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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노트] 이론은 실천이다: ‘연장’으로서의 이론

강남순·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교수. ⓒ베리타스 DB
내가 강의시간에 또는 강연을 할 때에 거의 언제나 받는 '단골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이론과 실천/운동' 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이번학기 데리다 세미나를 하면서, 마지막 시간에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데리다 '이전'과 '이후'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수의 학생들이 데리다의 해체이론이 얼마나 자신들의 구체적인 사유방식을 바꾸게 되었으며, '실천적'인가를 '고백'하였다. 자신들이 신문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하여 스스로 비판적 해석을 하는 방식등 참으로 구체적인 실천적 변화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데리다를 공부하는데에 그러한 실천적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에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학생들의 경험을 듣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단골 질문'을 받을 때, 내가 답변하는 내용을 간략하게(?) 이 공간에 나눈다 (이러한 종류의 글이 이 페북공간에서 얼마나 '긴' 글인지 알기에 나의 '간략하게'라는 표현은 이미 매우 양가적이다).
1. ‘이론’과 ‘실천’이 서로 상반되거나 또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통상적인 이해는 1960년대 이후 활발하게 출현하기 시작한 다양한 사회변혁운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이론-실천’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의 한계와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두 진영—‘이론가들’ 과 ‘운동가들’—에 모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들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기제들은 다양한 ‘이론들’에 의하여 조직화되고 운영되고 있다. 이론과 실천을 각기 상관없는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마치 냉장고를 사용하는 것(실천)과 만드는 것(이론)이 상관없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다. 
2. 이론은 이 현실세계에 ‘무엇' 이 '왜’ 문제인가를 보여주며, 실천은 ‘어떻게’ 이 문제들을 개선해 나가는가에 우선적 관심이 있다. 이러한 이론과 실천의 깊숙히 얽혀있는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어디까지가 ‘이론’이고 어디에서부터 ‘실천’인가의 경계를 긋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현실세계가 작동되는 것을 분석해 내는 이론적 작업없이 '문제'를 '문제'로 판단해 내는 실천적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문제들이 얽히고 섥혀있는 이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작업과 그 맥락을 깊이에서 이해하는 것이 ‘운동/실천’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3. 따라서 구체적인 현실에 깊숙히 뿌리 내린 ‘이론’은, 진정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론과 실천의 분리불가능성과 상호연관성에 대한 인식은  반성차별운동, 반인종차별운동 등의 과정에서 많은 운동가/실천가들이 체득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론-실천, 앎-삶 등을 대립적인 양극적 축에 놓는 것은 우리의 현실의 다양한 작동기제들의 근저에 감추어져 있는 깊이의 본체는 보지 않고, 빙산의 일각만을 보면서 그 실체의 전부로 간주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4. 이론은 실천의공간 속에서 개인이나 집단에게 그 실천의 인식론적 근거를 제공하며, 동시에 하나의 이론은 그 운동/실천에 뿌리내려 있는 다양한 상황들과 긴밀하게연계되어 구성되어야 한다. 현대의 영향력있는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인 프랑스 철학자 질 들레즈(Gilles Deleuze)는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하여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부분적이거나 파편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이론은 언제나  지역적이며제한된 상황에만 관계되어 있어서, 그 이론이 그 제한된 특정한 상황을 넘어서서 다른 상황에 적용될 때에는,이미 그 상황과 거리를 갖게 된다. . . . 더 나아가서 한 이론이 다른 특정한상황이나 영역에서 적용되기 시작할 때, 그 이론은 장애물, 벽들,그리고 차단물 등과 대면하게 되어 마치 릴레이 경주처럼 또 다른 양태의 담론들이 요청된다. . . . 실천이란 한 이론점(theoretical point) 에서 다른 이론점으로의 릴레이 경주의 한 쌍과 같다. 어떠한 이론도 벽에 부딪히는 일이 없이발전될 수 는 없으며, 실천은 이러한 벽을 뚫어나가기 위하여 요청되는 필요한 것이다."[1]
5. 이러한 맥락에는 들레즈는 “이론은 연장상자” 와 같은 것이며, 그 연장을 만든 사람(signifier)과는 사실상 아무 관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연장의 존재 의미는 그 연장으로서의 기능을 하는것이지,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아니다. 예를 들어서 망치가 한국에서 제조되었든, 중국에서 만들어졌든, 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만들어졌던, 망치로서의 기능을 하면 되는 것이며 ‘어디에서’ ‘누가’만들었는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6. 어느 연장이든 그 연장을 아무도 쓰지 않으면 무용한 것이되듯, 이론도 구체적 현실세계에서, 한 사람의 인식기능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고 쓰여지지 않는다면 무가치한 것이 된다.  망치가 집을 건설하는데에 쓰여 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람이나물건을 파괴하고 해치는데에도 쓰여질 수 있는 것 처럼,  하나의 이론은 다양한 방식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론 자체가 아니라 그 특정한 이론을'어떠한 목적'으로 쓰는 가가 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연장'으로 허무주의적인 상대주의를 제창하면서 이 현실에서 아무런 책임적 역할을 지지 않을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고,반대로 그 '연장'으로 근대적 중심부를 탈중심화함으로서 그동안 그 중심부에서 밀려나 있었던 주변부인들의 한 고유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드러나게 하는 실천적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들레즈와의 대담에서 미셸 푸코는 “이론은 실천이다”라고 분명하게 역설한다.
7. 다른 여타의 사회변혁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초기 여권운동은 반지성주의,반이론주의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 그래서 페미니즘 이론을 구성하고 글을 쓰고 가르치고 강연하는 아카데미아에서의 이론가들에 대하여는  ‘상아탑’에서 공리공론만 하는 이들이라고 간주하면서,  ‘현장’에서 데모하고 피케팅을 하는 등 직접 '몸'으로 투쟁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운동’이나‘실천’을 하는 이들로 간주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 ‘상아탑’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이론을 생성하고 확산시키는 공간인 대학에 대한 냉소주의적 시선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권운동과 같은 다양한 사회변혁운동들이 발전하면서, 운동가 자신이 운동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의미부여하게 하고, 타자를 설득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효과적인 운동전략과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이론은 얼마나 필연적인 것인가를 비판적 성찰을 하게 된다. 이 현실의 깊숙하고 복합적인 작동기제를 들여다 보게 하는 이론적분석 없이는 운동의 지속성이 그 힘을 잃게 된다는 현실적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론/실천의 이분법적 이해의 한계와 그 위험성을 자각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반(反)이론주의나 반(反)지성주의의 한계가 조명되고 비판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이론과 실천/운동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이들이 여전히 다수라는 사실을 소위 운동현장에서 빈번하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은 ‘현장’의 복합성과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현장’에 대한 매우 단일한 시각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서 ‘현장’은 하나의 얼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층으로 세분화되어 작동되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신을 보고, 타자를 보고, 세계를 보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이론—이 이론들이 만들어지고 가르쳐지는 다양한 공간들도 이 현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실천과 운동의 현장’이라고 나는 본다. 강의실 안이든 강의실 밖이든,  한 사람의 인식변화가 일어나는 곳은 광의의 의미에서 ‘현장’이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8. 이러한 맥락에서 들레즈가 역설하듯 “이론은 연장상자”와 같은 것이며, 푸코의 주장처럼 “이론은 실천”이라는 말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좋은 이론은 좋은 운동”이라는 것—즉  ‘좋은 이론’을 통하여 자신의 인식론적 시각이 변화하고, 그 변화 속에 타인들을 “설득”하여 그 변혁운동의 열정을 나누게 함으로서  비로소 진정한 “실천/운동”이 가능하게 된다고 본다.  여기에서 ‘좋은 이론’과 ‘나쁜 이론’이라는 매우 단순한 듯한 구분은 잠정적인 구분이며, 무엇이 어떤 특정한 이론을 ‘좋은’ 또는 ‘나쁜’이론으로 만드는가의 문제는 보다 복합적인 논의를 필요로 한다. 
9. 간결하게 말하자면 ‘좋은 이론’이란, 이 세계에 정의, 평등, 평화에 대한 인식과 그 실천을 첨예화하고 확산하는데에 도움이 되는 이론이라고 나는 규정한다. 반면 ‘나쁜 이론’이란 다양한 담론적 기제들을 통하여, 그것이 정치사회적이든 종교적이든, 무수한 배타적 타자들을 양산해 내고, 그들을 그럴듯한 근거로 열등하거나 악한 존재로 간주하는 인식론적 체제를 정당화하면서 그들에 대한 배타와 정죄를 자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론이다. '좋은' 이론들은 우리의 인식세계를 확장하여, '나'를 보는 방식, '너'를 보는 방식, 그리고 '세계'를 보는 방식에 인식론적 혁명을 일으키면서, 개별인들이 중요한 사회변혁의 주체들로 스스로의 인간관, 정치관, 종교관, 세계관을 형성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좋은 이론은 중요한 운동이다." 
<들레즈 인용문 출처>
[1] Gilles Deleuze, as quoted in Michel Foucault,“Intellectuals and Power: A Conversation between Michel Foucault and Gilles Deleuze,” Language, Counter-Memory, Practice: Selected Essays and Interviews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80), 205-206.
※ 본 글은 강남순 교수가 5월 2일(토) 자신의 페이스북 노트에 올린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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