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리뷰] <스타워즈> 새 에피소드, 올드팬 향수에만 기대려 해

J.J. 에이브럼스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되돌아 보기

상상력 고갈인가? 얄팍한 상업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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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화제작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새 에피소드 <깨어난 포스>(원제 : The Force Awakens)를 보면서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다. 연출자인 J.J. 에이브럼스는 <스타워즈> 향수를 자극하기로 아주 작심한 듯 하다. 그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대배우 맥스 폰 시도를 등장시킨다. 맥스 폰 시도의 풍모는 <스타워즈> 오리지널에서 오비완 캐노비 역을 맡았던 알렉 기네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뿐만 아니다. 저항군의 X윙 파이터와 제국의 타이 어드밴스드가 벌이는 치열한 공중전은 1977년 첫 에피소드 <새로운 희망>에서 다스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의 싸움을 옮긴 것이다. 무엇보다 한 솔로(해리슨 포드)와 츄바카가 ‘밀레니엄 팔콘'호를 타고 은하계를 누비는 장면은 올드팬들의 향수를 한껏 자아낸다. 특히 한 솔로 역의 해리슨 포드는 신작에서도 녹록치 않은 연기 내공을 뽐낸다.

마즈 카나타 주점에서 주인장인 마즈 카나타와 레이(데이지 리들리)가 나누는 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레이는 주점에서 우연히 루크 스카이워커가 쓰던 라이트세이버(광선검)를 발견한다. 이때 그녀의 내면 깊이 자리한 포스가 꿈틀 거림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포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치려 한다. 이때 마즈 카나타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포스를 일깨워준다. 아마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를 기억하는 이라면 금방알아 챌 것이다. 마즈 카나타와 레이의 대화는 오리지널 에피소드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1980)에서 마스터 요다와 루크 스카이워커가 나눴던 선문답임을 말이다.

영화의 모티브 역시 오리지널을 충실히 계승한다. 오리지널 에피소드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악의 화신 다스 베이더가 실은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버지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제국의 역습>에서 다스 베이더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루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며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고백한다. 이 대사는 일대 충격파를 일으켰고,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대사로 자리잡았다.

사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서구 영웅 신화에서는 흔하게 나타나는 모티브다. 조지 루카스는 옛 신화를 은하계의 전설에 과감하게 끌어와 성공을 거뒀다. J.J. 에이브럼스는 다스 베이더-루크 스카이워커 사이의 갈등을 한 솔로와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에게로 옮긴다. 가계도로 따지면 다스 베이더는 카일로 렌의 외할아버지다. 스카이워커 가문이 30년 넘게 우주의 질서를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등장하니, 가히 족보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J.J. 에이브럼스, 작심하고 향수 울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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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해리슨 포드는 스타워즈 새 에피소드 <깨어난 포스>에 한 솔로로 분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이렇게 연출자 J.J. 에이브럼스는 영화 곳곳에 미끼를 던져 놓고 올드팬들의 구미를 자극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구태여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찾아 볼 필요는 없다. 21세기의 관객을 위해 화려한 비주얼로 화면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J.J. 에이브럼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를 보면서 꿈을 키운, 말하자면 ‘스필버그 키드'다. 그는 15세 때 스필버그가 수퍼 8mm 카메라로 찍은 초기작을 편집한 적도 있었다. 그의 2011년 작 <수퍼 8>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자전적 고백이었다. 루카스 필름을 인수한 디즈니는 그에게 새 에피소드 연출을 맡겼다. 경력으로 볼 때 적임자를 찾은 셈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11세 때 <스타워즈> 오리지널을 접한 바 있었다. 그의 말이다.

"어린 시절 <스타워즈> 시리즈는 나에게 굉장한 존재였으며,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세계였다."

스필버그 키드 답게 그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데 성공한다. 사실 조지 루카스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내놓은 <보이지 않는 위험>, <클론의 습격>, <시스의 복수>는 진부하게만 보였다. 세상은 오리지널이 첫 선을 보였던 1970년대와 달리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특수효과는 다큐멘터리 필름에 배우가 들어가 연기하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했다. 특히 관객들은 제다이들의 광선검 결투 보다 <매트릭스>의 스타일에 더 열광했다. <깨어난 포스> 역시 선악의 대립 구도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이지만, J.J. 에이브럼스는 이런 한계를 전통의 충실한 계승으로 돌파해 나간다.

에이브럼스의 시도는 성공을 거둔 듯 하다. 북미에서만 개봉 첫 날 우리돈 1,424억원을 벌어들였고, 이는 역대 최고기록이다. 게다가 극장 마다 스타워즈 복장을 한 관객들로 북적이고 백악관에까지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비주얼에 감춰진 빈곤한 시대정신

그러나 상상력 부재는 어쩔 수 없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깨어난 포스>가 향수를 자극하는 데는 성공을 거뒀을지 몰라도 시대적 상상력은 부족해 보인다.

오리지널이 처음 나온 1977년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 후유증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소련을 축으로 하는 ‘공산주의 제국'은 욱일승천 하는 것 같았고, 반면 미국은 왜소해 보였다. 은하계의 지배를 꿈꾸는 황제와 그의 심복 다스 베이더는 공산제국의 은유였던 것이다. 이런 은유는 분장에서도 엿보인다. 제국의 지휘관들이 입고 있는 제복과 ‘스톰트루퍼'는 각각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을 모델로 했다.

반면 루크 스카이워커와 레이어 공주, 그리고 제국에 맞서는 반란군들은 죄다 고만고만하다. 얼핏 초라해보이기까지 한 저항군의 모습은 베트남전 패배 악몽에 시달리는 미국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스타워즈> 오리지널의 성공은 시대정신을 담아낸 데 힘입은 결과였던 셈이다.

2000년대 초반 루카스가 내놓은 에피소드 1, 2, 3편은 실망스러웠지만, 여기서도 시대정신은 읽힌다. 특히 2005년 작 <시스의 복수>는 무척 의미심장하다.

조지 루카스는 고별작 <시스의 복수>에서 다스 베이더의 기원, 루크-레이어 남매의 출생 등 <스타워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모티브를 풀어낸다. 이중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은 ‘제국'의 탄생 비화다.

펠퍼타인 공화국 의장은 ‘전시상황'을 명분 삼아 친정체제 구축에 나선다. 제다이 기사단은 펠퍼타인의 음모를 눈치채고 제동을 걸려한다. 이러자 펠퍼타인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유혹해 제다이 기사단 제거에 나선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활약에 힘입어 펠퍼타인은 최대 걸림돌을 치우는데 성공한다. 펠퍼타인은 의회에 나가 ‘자유', ‘정의', ‘안보'를 실현할 제국이 출범했음을 선포한다. 의회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하고, 상원의원 자격으로 의회에 참석한 아미달라는 이런 말로 깊은 아쉬움을 드러낸다.

"자유 민주주의는 박수로 종말을 고했군."

이제 펠퍼타인은 거침이 없다. 먼저 자신은 황제로 등극한 다음, 권력장악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아나킨 스카이워커에게 ‘다스 베이더' 작위를 수여하고 후계구도를 약속한다. 이어 두 사람은 은하계 장악에 본격 나서기 시작한다.

이 같은 광경은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는 것 같다. 무엇보다 펠퍼타인이 공화주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황제로 등극한 장면에서 ‘민주제국'임을 자처하며 침략전쟁에 나선 미국의 민낯이 엿보인다. 실제 <시스의 복수> 개봉을 전후해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W. 부시를 다스 베이더에 빗댄 패러디들이 쏟아져 나왔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자기 확신에 가득한 자유 민주주의자들의 승리를 찬미했던 루카스가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선 정 반대의 메시지를 전한 건 묘한 역설이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이 정치의 진보를 담보하는 건 아님을 깨달은 것인가?

에이브럼스의 신작은 훌륭한 오락일 수는 있겠으나, 21세기의 시대정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단지 여성인 레이가 포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흑인이 조력자로 나선다는 점에선 오리지널보다 진보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지점에서 <스타워즈> 오리지널과 프리퀄의 주인공들이 백인 남성이었고, 여성(레이어 공주와 아미달라)은 기껏해야 보조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할리우드는 리메이크, 리부트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터미네이터 : 지네시스>, <쥬라기 월드> 등이 대표적이다.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도 이런 흐름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깨어난 포스>가 가장 돋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오리지널의 아우라에 기대 돈벌이를 시도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기발한 상상력을 지녔거나,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재들이 헐리우드에 무관심한 걸까? 스마트폰, 태블릿 PC, 스마트 워치 등등 요새 나오는 IT기기들을 보고 있자니 괜찮은 인재들이 영화보다 IT산업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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