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주체사상을 가르쳐서는 안 되나요?

정부-새누리당은 불필요한 선동을 멈춰라

지난 10월12일(월)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현행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직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상에선 새누리당이 내건 현수막 사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이 현수막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비단 새누리당에만 국한된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 날인 13일(화) 오후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은 여의도 역 앞에 집결해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러자 정권 보위부대나 다름없는 어버이연합이 들이닥쳤습니다. 이들은 문재인 대표 등 새정연 당직자들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들의 입에서도 현수막 문구에 적힌 말이 그대로 흘러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은 교과서 국정화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입니다. 국정화 발표 이전부터 ‘좌편향 교과서’라며 군불을 땠고, 교과서 국정화 발표가 나기 무섭게 ‘주체사상’ 운운하며 우리 사회를 이념대립으로 몰아가니까 말입니다. 
먼저 새누리당 주장대로 현행 검정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는지부터 알아봤습니다. 정말로 주체사상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금성출판사가 낸 교과서 407쪽입니다. 문제의 대목을 옮겨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가 확립되고 자주 노선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등장하였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항일 유격대 활동을 혁명 전통으로 삼은 김일성 중심의 유일사상 체계였으며 결국 김일성 개인숭배로 이어졌다.”   
이 교과서 집필진들은 하단에 상자를 만들어 주체사상을 더욱 자세히 기술해 놓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95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통치 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였으나, 이후 주체사상이 조선 노동당의 지도 이념이 되었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이 창시하고 김정일이 이론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혁명 사상으로, 북한의 통치 이념이며 모든 정책 결정과 활동의 기초이다. 북한 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을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고 인민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사상에서의 주체’,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외교에서의 자주’를 제창하면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김일성 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참으로 의아합니다. 해당 교과서는 <조선일보>가 좌편향이라고 ‘찍은’ 교과서입니다. 그런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김일성 개인숭배로 이어”지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하니, 도대체 뭐가 좌편향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체사상 연구, 통일준비 과정 중 하나 
▲새누리당과 <조선일보>가 ‘좌편향’이라고 공격한 금성출판사 역사 교과서. ⓒ베리타스 DB

다시 현수막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현행 검정 교과서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미화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체사상이 김일성 개인숭배로 이어졌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가가 나서서 주체사상을 가르치지 못하게 막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쉽게도 현행 교과서에서는 주체사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을 들춰봤습니다. 돈 오버도퍼는 미군 포병장교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지 특파원으로 한국전쟁 이후 판이한 길을 걸은 남·북한의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입니다. 그는 주체사상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을 흔히 인체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대한 지도자는 의사를 결정하고 행동을 명령하는 두뇌에 해당되며 노동당은 뇌와 몸통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중재하는 신경체제이고, 인민은 결정사항을 이행한 뒤 그 결과나 효과에 대한 정보를 위대한 지도자에게 재전달하는 골격과 근육에 해당한다. 외부인들에게는 이러한 신조가 기괴해 보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아왔으며 이와 반대되는 견해로부터 완전히 차단돼 있다.”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모골이 송연합니다. 마치 유사 종교집단의 교의를 방불케 하니 말입니다. 더욱 소름끼치는 건,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에 완전히 세뇌됐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명의 연구자라도 더 달려들어 주체사상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체사상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여기에 세뇌돼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적절한 해독제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세계 각국 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공업은 물론 수학, 과학, 철학, 문학, 음악 등에서 상당한 업적을 쌓은 문화 선진국 독일이 어찌하여 나치즘 광기에 사로잡혀 전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연구대상으로 전락한 독일의 신세를 그의 대표작 『양철북』 도입부에 이렇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래, 사실이다. 나는 정신 병원에 수용된 환자다. 나의 간호사는 거의 한눈도 팔지 않고 문짝의 감시 구멍으로 나를 지켜본다. 하지만 간호사의 눈은 갈색이기 때문에 푸른 눈의 나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귄터 그라스, 『양철북』)   
독일은 자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양철북』 역시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입니다. 연합국 역시 독일을 물심양면 지원했습니다. 이 결과 독일은 나치즘 광기를 퇴치할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통일에 대비하고자 한다면, 북한 주민을 주체사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는 필수입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왜 주체사상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할까요?   
SNS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니 문제의 현수막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옹색합니다. 자신들의 주장이 그리도 떳떳하면 계속 걸어놓을 것이지 왜 갑자기 철거한단 말입니까?   
돈 오버도퍼는 “김일성은 일종의 종교 집단과도 같은 절대주의가 지배하는 폐쇄적인 국가를 창조했다. 김일성 자신, 그리고 그의 주장과 결정에 대한 어떠한 이의나 비난도 용납되지 않았다”며 북한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행태는 물론, 그간 보여준 모습은 북한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늘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외쳤지만, 여당은 민생을 타령처럼 읊조려 왔지만, 늘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당신들의 이해만 우격다짐으로 관철시켰고, 여기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아예 국민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교과서 국정화라니 당신들의 위선은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합니다.   
정부-여당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불필요한 이념대립을 부추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안 그래도 국민들은 살기 힘들고 피곤합니다. 단, 이 나라를 북한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심판은 각오하셔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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