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평] 정부, 8.24합의 이행의지 있는가?

홍용표 통일부장관·청와대 기류, 심상찮아

훈풍이 일던 한반도에 다시 찬바람이 부는가?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남북간에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남북이 무박 4일, 43시간 동안의 회담을 통해 합의문을 도출했을 때만 해도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모습이다. 우리 측 협상대표로 나섰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8월27일(목) 국회 현안 보고를 통해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강조했다. 즉, 북한이 먼저 목함지뢰-포탄발사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관련자 문책 등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한 걸음 더 나가 핵 문제까지 건드리겠다는 기세다. 이와 관련, 은 이날 “크게는 북핵 문제부터 작게는 민간교류까지 광범위하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언급을 전하면서 “북한이 5.24조치 해제를 최우선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최대 과제로 삼고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남북이 오는 9월7일(월) 판문점에서 이산가족 상봉 준비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기로 합의했지만 청와대 발 냉기류에 힘을 잃는 모양새다. 
홍 장관과 청와대의 태도는 8.24남북합의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5.24조치 해제 목소리에 대해 선을 긋는 포석으로 보인다. 8.24남북합의는 1항에서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따라서 합의 이행을 위해선 대북교류를 동결한 5.24조치에 어떤 식으로든 손질을 가해야 한다. 8.24남북합의 이후 5.24조치 해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나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와중에 한미 양국이 지난 6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새로이 ‘작전계획(작계) 5015’를 마련했다는 언론보도가 흘러 나왔다. ‘작계 5015’의 뼈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도발 징후가 뚜렷해지면 선제공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월) 실시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작계5015’가 처음 적용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북한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28일(금) 논평을 통해 “공동보도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상대방의 수뇌부를 노린 전쟁 각본을 버젓이 언론에 공개한 것은 북남 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이며, 겨레의 통일 열망을 짓밟는 참을 수 없는 모독 행위”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막힌 물꼬 트려면 먼저 ‘5.24조치 해제’ 논의해야  
▲북한은 8.24남북합의에 대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까지 나서서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 ⓒJTBC뉴스룸 화면 갈무리 

단도직입적으로, 우리 정부는 모처럼 마련된 화해 무드를 달가워하지 않아 보인다. 남북이 합의에 이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총대는 대통령이 멨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간 마라톤협상이 한창이던 24일(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번 회담은 무엇보다도 현 사태를 야기한 북한의 지뢰 도발을 비롯한 도발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며 “매번 반복돼 왔던 이런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정권 들어 대통령의 한 마디에 국정이 좌지우지돼왔기에 이번 발언 역시 남한 협상단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8.24남북합의문 어디에도 대통령이 ‘하달한’ 가이드라인은 반영돼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합의문 발표 직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명시한 사과와 재발방지는 없었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이런 논란이 무색하게 홍 장관은 책임 있는 조치 운운하며 새삼 협상 전의 요구조건을 꺼내든 것이다. 
청와대가 ‘핵’을 거론한 건 우리 정부의 의중을 더욱 의심하게 한다. 핵은 북한이 남한과 미국을 향해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사실 북한이 핵 무장을 택한 건 한미 양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책략의 발로다. 이 지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셀릭 해리슨의 분석에 주목해야 한다. 셀릭 해리슨은 한반도 문제와 미국 정책의 딜레마를 분석한 역작 『코리안 엔드게임』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아래 네 가지로 들었다.  
“첫째, 워싱턴은 이른바 북한의 재래식 전력에 의한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핵무기 선제 사용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오고 있으며 러시아는 선제 사용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없다. 둘째, 미국은 한국에 재래식 전력을 계속 주둔시키고 있으며 북한은 그것을 생존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셋째, 핵무기는 첨단 재래식 전력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넷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미국이 1994년 핵동결 합의의 핵심 조항들을 존중하는 데 늦장을 부려 왔다는 점이다.”  
북한 핵은 한반도-동북아 안보를 불안에 빠뜨리는 최대 위험 요인이다. 게다가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 회담은 좀처럼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어느 면에서 8.24남북합의는 북한을 핵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 최우선 순위는 경색된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막힌 물꼬를 트려면 가장 먼저 5.24조치 해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5.24조치는 남북 민간교류와 직결되기에 이참에 민간교류 활성화 방안까지 포괄해 논의한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이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남북 화해무드는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 교류가 상당 수준까지 올라가면 남북 정부수준에서 핵 의제를 꺼내기가 보다 수월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5.24조치 해제에 대해선 선을 긋고, 핵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모처럼 조성된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북한은 8.24합의 이후 유화적인 입장이다. 
북측 협상대표였던 김양건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는 27일(목) 조선중앙통신과의 질의응답에서 “우리는 이번 북남 고위급 긴급접촉의 합의정신에 기초해 온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맞게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나섰다. 조선중앙TV는 28일(금) “우리는 운명적인 시각에 화를 복으로 전환시킨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꿔가야 한다고 했다”는 김 제1위원장의 뜻을 전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대북인식이다. 영국 리즈 대학교 사회학 및 현대한국학 명예 선임연구원인 에이단 포스터 카터는 24일(월)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관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박 대통령은 ‘신뢰의 정치(trustpolitik)’를 모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북한에) 강경 일변도였고, 상상력 부족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의 관심은 통일에 기울었다. 그러나 그의 통일론은 평양과의 협력보다는 우발적 사태를 뜻했다. 늘 신경질적 반응을 보여 왔던 북한은 박 대통령의 진짜 의제가 체제변화(regime change)에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8.24남북합의는 남북관계가 경색기로 접어들었던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데서 의미가 작지 않다. 사실 남북이 이 정도까지 합의하는 데에도 엄청난 역량이 소진됐다. 안타깝게도 이 모처럼의 기회마저도 우리 정부는 달가워하지 않는 듯 보인다.  
북한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대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지금 이대로 8.24남북합의 이행에 달갑지 않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얼마든지 예측이 가능하다. 
잠시 기독교계로 눈을 돌려보자.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기장)는 우려를 표시했고, 남북이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하자 환영입장을 냈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남북이 이번 합의를 계기로 그동안 중단돼 왔던 민간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고 적절한 시점에서 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 남북 관계는 늘 사소한 그 ‘무엇’이 판을 깨는 변수로 작용해왔다. 더구나 보수정권 집권 이후 남북간 상호불신의 골이 깊이 패였기에, 기독교계가 상호 신뢰회복과 화해를 앞당기는 데 적극 앞장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부디 모처럼의 기회를 잘 살려 공언한대로 ‘통일 대박’을 터뜨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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