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케직(Keswick)운동의 영성②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II. 케직사경회  
1. 제1회 케직사경회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베리타스 DB
1875년 7월 케직사경회(Keswick Convention)는 “성경적 성결의 증진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서 호수지역의 휴양도시 케직에서 열렸다. 옥스퍼드 집회에서 크게 은혜를 받고 “안식하는 신앙”(resting faith)을 경험한 성공회 참사회 의원 배터스비(Thomas Dundas Hartford Battersby)가 브라이턴 집회에서 케직사경회를 계획하였고, 다음해 1875년 7월에 그가 시무하는 케직 성 요한 교회의 목사관의 아름다운 뜰에서 작은 규모로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를 계획했을 때 그는 자신의 계획이 영구적이고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저택 부지에 수백 명을 초청했을 때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이 사경회는 비공식적으로 소집되었고 집회운영은 “성령이 교회를 주관한다”는 견고한 원칙과 이에 반하지 않는 다른 규칙들에 대하여는 융통성을 발휘했다(Pierson, 신현수, 38). 
제1회 케직사경회에서 배터스비는 사경회의 지향 목표를 “내면적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을 지향한다고 피력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 말을 매우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분명하게 신성한 삶의 비밀에 이르게 하는 사람, 기꺼이 자기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게 하는 사람, 우리에게 성실하고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사람, 그러나 우리의 죄를,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전적으로 누리고 거룩의 성장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방해하는 것들을 매우 명확하게 밝힐 사람이다”(“Keswick Convention, 1879,” 7; Pierson, 신현수, 35).    
2. 케직사경회의 목적과 정신
피어선은 케직사경회의 목적을 다음같이 밝힌다. “첫 번째 목적이란 개인 성결의 증진이다.” 성결 증진을 위하여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어 조용히 그를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고, 그분이 무엇을 명령하든지 순종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Keswick Convention, 1879,” 7). 둘째는 “성화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더욱 풍성히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내주, 하나님의 사랑, 마음과 몸이 하늘에 계신 신랑과 완전히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Keswick Convention, 1879,” 8; Pierson, 신현수, 36). 케직운동은 “실천적 성결의 증진”(the promotion of practical holiness)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All One in Christ Jesus)를 추구한다. 미국 아즈베리신학대학원의 번디 교수(David D. Bundy)는 다음 같이  케직운동의 목적을 소개한다: “복음적 신자들이 개인적인 거룩한 삶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 매년 한 주 동안 교리적 및 교회적 차이들을 최소화한다. 고전적 신학 범주에서 이들은 함께 개인적 사람 안에 있는 죄의 욕망과 경향을 제어함으로써 획득된 점진적 성화(progressive sanctification)를 추구한다”(David Bundy, Keswick: A Bibliographic Introduction to the Higher Life Movements [Wilmore, Kentucky: First Frutis Press, 2012], 12). 케직운동은 교단적이거나 전통적 구조가 없으며  성령 안에서 더 높은 영성의 삶을 추구하기 원하는 개인들의 모임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당시 영국에서 1856년 이후 (1857년을 제외하곤) 1870년대 지속적으로 연례집회를 가졌던 성결운동이었던 마일드메이 서클(Mildmay Circle)의 영향을 받았다. 데이비드 베빙톤은 마일드메이 집회에 대하여 다음 같이 평가한다: “마일드메이는 영국 성공회 안에 있는 복음주의 당파의 한 부분을 그 세기 중엽에 일반적으로 환영받는 것 이상으로 더 높은 영적 열망으로 이끌었다”(David Bebbington, 『영국의 복음주의 1730-1980』, 이은선 역 [한들, 1998], 250). 그러면서도 케직사경회는 “신앙에 의한 성결”을 강조한 점에서 개혁주의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특징지을 수 있다.  
케직사경회의 설교자들의 영적 태도에 대하여 배터스비는 다음 같이 말한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술이 희생제단에서 오는 성령의 불로 단련되고 순화되어서, 말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고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시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케직의 목적과 정신들은 “인간의 웅변에 불과한 것에 매달리는 것을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피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고 얻기 위해 끊임없이 그분을 기다리는 것,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려는 간절한 소원 등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Pierson, 신현수, 36).  
그리하여 피어선은 케직사경회에 처음부터 “사도적 특성”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한다. 사도적 성격이란 “성령을 신적 선생이요, 모든 회집의 운영자로 높임으로써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기도가 모든 성공과 복의 중대한 조건이요, 연설을 하거나 듣는 일을 준비하는 비결이요, 말씀의 씨가 뿌려진 뒤에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비결로 강조되었다. 또한 사람의 가르침은 그 적합성이나 권위 모두 최고의 교사에게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과 조화를 이루는 영적 상태가 현저하게 요구되었다”(Pierson, 신현수, 36-7). 케직사경회에서 교회의 부흥과 성결운동을 중심으로 연합운동을 하면서 웨슬리적인 부드러운 알미니안주의와 정통개혁주의적인 부드러운 칼빈주의는 이러한 연합운동을 위한 협력에 있어서 교리적 장벽을 넘어섰다(Bebbington, 이은선, 253). 강경한 알미니안주의(hard Arminianism)는 자유주의(liberalism)로 나아가고, 강경한 개혁주의(hard Calvinism)는 과격 칼빈주의(hyper-Calvinism)로 나아갔지만, 복음과 성결운동은 부드러운 사고 안에서 서로 연합하게 되었다. 
3. 케직사경회의 진행 방
초기 케직사경회는 공식적인 기구를 통하여서는 물론, 개인적인 연락관계를 통하여서도 자발적으로 모였다. 참여자들과 지도자들이 세계도처에서 독자적으로 왔으며, 세속적인 방법으로 초청되지는 않았다. 케직은 전도대회가 아니고 사경회, 즉 말씀을 연구하는 모임이었다. 참가자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성서를 공부하였고 이전의 집회들의 성과를 분석하였다. 사경회에는 성경학원생들과 기독교 사역자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초기 케직사경회의 핵심인물들이었다. 초기 사경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설교였다. 설교자들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게 복음과 성결을 가르쳤다. 케직사경회는 잡지 발간 등의 여타의 방법들도 수용하였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구술(口述)에 의한 가르침이었다.  
피어선은 케직사경회의 진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고 시행된 방식을 다음의 여섯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성령이 모든 집회의 사회자이자 최고 운영자시다. 모든 집회를 성령의 인도 혹은 주도아래 의탁한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린다. 서로 간에 축복을 받고 나누기 위해 가장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 경배를 피한다. 선생들은 그들의 재능이 아니라 받은 은혜와 말씀을 해석하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넷째, 세속적 매력과 후원으로부터 독립된다. 숫자는 성공의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정은 직접 호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으로 충당한다. 다섯째, 예배, 증언 그리고 교제의 사도적 단순성을 지키고 계발한다. 음악과 가르침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성결한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에 종속한다. 여섯째, 신자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케직 강단은 “성령의 영감, 그리스도의 신성, 성육신, 구속 및 부활, 성령에 의한 중생, 미래 나라의 상급 등 중요한 기본 사항에 대한 신자들의 일치라는 기반에 세워져 있다”(Pierson, 신현수, 77). 
케직의 모임에서는 예배나 성경공부 등에서 주로 회중 전체가 찬양을 했다. 독창은 거의 없었다. 찬양은 말씀을 표현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성령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위해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 또한 자발적인 헌금을 위해 케직 천막에는 나무로 만든 헌금함을 비치했다. 케직사경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도적 방법을 단순하게 수용하여 자기의 가정과 사회에서 실천하며 해외로 선교사가 되어 나가기도 했다.  
케직의 강사는 특정한 교파의 교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신학학위를 가졌어야 할 필요도 없고 목사가 아니어도 가능했다. 그렇다 해도 케직이 반지성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강사로 초빙되었는데, 그들은 케직의 성결교리, 즉, 믿음으로 구원을 받듯이 성화도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하고 실제로 자신의 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증하며 남에게 진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케직사경회의 대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월요일에는 죄에 대한 견해에 따른 일반적인 조사, 화요일에는 죄를 처리함, 수요일에는 그리스도의 능력 체험, 목요일에는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휴식, 금요일에는 봉사를 위한 성령의 능력, 토요일에는 선교, 성찬식, 교제이다.  
성찬식에서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All one in Christ Jesus, 갈3:28)임을 실감할 수 있도록, 7천여 명을 수용하는 대형 천막 속에서 그야말로 인종, 언어, 문화, 신분의 모든 벽을 넘어 함께 떡을 뗀다. 천막은 집회가 끝나면 거두어지지만 주 안에서 함께 나누는 성도들의 교제와 주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상징과 축복과 감격이 교차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4. 케직사경회의 파급력
1875년 제1회 개최 이후 케직사경회는 매해 개최되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꾸준히 성장하였다. 1901-2년에는 3천 명 정도 수용가능한 두 개의 천막이 매일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비교적 넓은 서너 곳의 집회 장소들이 있어서 보다 적은 규모의 모임, 사역자, 젊은 남성, 젊은 여성 등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케직사경회가 열리는 10일 동안 대략 1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이 연례모임에서는 유명도가 있는 강사들이 40-50명 정도가 모인다. 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 운동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고 이 운동의 목적과 가르침을 찬성하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모든 땅으로부터 정성을 쏟는다. 케직사경회 기간에는 영국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대표들이 마치 유대인들이 장막절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처럼 이 연례 축제에 참석하러 왔다. 이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알려짐에 따라 케직사경회 문헌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케직 도서관”이 생겨나 󰡔신앙생활󰡕(Life of Faith)이라는 정기간행물이 발간되어 영적 삶에 관한 케직의 가르침을 전달하게 되었다. 케직사경회는 캐나다, 인도, 미국, 남아프리카, 스코틀랜드, 독일, 프랑스, 서인도제도, 동양 (머리말에서 언급한 바같이 한국 초창기교회의 부흥운동) 등에까지 파급되었다. 그리고 케직운동은 미국 근본주의, 오순절주의, 미국 성결운동에 기념비적인 영향을 끼쳤다(Bundy, 12).   
말년의 무디는 미국에 케직 교사들을 초청하고 그 자신도 케직 강단에서 설교하였다. 무디는 1874년 초 죄의 용서를 강조한 만큼이나 온전한 성화에 관해서도 설교하였다. 무디는 “참된 기독교인은 세상과 그 재미에 대한 취미와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인은 세상에 대하여 못 박혔으며, 세상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못박혔다”(The Christian [22 January 1874], 5)고 역설하였다. 무디는 성화를 성결주의적 관점보다는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수용하였다. 무디는 1871년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식적으로 체험”하였다. 무디는 도덕적 투쟁의 삶을 너머섰다고 주장하는 완전성결주의를 비판하면서 죄악된 본성은 제거될 수 없다며 완전 성화를 가르치는 것을 부인하는 개혁주의 성화론의 입장에 섰다. 이는 케직운동의 성화론의 입장과 같은 것이다. (계속)

관련기사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