣)가 뿜어내는 독기(毒氣)가 어린 생명들을 앗아갔다. 선생님, 스승에게 드리는 촌지도 뇌물로 변신하는 세상이 되었다. 정말 큰일이다. 온통 불신이 가득 채워져 있다. 바른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사랑의 선물까지 뇌물로 만드는 세상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직뿐이다. 신뢰를 살리는 길은 정직뿐이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변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선 사람으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길을 올곧게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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